유튜브 쇼츠에 AI 콘텐츠가 넘쳐나기 시작한다. 영상 속 사람과 동물은 소름 끼치도록 매끈하다. 모공 하나, 잔머리 한 가닥까지 철저히 계산된 그 장면에는 인간 특유의 주저함이나 실수가 없다. AI의 어색함과 어눌함이 있던 공백이 하루하루 메워지는 걸 체감할 때면, 경이롭다기보다 기이함마저 든다.
극장에 사람이 들지 않는다고 영화인들의 곡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AI로 인한 콘텐츠의 빅뱅 시대에 직면한 지금, 어쩌면 우리는 돈을 내고 어두컴컴한 상자 속에 들어가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스크린을 올려다보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영화 한 편은 거대 자본과 수백 명의 땀방울로 쌓아 올린 성채와 같았다. 그런데 AI라는 녀석은 그 성채의 문을 너무나 쉽게 따버린다. 텍스트 몇 줄이면 할리우드급 품질의 영상이 단 몇 분 만에 튀어나온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건 축복 같지만, 실상은 ‘비슷비슷한 영상’들이 쏟아지는 소음의 바다로 이어질 뿐이다.
기술은 너무나 쉽게 결과물을 내놓는다. 알고리즘이 찍어낸 매끈하고 자극적인 영상들이 범람할 때 우리는 역한 피로를 느끼게 될 것이다. 기계가 아닌,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의 본능이 밀어내는 거부감까지 AI가 어쩌진 못한다.
결국 미래의 창작자는 붓을 든 화가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가까워질 테다. 영혼 없는 악기들을 조율해, 기술은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귀해질 것이다. 살아남는 건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 끝에 매달린 사람의 철학일 테니까.
AI가 완벽해질수록 우리는 인간의 ‘빈틈’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무한 복제가 가능한 세상에서 인간은 데이터가 아닌 고통과 경험, 즉 ‘결핍’으로 창작을 이어 나가야 한다.
매끈한 AI 영상에는 거친 질감, 지질한 고뇌, 삶의 비루함 같은 것들이 없다. 그 울퉁불퉁한 인간미야말로 AI 시대의 가장 비싼 사치품이 될 것이다. 흔해지면 싸구려가 되고, 귀해지면 값이 오르는 건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세상의 이치다.
나에게 극장은 영화를 보는 곳이 아니었다. 기억이고, 경험이고, 공감이었다. 어떤 영화는 내용보다 같이 봤던 사람, 그날 마셨던 커피의 온도, 극장 문을 나서며 훅 끼쳐오던 밤공기의 냄새로 남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밖으로 나와, “너는 어땠어?”라고 물을 때의 그 미묘한 떨림 같은 것들 말이다.
작품 자체보다는 그 영화를 함께 봤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영화를 보던 ‘그때의 나’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클 때도 있다. 영화관을 나와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던 누군가와의 깊은 대화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기도 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그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은 얼마나 경이로웠던가. 우리는 서로의 시각과 생각, 취향을 유리알 다루듯 조심스럽게 존중하며 마음의 색을 수줍게 내보였다. 그건 영화라는 ‘콘텐츠’가 아니라, 관계라는 ‘맥락’이었다. 이제 영화관이 사라지면 그런 경험도, 기억도 함께 사라질 테다.
이제 곧, AI가 내 취향을 분석해 “결말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당신만을 위한 엔딩을 만들어 드립니다”라고 속삭이는 시대가 올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모두가 자기 입맛에 딱 맞는 세계관에 갇히게 될 때 ‘나와 다른 타인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다’는 그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경험은 엄청난 특권이자 가치가 될 것이다.
알고리즘은 ‘최적화’를 목표로 하기에 내가 싫어할 만한 요소, 나와 다른 생각은 미리 치워버린다. 하지만 인간의 대화는 ‘다름’을 전제로 한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타인의 시선을 통해 깨닫게 되는 그 지적 충격, 내 세계가 남의 세계와 부딪혀 깨지고 확장되는 경험은 오직 사람만이 줄 수 있다.
우리는 ‘물리적 영화관’의 마지막 세대일지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영화적 대화’를 가장 갈구하는 세대가 될 것이다. 쏟아지는 가짜들의 홍수 속에서, 진짜 사람의 목소리와 해석, 그 거칠고 투박한 진심을 듣고 싶어 하는 욕망은 더욱 뜨거워질 테다.
우리는 어쩌면 마지막 극장 세대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스크린 속의 환상이 아니라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체온을, 그와 나누는 대화의 온기를 기억해야 한다. 기술은 답을 주지만, 예술과 사랑은 언제나 질문을 던지는 쪽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