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은 어떻게 스스로 멸망하는가
2024년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 실패의 본질은 군사적 전략의 부재나 병력의 열세 때문이 아니었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공감 능력 부재와 인간성 결여 때문이다.
그것은 철저한 ‘감각의 패배’였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가장 큰 오판은 시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문화적 감수성’과 ‘역사적 부채감’을 얕잡아 본 데 있다.
공교롭게도, 아니 어쩌면 운명처럼, 계엄이라는 야만의 유령이 도착하기 직전 우리 사회는 거대한 문화적 예방접종을 마친 상태였다.
천만 관객이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군사 반란의 성공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역사를 만드는지 목격했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으며 소설 <소년이 온다> 속 5월의 광주가 겪은 국가 폭력의 아픔을 세포 하나하나에 되새겼다.
국민적 감수성과 공감도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벼려져 있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시민들은 이미 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군홧발’과 ‘탱크’가 가져올 비극을 뼛속 깊이 체험하고 있었다. 그런데 계엄이라니. 이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을 넘어,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 거대한 ‘무지(無知)’였다.
윤석열은 몰랐을 것이다. 매일 술독에 빠져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권력의 단단한 벽 안에 갇혀 공감 능력을 거세당한 자에게, 거리의 공기와 시민들의 눈빛 속에 흐르는 기류가 보였을 리 없다. 그는 아마도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K-팝’을 부르며 탄핵 시위하는 모습을 폭탄주에 취한 흐린 눈으로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얼음장 같은 한남동 아스팔트 도로를 지켰던 키세스단의 강단을 얕봤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겨울, 응원봉의 불빛은 총구의 섬광보다 강했고, 시민들이 부르는 노래는 군가보다 웅장했다. 그리고 그 광장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광장에서 온갖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깃발을 흔들고, 마이크를 쥐고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노무현과 노회찬을 떠올렸고, 가수 이승환의 공연을 보며 신해철을 떠올렸다. 윤석열 탄핵 선고에 아이처럼 눈물 흘리는 노신사의 얼굴 위로, 제주 4.3과 광주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 항쟁의 거리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무명씨’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우리가 들어 올린 것은 단순한 응원봉이 아니었다. 그것은 앞서간 이들이 밝히다 우리에게 전해주고 떠난 ‘못다 한 빛’이었다. 작가 한강의 말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고, 과거가 현재를 살렸다.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우리의 ‘감각’이, 총칼을 앞세운 저들의 ‘무감각’을 압도한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 앞에서도 축하 대신 조롱과 비하를 뱉어내며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혐오를 전시하던 매국 파시즘 세력을. 그 야만의 소란 탓에,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한국어 원문으로 읽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기쁨조차 온전히 나누지 못했다. 그들의 모습은 정확히 계엄을 획책한 자들의 내면과 닮아 있었다. 타인의 기쁨에 공감하지 못하고,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리지 못하는 자들. 그 ‘무감각’이야말로 그들을 파멸로 이끈 진짜 원인이었다.
무감각은 결국 스스로를 찌르는 칼이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없는 자는 자신의 몰락 또한 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감각을 몸에 새긴 시민들이 서로에게 건넨 따뜻한 눈빛과 핫팩 하나, 그리고 과거의 아픔을 이어받은 ‘상처받은 치유자’의 DNA였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시민을 이긴 적이 없다.
12월 3일, 우리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이 명제 하나를 남겼다. 총칼은 녹슬고 권력은 무너지지만, 사람의 마음에 가닿은 문장과 노래, 그리고 기억은 영원하다. 야만은 결코 문명을 이길 수 없으며, 망각은 기억을 이길 수 없다.
결국, 기억하는 자들의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