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조용한 '거악'보다 시끄러운 '마녀'를 미워하는가
전 어도어 대표 민희진의 2024년 4월 기자회견 이후, 나는 이렇게 글을 썼다.
초록색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파란 캡모자를 눌러쓴 채 “맞다이로 들어와”라며 ‘개저씨’들의 명치를 세게 때렸던 그 전설의 기자회견 이후, 세상이 조금은 바뀌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그대로다. 아니, 더 교묘하고 잔인해졌다.
다윗이 골리앗의 이마에 돌을 던진 후, 골리앗은 거대한 확성기와 법전, 그리고 돈다발을 꺼내 들었다. 지난 1년간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이 국내 최고의 로펌 김앤장을 앞세워 보여준 행태는 ‘자본주의 시대의 괴물’, 그 자체였다.
우리는 방시혁과 민희진에게 들이대는 ‘도덕적 잣대’를 공평하게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2019년, 방시혁은 기존 주주들에게 “상장 계획이 없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 주식을 팔게 유도했고, 이 주식은 사모펀드가 헐값에 사들였다. 하지만 그는 물밑에서 상장을 준비 중이었고, 상장 후 주가가 폭등하자 사모펀드는 주식을 매각해 무려 1조 원에 가까운 차익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방시혁은 사모펀드와 맺은 비밀 이면 계약을 통해 매각 차익의 약 30%를 챙기기로 약속받았다.
문재인 정권 말기에 벌어진 이 거대한 범죄는 윤석열 정부 내내 수면 아래 잠겨 있었다. 그러다 정권이 교체된 2025년 7월, 이재명 정부 금융위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시혁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비로소 의혹의 실체가 드러났다.
경찰은 방시혁이 이면 계약대로 약 1,900억 원을 정산받았다고 특정했고, 며칠 전 법원은 방시혁의 주식 등 약 1,500억 원 재산에 대해 ‘추징보전(자산동결)’을 결정했다. 추징보전이란, 범죄로 얻은 것으로 의심되는 수익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확정판결 전까지 동결하는 절차다. 사법부가 이 거대 권력의 혐의를 얼마나 엄중하게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다.
방시혁과 하이브는 민희진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지만, 방시혁의 혐의인 ‘사기적 부정거래’는 형사 처벌이 따르는 중범죄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왜일까? 일단 이에 대한 기사 자체가 몇 개 없다. 또한, 주가조작이나 회계 부정은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하다. 방시혁과 하이브 임원들은 ‘양복을 입은 점잖은 엘리트 남성들’이다. 이들의 범죄는 피가 튀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저 조용한 사무실에서 은밀한 서류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민희진의 이야기는 자극적이다. 게다가 그녀는 조신하게 당하는 피해자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소리 지르고 맞서 싸운다. 하이브의 언론플레이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민희진을 ‘비이성적이고 탐욕스러운 마녀’로 프레이밍함으로써 대중의 시선을 ‘기업의 구조적이고 조용한 범죄’에서 ‘탐욕스러운 여자의 개인적인 일탈’로 돌린다. 대중의 즉각적인 도덕적 판단을 흐리는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다.
이 지점을 파고든 것이 바로 하이브와 김앤장, 그리고 기득권 언론의 ‘스핀 닥터링(여론 조작)’이다. 그들은 하이브가 저지른 ‘거악(금융 범죄, 음원 사재기 등)’은 복잡하고 어려운 숫자의 영역으로 밀어 넣고, 민희진의 ‘태도’와 ‘사생활’을 난도질해 전시했다.
최근 민희진의 풋옵션 재판은 이 ‘거악’이 작동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앤장은 사전에 제출하지도 않은 증거를 법정에서 기습적으로 꺼내 들었다. 민희진이 어도어에 입사하기도 전인 2020년, 지인과 나눈 사적인 정치 발언 카카오톡을 짜깁기해 공개한 것이다. 재판장조차 즉각 제동을 걸었다. “입사 전의 일이고, 사실관계도 명확하지 않으며, 본 재판과 무관하니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라고 선을 그었다. 심지어 현장의 기자들에게 “기사로 쓰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김앤장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 애초부터 그들의 목적은 법정 증거 효력 채택이 아닌, 법정에 온 기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재판부의 언론을 향한 엄중한 경고는 무력했다. 재판 직후, 약속이라도 한 듯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본질 없는 내용은 판박이였다. 본질인 계약 분쟁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민희진의 정치적 성향을 특정해 공격하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사석에서 민주당을 비판했으니, 곧 ‘보수 지지자’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의도가 선명했다.
이는 진보 성향의 대중과 민희진을 갈라치기하려는, 치졸하고도 정교한 정치 공작이었다. 하이브처럼 거대한 홍보팀이나 언론 통제 창구가 없는 민희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개인 SNS를 켜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즉각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는 민주당 지지자이고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며, 윤석열 탄핵 찬성 집회 후원까지 했다”라고 자신의 가장 내밀한 정치적 성향까지 발가벗듯 고백해야 했다. 거대 권력이 짠 ‘프레임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개인이 얼마나 처절하게 제 살을 깎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촌극이자 ‘마녀재판’이었다.
