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결코 ‘공짜 점심’을 주지 않는다

1945년 한반도의 비명이 2026년 베네수엘라에서 들린다

by 조하나


역사는 반복된다, 더 잔혹한 희극으로


1989년 12월,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를 침공했을 때,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은 파나마의 실권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아닌 ‘마약 사범’으로 규정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내세워 체포 작전을 펼쳤다. 노리에가는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해 있다가, 1990년 1월 3일에 미군에 투항하여 체포되었다.


36년 후 정확히 같은 날인 2026년 1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먼지 쌓인 그 낡은 각본을 다시 꺼내 들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밤하늘이 미군 폭격기의 섬광으로 찢어지고, 현직 대통령 마두로가 짐짝처럼 포승줄에 묶여 미국행 수송기에 실리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던 ‘국제법’이라는 얇은 안전망은 완전히 소멸했다.


이것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강대국 미국의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다. 미국은 이제 눈치 보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미국에 맞서면 언제든 주권 국가를 침공할 수 있다는 대대적인 선언이다. ‘힘의 논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야만의 시대로 우리는 회귀(回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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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를 습격한 장사꾼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자가 이번 베네수엘라 공습 작전의 의미를 묻자, 그는 특유의 건조하고 뻔뻔한 어조로 답했다.


우리는 지금 오일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We are in the oil business). 다른 많은 나라들에게, 앞으로 우리는 엄청난 양의 오일을 팔 것이다.”


그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자유나 인권을 위해 F-35를 띄운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지구상에서 가장 매장량이 풍부한 유전의 소유권 등기를 미국 앞으로 이전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물리적 강제 집행을 감행했을 뿐이다. 이것은 전쟁이라기보다 차라리 거대한 규모의 ‘적대적 M&A(인수합병)’에 가깝다.


그렇기에 지금 한국 서울의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나라 대통령도 잡아가 달라”, “미국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고 외치는 일부 세력의 목소리는 슬프도록 공허하다.


비즈니스맨 트럼프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베네수엘라 독재자 마두로를 징벌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 ‘독재’냐 ‘민주’냐, 혹은 ‘부정선거’냐 아니냐 하는 이념 논쟁은 돈이 되지 않는, 귀찮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가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은 ‘이익’이다. 한국의 매국 파시즘 세력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확실한 현금이 아니라면, 그는 한국의 매국 파시즘 세력에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에겐 현 대한민국 정부가 훨씬 더 자신에게 이득을 준다.


장사꾼 트럼프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으며, 핵무기를 가진 ‘강한 독재자’ 푸틴과는 거래를 할지언정 싸우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정의의 승리가 아니라 ‘선택적 정의’가 지배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정글의 민낯이다.






평양의 비웃음: "핵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지금 지구상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 뉴스를 보며 가장 안도하고, 동시에 차가운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이는 평양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일 것이다.


그에게 이번 사건은 ‘핵무용론(核無用論)’의 종말이자, ‘핵보유론’의 완벽한 승리를 의미한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지켜본 ‘리비아의 카다피’가 핵을 포기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핵 없이 ‘반미’를 외치던 마두로가 짐짝처럼 끌려가는 꼴을 목격했다.


트럼프가 푸틴 앞에서는 ‘협상가’를 자처하며 브로맨스를 과시하면서도, 마두로에게는 가차 없이 폭격기를 띄운 결정적 차이는 바로 ‘핵 버튼’의 유무(有無)다.


