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의 종말: ‘정답 중독’ 사회의 파산 선고

이정효 감독과 팔란티어가 쏘아 올린 공

by 조하나


수원삼성의 제10대 감독으로 이정효가 취임했다. ‘레알 수원’이라 불리며 성골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던 그 자리에, 비주류의 아이콘이 입성한 것이다. 한편,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 팔란티어는 "아이비리그 학위는 더 이상 지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며 고졸 인재에게 코딩과 철학을 맡기는 실험을 단행했다.


이 두 사건은 단순히 ‘학벌 파괴’라는 채용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간판’이라는 사회적 화폐가 겪고 있는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그 가치 폭락에 대한 시장의 냉혹한 대응이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간판의 몰락 그 자체가 아니다. 그 간판을 얻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 온, 그리고 지금도 지불하고 있는 대가가 너무나 참혹하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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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이 길러낸 괴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4세 고시’의 나라다. 유치원 때부터 의대 반을 편성하고, 20년간 아이들을 ‘입시’라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에 올린다. 부모들은 이것이 자녀의 안정을 위한 투자라 믿지만, 사실 이 시스템이 생산해 내는 것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착한 수동체’들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주어진 보기 중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훈련만 20년. 비판적 사고는 오답 시비만 부를 뿐이고, 독창적 질문은 진도를 방해하는 불순한 행위로 치부된다. 그렇게 길러진 ‘무결점 모범생’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가 정답을 내려주기를 기다린다.


우리가 목격하는 ‘메신저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정답만 찾던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이제는 인생의 정답을 찍어줄 ‘선생님’을 찾아 헤매게 만든다. 대중은 왜 특정 유튜버나 정치 평론가, 소위 ‘배우신 분들’의 말을 성경처럼 떠받드는가? 왜 그들의 논리가 궤변일지라도 비판적으로 걸러내지 못하고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근육’을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학벌이라는 권위에 눌려, 혹은 "서울대 나온 사람이니 맞겠지"라는 게으른 믿음에 기대어, 판단의 주권을 남에게 외주하는 행위.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지적 태만이다. 대치동 시스템은 결국 서울대생을 길러낸 것이 아니라, 권위에 복종하고 정답지 없이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영원한 수험생’들을 양산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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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 길들여지지 않는 힘


이정효 감독과 팔란티어가 원한 인재상은 명확하다. 단순히 축구를 잘하거나 코딩을 잘하는 기술자가 아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시스템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의심하는 야성’이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압도하는 2026년,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은 더 이상 능력이 아니다. 그건 기계가 훨씬 더 잘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해진 트랙을 이탈해 “이 문제가 과연 올바른가?”라고 되물을 수 있는 삐딱함, 남들이 다 예라고 할 때 판을 엎을 수 있는 반골 기질, 즉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러한 야성을 ‘부적응’으로 규정하고 치료하려 든다. 부모들은 아이의 야성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선행 학습’을 채워 넣는다. 4세부터 시작된 이 거대한 거세 작업의 결과, 우리는 전교 1등은 넘쳐나지만, 세상을 바꿀 혁신가는 멸종해버린 앙상한 사회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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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는 멈췄다, 궤도를 이탈하라


수원삼성의 강등은 명문가의 몰락이 아니라, 껍데기만 남은 권위주의의 장례식이었다. 팔란티어의 도발은 아이비리그 졸업장이 더 이상 실력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음을 알리는 사망진단서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믿었던 ‘명문대 간판’과 ‘유명인의 권위’는 유효기간이 만료되었다. 대중은 더 이상 '메신저'의 후광에 속지 말고, '메시지'의 본질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검증자’가 되어야 한다.


4세 아이의 손을 잡고 학원가로 향하는 그 발길을 멈춰라. 당신이 빚을 내어 아이에게 사주고 있는 것은 ‘미래의 티켓’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노예 문서’일지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전한 정답지가 아니다. 정답이 없는 거친 들판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낼 수 있는, 펄떡거리는 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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