민희진은 ‘착한 피해자’ 대신 기꺼이 ‘미친 X’이 되기로 했다. 어쩌면 그녀에게 선택권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개저씨”들에게, “할 말 있으면 뒤에서 그러지 말고 맞다이로 들어와”라고 일갈하며, ‘개저씨’들이 ‘군대식 축구’하듯 일하지 말라고 엔터 업계에 일침을 날린 순간, 이미 예견된 대가였다.
그녀가 할 말을 하고, 세상이 강요하는 방식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동안 방시혁은 보도자료와 언론 플레이 뒤에 숨었다. 그러나 민희진은 수백 대의 카메라 앞에 고개를 들고 섰다.
일부 대중은 여전히 방시혁의 편을 들거나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양비론을 펼친다. 하지만 이것은 ‘밥은 밥이고 나물은 나물’인 문제다. 방시혁의 건은 국가 시스템을 교란한 중범죄(형사)이고, 민희진이 현재 하이브와 진행 중인 재판은 쌍방의 이익과 손해를 다투는 ‘민사’ 재판이다.
하이브는 민희진의 기자회견 직후, 그녀를 형사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경영권을 찬탈하려 했다는 ‘배임’ 혐의로 고발했지만, 경찰은 ‘혐의없음(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1조 원대 사기 혐의를 받는 ‘양복 빼입은 임원들’보다, 회사와 싸우는 개인인 민희진에게 더 가혹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이 편향된 시각은 뉴진스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들은 뉴진스 멤버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고 민희진의 도의적 책임을 말한다. 어제 <장르만 여의도> 인터뷰에도 진행자는 민희진에게 ‘뉴진스 엄마’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하이브와 방시혁의 도의적 책임은 일체 거론하지 않았다.
진행자와 기자는 뉴진스 멤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전제로 편향된 질문을 이어갔다. 이는 철저히 ‘어른’의 시각이자, 아이돌 멤버 개개인을 스스로 사고할 수 없는 ‘상품’이나 ‘꼭두각시’로 보는 오만한 편견이다. 뉴진스 멤버들 중엔 성인이 된 이들도 있다.
민희진이나 부모님과 상의는 했을지 몰라도 멤버들은 자신들의 최종 결정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감사에 출석해 하이브로부터 당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처우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시스템에 반기를 들면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고 했고, 그 또한 각오하고 있다고 멤버들 스스로 밝혔다.
'어려서 뭘 잘 모른다', '나중에 후회할 거다' 선비질을 하는 사람들은 아이돌 멤버를 잠시 쓰고 버리는 '한정품' 정도로만 생각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멤버들이 훗날, 자신이 불합리한 상황에 목소리를 내고 기득권에 대항했던 경험을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단단한 자존감을 가꾸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들은 '아이돌'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하이브 역시 민희진에게 “‘뉴진스 엄마’가 멤버들을 버렸다”는 프레임을 씌운다. ‘엄마’라고 해서 ‘자식’을 통제하고 이용하거나 가스라이팅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이브 역시 아티스트를 존중하고 케어해야 하는 책임을 똑같이, 아니 더 크게 가졌어야 했다.
하이브가 진정으로 뉴진스를 아꼈다면, 애초에 불법 사찰과 음해로 민희진을 대표이사에서 내쫓으려고 하지 말았어야 한다. 거기에 반발해 기자회견을 한 민희진에게 괘씸죄를 적용해 광장에 메달고 모든 자원을 총동원 해 마녀재판으로 몰고 가지 말았어야 했다. 하이브의 주장대로 '뉴진스 엄마'라는 사람을 뉴진스 멤버들과 팬들, 대중이 보는 가운데 인간적인 모멸감으로 밀어넣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누군가를 해하거나 사기성 금융 범죄를 저질러 '형사 재판'에서 죄의 유무를 따지고 있는 게 아니다. 민희진과 하이브 간의 분쟁은 서로의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민사 재판' 뿐이다. 그녀가 하이브를 상대로 법률적으로 이기든 지든, 그것은 재판관이 결정할 일이다. 설령 민사 재판에서 그녀가 진다고 해서 그녀가 범죄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이브 방시혁의 혐의는 재판에서 유죄로 판결되면 범죄가 된다. 다만 민희진의 재판 과정에서 거대 자본과 시스템이 한 개인을, 그것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하는지 우리는 똑똑히 봐야 한다.
그녀의 싸움은 아주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이브는 돈으로 기사를 사고 여론을 조작할 수 있지만, 진실은 가끔 달의 뒷면에 숨어있을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다. 영화 <굿뉴스>의 대사처럼, 그들은 “일어난 사실, 약간의 창의력, 믿으려는 의지”로 뉴스를 조작하지만, 나는 나의 ‘믿으려는 의지’를 저들이 아닌 민희진의 편에 두고 싶다.
민희진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보란 듯이, 낡은 관습에 찌든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진짜 크리에이티브’가 무엇인지 결과물로 승부할 것이다.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당당한 ‘새로운 건설’이야말로 그녀가 우리 사회에 날리는 가장 통쾌하고 우아한 복수가 될 것이다. 민희진이 새롭게 설립한 레이블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