김정은에게 이번 공습은 “핵만이 유일한 생명 보험”이라는 낡은 신념을 절대적인 진리로 굳혀주었다.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혹시나 기대했던 북미 대화의 문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의 손에 의해 닫혔다. 이제 북한은 ‘비핵화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고, 더욱 광적으로 핵탄두의 소형화와 다종화에 매달릴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처럼 우리를 침공하려 한다면, 서울과 도쿄, 그리고 괌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그들의 협박은 이제 단순한 레토릭이 아닌, 생존을 위한 실질적인 교전 수칙이 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의 평화 시계는 멈췄다. 트럼프가 쏘아 올린 미사일은 카라카스를 타격했지만, 그 파편은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를 산산조각 냈다.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는 미국과 ‘핵에 의한 생존’을 믿는 북한 사이에서 한국은 더욱 더 신중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침묵하는 공범들과 방조자들


운명의 신은 짓궂게도, 이 거대한 혼돈의 순간에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을 베이징 한복판에 세워두었다. 미국의 동맹국 정상이, 미국이 침공한 나라(베네수엘라)의 가장 강력한 후원국인 중국의 심장에서 건배를 제의해야 하는 이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다.


워싱턴은 한국 정부에 “동맹으로서 지지를 표명하라”라고 압박할 것이고, 베이징은 “제국주의적 폭거를 규탄하라”고 눈치를 줄 것이다. 강대국들의 폭력 게임 사이에 끼인 한반도의 위태로운 실존, 그 자체다. 다행히 현 대한민국 정부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외교적 대처를 하고 있다.


더욱 섬뜩한 것은 강대국들의 ‘짜고 치는 침묵’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겉으로는 핏대를 세우며 미국을 비난하겠지만, 그들의 속내는 안도감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이 ‘자국 안보’와 ‘마약 퇴치’를 명분으로 타국 대통령을 제거하는 선례를 만들었으니, 중국이 대만을 압박하는 것도, 러시아가 동유럽을 유린하는 것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지워버리는 것도 막을 명분이 사라졌다.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공포의 면죄부’가 전 세계적으로 발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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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혹자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서방 언론의 논조를 빌려 교묘한 양비론을 펼친다.


“국제법 위반과 절차적 문제는 유감이나, 결과적으로 베네수엘라 국민의 해방은 환영한다.”


물론 역사는 ‘불법적 정의’를 용인한 적이 있다. 1960년 이스라엘 모사드가 아르헨티나 주권을 침해하며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납치했을 때, 1999년 나토가 유엔 승인 없이 세르비아를 폭격해 인종 청소를 막았을 때, 인류는 “절차적 불법보다 인류애적 정의가 우선한다”며 눈을 감아주었다. 이 세상은 그만큼 입체적이고 복잡하다.


하지만 2026년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그들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아이히만 납치에는 ‘홀로코스트 단죄’라는 역사적 절박함이 있었고, 코소보에는 ‘대량 학살 저지’라는 인도적 급박함이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폭격기에는 인류애도, 역사적 정의도 없다. 오직 ‘석유’와 ‘패권’이라는 탐욕스러운 화물만이 가득하다. 트럼프는 과거의 ‘도덕적 예외’ 사례들을 훔쳐와 자신의 강도 행각을 포장하는 포장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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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한반도의 상처와 회복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은 80년 전, 한반도에 짙게 깔렸던 ‘해방의 환호’ 뒤에 숨겨진 ‘점령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나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1945년 9월 7일, 맥아더 장군이 발표한 포고령 제1호의 첫 문장은 명확했다. 미군은 스스로를 우리를 구하러 온 ‘해방군’이 아닌, 영토를 접수하러 온 ‘점령군’으로 규정했다. 그들의 목표는 한국의 즉각적인 독립이 아니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안정적 관리’였다.


