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엘리트 지식인과 인플루언서의 기묘하고도 적대적인 공생 관계
“평범한 이들의 시대정신과 함께 호흡하는 지식인.”
최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이하 ‘뉴스공장’) 유튜브 채널의 ‘정준희의 논’이라는 프로그램, 유시민 작가와의 대담 영상에 붙은 제목이다.
우리가 숨 쉬듯 내뱉는 언어에는 알게 모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배어있기 마련이다. ‘평범한 이들’과 ‘지식인’을 굳이 구분 지은 저 제목의 의미와 의도는 무엇일까. 이미 “우리는 너희와 다르지만, 너희의 눈높이에 맞춰 호흡해 주겠다”는 식의 은밀한 위계와 시혜적 태도가 깔려 있는 걸까.
AI 시대, 정보의 격차가 사라져 가는 지금, 스스로를 ‘평범한 이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 ‘지식인’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은 정준희 교수의 행보를 보며 더욱 짙어진다. 그는 ‘서울대 출신 언론학자’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 <해시태그>에서 김어준 식의 진영 논리까지 비판하던 인물이었다. ‘뉴스공장’은 쳐다도 안 볼 것 같던 그 고고한 학자의 자존심도, 결국 거대 인플루언서의 플랫폼 권력 앞에서는 무력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뉴스공장’이라는 비주류 감성의 플랫폼에 입성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구별 짓는다는 사실이다. 정준희와 유시민은 최욱 같은 진행자를 ‘인플루언서’로, 자신들을 ‘지식인’으로 칭하며 은근히 선을 긋는다. 그리고 그 기준은 ‘서울대’라는 학벌과 전통적 권위이다. 이는 자신들이 비판하던 학벌주의와 급 나누기를 답습하는 꼴이자, 대중적 영향력에 밀리는 현실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방어 기제처럼 보인다.
현실은 냉혹하다.
그들이 아무리 고고한 척 급을 나누어도,
정작 김어준이나 최욱 같은 비주류 출신 인플루언서가 빌려주는 마이크 없이는
대중에게 메시지조차 전달할 수 없는 신세다.
전통적 엘리트는 뉴미디어 권력에 기생하고,
뉴미디어 권력은 엘리트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가벼움’을 세탁한다.
지식인과 인플루언서의 기묘하고도 적대적인 공생 관계다.
그 정점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있다. 과거 <나꼼수> 시절부터 권력 밖에서 기득권을 들이받던 야생마 같던 그들은 이제 그 자체가 거대한 기득권이 되었다. 김어준은 교묘한 ‘큐레이션’을 통해 민주당 정치인들을 줄 세우고, 지지자들에게 듣고 싶은 뉴스만 떠먹여 주며 확증 편향의 성을 쌓았다. 그는 그가 그토록 싸워왔던 레거시 미디어 권력과 얼굴만 다를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질문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성역화, 이것이 권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왜 수많은 대중은 김어준, 유시민, 정준희와 같은 뉴미디어의 권력자와 엘리트 지식인에게 자신의 이성을 송두리째 반납하는가. 왜 그들이 뱉어내는 말을 비판 없이 삼키고, 마치 앵무새처럼 인터넷 세상 곳곳으로 실어 나르며 그들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가.
그 기저에는 ‘생각의 외주화’라는 지적 태만이 자리 잡고 있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세상의 이면을 스스로 파헤치고 고민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반면, 이 새로운 권력자들은 세상을 아주 명쾌하게 ‘선과 악’, ‘우리와 적’으로 단순화해 정리해 준다. 대중은 그들이 내려준 ‘정답지’를 받아들임으로써 복잡한 사유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나는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도덕적 우월감까지 획득한다.
이 과정에서 ‘메신저’는 단순한 스피커를 넘어 종교적 교주가 된다. 그들의 말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기에, 오류조차 ‘큰 그림’으로 포장된다. 대중은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잃어버린 채 메신저의 입을 빌려 분노하고, 메신저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돌을 던진다. 이것은 시민의 연대가 아니다. 그저 알고리즘과 확증 편향이 만들어 낸 거대한 ‘팬덤’이자 비판적 이성이 마비된 집단적 광기에 가깝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명백하다.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 대중은 조종하기 가장 쉬운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메신저의 화려한 언변과 서울대라는 간판, 혹은 그들이 주는 ‘사이다’ 같은 쾌감에 취해 질문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주권자가 아닌 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땔감으로 전락한다.
결국 답은 하나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그럴듯한 말잔치에 “역시 서울대는 달라”라며 박수 치는 일을 멈춰야 한다. 큐레이션 된 정보의 안락함에 젖어 내 판단의 주권을 그들에게 양도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불편하고 고독하지만 사회 구성원 각자 ‘비평가’이자 ‘지식인’의 의식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 메신저의 권위나 학벌에 대한 맹목적 추앙을 거두고, 오직 개별적인 ‘메시지’만을 날카롭게 발라내어 씹어 삼키는 힘, 누군가의 입을 빌리지 않고 ‘내 언어’로 세상을 말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 같은 토론의 관객이 아닌, 우리 모두의 토론에 직접 참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