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의 광란의 칼춤, 그리고 12.3 내란 1주년
2025년 12월, 대한민국은 거대한 역설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1년 전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군홧발 소리와 함께 헌정 질서를 짓밟으려 했던 내란의 실체는 '친위 쿠데타'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국가 전복을 위한 '살육 계획'이었다.
수사를 통해 드러난 '노상원(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은 그야말로 살생부였다. 그 안에는 입법·사법·언론계 주요 인사 500여 명을 체포하고 제거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적혀 있었다. 실행 과정은 더 끔찍했다. 계엄군은 무려 5만 7천여 발의 실탄을 지급받아 국회로 향했고, 특전사 체포조는 부정선거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선관위 과천 청사로 가장 먼저 진입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국회가 헌법에 따라 계엄 해제를 의결한 직후다. 내란 수괴 윤석열과 김용현 등은 헌법에 승복하기는커녕, 국방부 지하 벙커에 모여 '2차 계엄'을 모의했다. "국회의원들을 끌어내서라도 다시 계엄을 선포하면 된다"는 그들의 광기는, 대한민국을 1980년의 피 냄새나는 과거로 되돌리려는 명백한 확신범의 행태였다.
그 공포의 밤이 지나고 맞이한 지난 1년은 더 처참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은 체포 영장 앞에서도 극우 파시즘 세력 '윤어게인'과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방패막이 세워 공권력의 집행을 물리적으로 막아섰다.
그 후 벌어진 법조 카르텔의 행태는 '광란' 그 자체였다. 윤석열을 구속한 지귀연 재판부는 헌정사상 듣도 보도 못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쪼개 계산하여 그를 기습적으로 풀어주었고, 검찰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항고를 포기했다. 사법부와 검찰이 한통속이 되어 내란범에게 법적 면죄부를 발행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란범들이 거리를 활보할 준비를 하는데, 왜 광장은 1년 전처럼 뜨겁지 않은가.
왜 사람들은 소위 '민주 진영' 인사의 작은 흠결에는 그토록 분노하면서, 국가를 전복하려 했던 세력의 거악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무기력한가.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왜 조국 전 장관 딸의 표창장 하나에는 세상이 무너질 듯 광분하던 사람들이, 나경원, 심우정, 유승민 등 보수 기득권 자녀들의 입시 비리, 취업 청탁, 사학 비리 앞에서는 눈을 감는가. 언론의 기울어진 운동장 탓만 할 일이 아니다. 이것은 대중 심리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기대 위반'의 역설 때문이다.
우리는 보수 기득권에게 애초에 '정의'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원래 욕망에 충실한 존재,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익 집단'으로 인식된다. 그들의 비리는 마치 태풍이나 가뭄처럼, 으레 일어나는 자연재해처럼 받아들여진다. "원래 그런 놈들"이라는 체념은 분노를 거세한다. 악이 일상이 되면, 그 악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다.
반면, 촛불을 들고 정의를 외쳤던 이들에게 우리는 무의식 중에 '성직자의 순결'을 강요한다. 그들은 이슬만 먹고살아야 하며, 흙탕물 튀기는 정치판에서도 흰옷에 얼룩 하나 묻히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작은 실수는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배신'이 된다. 대중은 대놓고 나쁜 짓을 하는 조폭보다, 십계명을 어긴 성직자를 돌로 쳐 죽일 때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기이한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2.3 내란을 전후하여 벌어진 여론전의 이면에는,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정교하게 난도질한 '설계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이 심리를 이용해 완벽한 비대칭 전력을 구축했다. 민주 진영에게는 '성인군자'라는 좁은 감옥을 만들어 가두고, 티끌만 한 흠결이라도 발견되면 "위선자"라며 조리돌림했다. 반면 자신들은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도 "유능하면 그만"이라는 뻔뻔함으로 무장했다.
나경원과 심우정 등 보수 진영 인사의 비리가 터질 때마다 그들은 사과 대신 더 큰 굉음을 내며 또 다른 이슈로 덮어버리는 전략을 썼다. 수백 개의 못이 박힌 침대는 아프지 않은 법이다.
이 전략의 목표는 명확하다. 내란 세력의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민주 진영 지지자들의 가슴에 '정치적 수치심'을 심는 것. "저 놈이나 이 놈이나 다 똑같다"는 양비론과 냉소를 퍼뜨려, 시민들이 스스로 환멸을 느끼고 투표장을 떠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들이 노린 '승리의 방정식'이다.
우리는 이 교묘한 가스라이팅에서 깨어나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선'이 더러운 '거악'보다 못하다는 착각, 그 착각이야말로 독재가 가장 사랑하는 먹잇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인물에 대한 분노를 넘어,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국회로 시선을 돌려보자. 185석의 거대 여당이 존재함에도 국민의힘은 '59박 60일'이라는 초유의 필리버스터로 연말 국회 민생 법안 처리를 또다시 볼모로 잡았다. 텅 빈 본회의장에 고작 4명의 국민의힘 의원이 자리를 지키며 자신들이 이미 민주당과 합의한 법안,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까지 반대 토론을 이어가는 이 촌극의 목적은 단 하나다. 국민에게 정치 혐오를 심어, 내란 청산이라는 역사의 과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
그들은 왜 이토록 처절하게 막아서는가? 대통령이 탄핵당해도 국회의원의 임기 4년은 헌법이 보장해 주는 ‘방탄조끼’였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까지 3년이나 남았다”는 그 안일한 계산이 내란 동조 세력의 생명줄이었다.
이제 10년 안에 두 번이나 대통령을 탄핵해 낸 위대한 국민에게 걸맞은, 진정한 책임 정치를 위해 헌법이라도 개정해야 하지 않을까?
첫째, 대통령이 헌법을 위배하여 탄핵될 시 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 또한 해산하고, 즉시 총선을 실시한다.
둘째, 대통령이 탄핵되면 그가 임명한 공직자의 임기도 즉시 종료되며, 차기 정부가 새롭게 임명하도록 한다.
대통령과 국회를 ‘운명공동체’로 묶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임기를 인질 삼아 대통령의 내란을 방조하거나, 공모하거나, 민생을 볼모로 무책임한 정쟁만 일삼는 '방탄 국회'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함이다. 박근혜와 윤석열은 헌법을 위반해 국민과 헌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민의힘은 정신을 못 차리고 국민을 농락한다. 그들은 한 나라의 헌정이 중지된 '내란'을 그저 어린애 소꿉놀이 장난쯤으로 여긴다.
대한민국 국민은 나라로부터 받은 것 하나 없이 늘 주기만 했다. 위기 때마다 도망친 것은 지도층이었고, 피 흘려 나라를 지킨 것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자격이 있다.
지금의 소란을, 기득권의 저 광란의 칼춤을 두려워하지 말자. 바퀴벌레가 쏟아져 나온다는 건 이제야 비로소 청소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병든 대한민국이 건강해지기 위해 앓는 열병이자,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의 시간이다. 설계된 절망을 넘어 광란의 칼춤이 멈춘 폐허 위에서 우리는 새로운 공화국을 세울 것이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차고 넘치는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