미국은 행정 효율성을 명분으로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관료와 친일파를 그대로 유임시켰다. “독재자를 없애주고 해방시켜 주었으니 고맙지 아니한가?”라고 묻겠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자주적인 정부 수립의 기회를 박탈당했고, 살아남은 친일 기득권과 민족 세력 간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을 겪어야 했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1945년 한반도의 비극적 재현이다. 미 군정이 우리의 ‘건국준비위원회’나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원활한 석유 수급을 위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마두로 정권의 부패한 관료라도, 혹은 기회주의적 기득권층이라도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 이후다. 지금 베네수엘라 거리는 “독재자를 없애줘서 고맙다”는 친미파와, “식민지가 될 수 없다”는 반미파로 나뉘었다. 이것은 해방 공간에서 ‘신탁통치 찬성 대 반대’, ‘좌익 대 우익’으로 갈라져 서로를 죽고 죽이던 우리의 슬픈 자화상과 너무나 닮아 있다. 그 분열의 끝에서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었고, 70년이 넘도록 남북으로 나뉘어 허리가 끊어진 채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외세가 던져준 ‘불완전한 해방’이 낳은 오랜 독재와 군사 정권을 끝장낸 것은, 결코 미국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 '시민'이었다.


4.19 혁명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그리고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피의 강을 건너며, 한국의 시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렸다. 지금 대한민국이 여전히 내부의 모순과 사회적 갈등으로 신음하면서도 끝내 ‘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것은 제국이 베푼 ‘공짜 점심’을 거부하고,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직접 쟁취한 ‘진짜 밥상’을 차렸기 때문이다. 남이 가져다준 민주주의는 모래성처럼 무너지지만, 스스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그 어떤 폭풍에도 뿌리 뽑히지 않는다.






따뜻한 이불속의 멍청이들


전쟁을 ‘스펙터클한 게임’처럼 소비하고 있는 우리 자신 또한 돌아봐야 한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스마트 폭탄을 보며 우리는 살인과 폭력에 무뎌져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기습 공습에 따른 피해는 민간인 포함 80여 명. 현재 계속해서 집계 중이라 그 수는 늘어나고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엘리자베스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대화 장면을 우리는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좋소, 계속해 보시오. 그 ‘이념’들 말이오.”


“뭐, 명예니, 조국이니, 용맹함이니 하는 것들. 분명 그 자체로는 가치 있고 고귀한 이념들이지, 안 그런가요?”


“음-흠.”


“하나, 바로 그 이념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죠. 결코 고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흙탕에 얼굴을 처박은 채. 피를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형제이자, 아들이었을 그들이, 어머니의 손으로 먹이고, 씻기고, 보살피고, 가르쳐 이 세상에 내보낸 그들이 말이에요. 고작, 이 비극을 부추긴 자들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타국 전장에서 쓰러지기 위해서. 정작 전쟁을 만든 자들은 집에 편히 있죠. 피 한 방울 묻지 않고, 총검 끝에 스치지도 않은 채. 생채기 하나 없는 몸으로, 따뜻하고 깨끗한 이불속에 있죠. 그게 바로 멍청이들이 이념을 쫓을 때 벌어지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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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제들이 타국의 이익을 위해 진흙탕에 얼굴을 처박고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비극을 부추긴 자들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새하얀 셔츠에 반짝이는 넥타이를 매고, 워싱턴의 따뜻하고 깨끗한 이불속에 있다. 그들은 브랜디를 마시고 시가를 태우며 ‘민주주의’와 ‘정의’를 논한다.


전쟁을 명령한 자는 안전하고, 전쟁을 겪는 자는 언제나 죄 없는 시민들이다. 우리는 이 장면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 힘 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부수고 들어가는 것을 ‘기계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방관해선 안 된다. 우리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에 무뎌지면 안 된다.


미국 시민들 또한 책임이 있다. 그들이 선택한 지도자가 저지른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은 권력의 행사에 대한 연대 책임을 진다. 그리고 침묵하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의 고통에 눈감은 대가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누구도 이 거대한 카르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베네수엘라여, 부디 살아남으라.


그리고 기억하라. 제국은 결코 공짜 점심을 주지 않는다. 고귀한 척하는 권력자들의 ‘이념’ 뒤에는 언제나 진흙탕에 처박힌 민초들의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다. 부디 당신들의 해방이 우리처럼 '남의 손'에 의해 망가지지 않기를, 그 혼돈 속에서도 결국은 '당신들의 손'으로 일어서기를, 지구 반대편의 분단국가 시민으로서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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