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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감옥'이 아닌 '파산'을 두려워한다

사이버렉카 강용석과 늙은 한국 법의 비극

by 조하나


"김건모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전해달라."


최근 유튜브 채널 ‘변기클리닉’에서 흘러나온 이 사과는 기괴하다 못해 섬뜩했다. 6년 전, 확인되지 않은 성폭행 의혹을 마치 사실인 양 중계하며 국민 가수 김건모를 사회적으로 매장했던 장본인이 강용석 변호사다. 김건모는 지난 6년 간 법정 싸움을 하며 와이프를 잃었고, 시간을 잃었고, 돈을 잃었고, 아버지를 잃었고, 노래를 잃었고, 또 자기 자신을 잃었따. 김건모는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고 무혐의를 받아내 이제 겨우 마이크를 다시 잡았는데, 그를 나락으로 밀었던 가해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카메라 앞에서 '쿨한 사과'를 콘텐츠로 팔고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악의적 언어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스냅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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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의 기록, 그리고 '집행유예'라는 날개


강용석의 지난 행적은 '표현의 자유'라는 탈을 쓴 폭력의 역사였다. 그는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씨가 "빨간색 포르쉐를 탄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대중의 혐오를 조장했고, 유명 블로거 '도도맘'에게 허위 고소를 종용하여 사법 체계를 농락했다(무고 교사). 지난 대선 때는 이재명 대표가 "어린 시절 소년원에 다녀왔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선거판을 흔들려 했다.


연예인을 향한 칼날은 더욱 더러웠다. 그는 배우 김수현이 과거 같은 소속사였던 김새론과 찍은 사진이 공개되자, 두 사람의 나이 차와 과거 인연을 악의적으로 엮어 김수현에게 입에 담기도 끔찍한 '소아성애자'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대중에게 혐오감을 심어주고, 그 조회수로 수익을 창출하는 전형적인 '인격 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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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는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헌정 질서를 위협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옹호하고 찬양하는 극단적인 선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개인의 인격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흔드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사법부는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선거법 위반, 무고 교사, 명예훼손 등 줄줄이 유죄 판결이 나왔고 징역형이 확정되거나 선고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집행유예'였다. 법적으로는 '죄인'이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자유인'이다. 변호사 자격증만 잠시 내려놓았을 뿐, 그는 보란 듯이 새로운 사이버렉카 채널 '변기클리닉'을 개설했다. 오픈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이 채널의 구독자는 3만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김건모를, 정치 이슈를, 자극적인 소재를 먹이 삼아 슈퍼챗을 긁어모으고 있다. 법의 심판이 그에게는 족쇄가 아니라, 오히려 "탄압받는 투사"라는 훈장이 되어 후원금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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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었다면 그는 이미 '지워졌을' 것이다


왜 그는 멈추지 않는가? 답은 간단하다.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명예훼손으로 물어줘야 할 위자료는 고작 수백, 수천만 원 수준이다. 반면, 그가 파괴적인 방송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억 단위다. 그에게 벌금은 범죄의 대가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세금'이나 '운영비'에 불과하다.


만약 그가 미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이미 파산하여 마이크를 잡을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미국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다. 가해자가 악의적으로 불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게 하여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응징하는 제도다.


미국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사생활 영상을 보도했던 언론사 '고커 미디어'는 1,30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맞고 파산했다.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조작이라고 떠들었던 미국의 극우 사이버렉카 '알렉스 존스'는 유족들에게 약 2조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고 개인 파산을 신청했다. '표현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미국 법은 "타인의 고통을 팔아 돈을 번 자는, 그 돈을 모두 토해내고 빈털터리가 되어야 한다"는 정의를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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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법, 비겁한 국회, 그리고 카르텔


그렇다면 한국은 왜 이 강력한 칼을 뽑지 못하는가? 우리의 법이 너무 늙었고, 정치는 너무 비겁하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 법조계는 여전히 "민사 배상은 손해만큼만(전보 배상)"이라는 19세기 도그마와 "형사 처벌과 민사 배상을 중복하면 안 된다(이중 처벌 금지)"는 논리에 갇혀 있다. 시대는 초연결 사회로 변해 말 한마디가 순식간에 한 사람의 인생을 전 지구적으로 말살시키는데, 법은 여전히 멱살 잡고 싸우던 시절의 잣대로 피해 금액을 계산한다.


둘째, 국회의 위선이다. 쯔양 협박 사건 등 사이버 렉카의 폐해가 터질 때마다 국회의원들은 앞다퉈 피해자를 국감장에 세우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쇼를 벌인다. 하지만 정작 징벌적 손해배상법이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늘 흐지부지된다. 자신들이 언론과 유튜버의 공격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는 정치인들과, "언론 자유 위축"을 방패 삼아 기득권을 지키려는 언론사들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법안 통과를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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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된다


강용석은 개인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 법 시스템의 구멍을 찾아내어 기생하는 '시스템의 버그'이자 괴물이다. 그가 사과를 하든 궤변을 늘어놓든, 그것이 돈이 되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늙고 병든 대한민국 법이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제2의 김건모, 제2의 김수현, 제2의 이선균, 그리고 수많은 피해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돌을 맞고 있다. 때로는 그 돌팔매질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범죄로 얻은 이익을 뿌리까지 환수하고 경제적으로 파산시키는 것이다. 뉴미디어 시대의 '살인'은 칼이 아니라 키보드와 마이크로 이루어진다. 그 살인마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패는 '도덕적 호소'가 아니라, "거짓말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공포를 심어주는 강력한 법뿐이다.


국회가 밥그릇 싸움과 눈치 보기를 멈추고 이 당연한 상식을 법으로 만들지 않는 한, 우리는 변기클리닉 같은 오물통이 쏟아내는 악취를 계속해서 맡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직무유기다. 안 그러면 그 다음은 내 차례, 당신 차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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