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디스토피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2025년 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는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숀 펜이 연기한 '스티븐 록죠' 대령이다. 그는 겉으로는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연방 요원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정치적 성공과 '순혈주의'라는 비뚤어진 신념을 위해 공권력을 사유화하는 괴물이다. 그러나 그는 흑인 여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숨기고 산다. 영화 속에서 그는 이민자 단속 작전을 빙자해 자신의 치부인 흑인 혼혈 딸 '윌라'를 제거하려 든다. 자신의 핏줄조차 '오점'이라 여기며 국가의 시스템을 동원해 지워버리려는 그의 모습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타락한 시스템 그 자체였다.
극장을 나서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유는 록죠 대령이 과장된 영화적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매일 같이, 대한민국 안팎에서, 뉴스 화면에서, 소셜 미디어에서 수많은 '록죠'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영화 속 디스토피아는 사실 현실의 다큐멘터리였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작전은 영화처럼 더 이상 '불법'과 '합법'을 가리는 절차가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공언한 '이민자 배제'는 사회의 불순물을 제거하겠다는 우생학적 욕망의 발현이자, "미국인의 일자리를 되찾겠다"는 구호로 포장된 거대한 정치 쇼다. 영화 속 록죠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딸을 사냥감으로 몰았듯, 현실의 미국 정부는 지지층 결집이라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이민자라는 희생양을 제단에 올리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경고한다. 이미 미국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이민자가 사라진다면,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임금 상승이 아니라 산업 붕괴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뿐이라고. 트럼프와 그의 책사 스티븐 밀러가 이 명백한 인과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번영'보다 '이념적 순혈주의'가 자신들의 왕국을 지키는 데 더 유효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장사꾼들이다.
밥벌이(경제)가 망가지더라도 '백인 기독교 남성' 중심의 질서만 복원된다면 그만이라는 그들의 신념은, 차라리 광기에 가깝다. 이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Hulu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의 길리어드 공화국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다.
독재 종교 국가 길리어드의 지배층은 출산율 회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여성을 가축화하고 헌법을 정지시켰다. 그 대가로 국가 경제가 파탄 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들에게 풍요로운 자유주의 사회는 '타락'이었고, 가난하더라도 통제 가능한 '억압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트럼프의 미국은 영화 속 '록죠'의 광기와 드라마 속 '길리어드'의 망상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경제적 파국을 감수하고서라도 혐오와 배제를 체제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시도. 그것은 스크린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의 문을 부수고 들어왔음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경고음이다.
2016년 겨울, 나는 해외에서 살고 있었다. 트럼프의 첫 당선이 확정되던 밤, 한 미국인 친구는 불안해하는 나를 이렇게 위로했다. "걱정 마. 미국은 대통령 한 명으로 흔들리는 나라가 아니야. 우리에겐 200년 넘게 다듬어온 헌법과 견고한 '견제와 균형'이 있어." 미국인으로서 그가 가진 그의 나라와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었다.
하지만 2026년 오늘, 그 믿음은 처참하게 배신당했다. 시스템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납치당했다.
'아젠다 47'과 '프로젝트 2025'라는 정교한 매뉴얼로 무장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과거 1기 집권기에 자신들을 가로막았던 관료 조직, 이른바 '딥 스테이트'를 도려내고 있다. '스케줄 F'의 부활은 그 결정타다. 헌법과 절차를 수호하던 직업 공무원의 빈자리는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감수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예"라고 답하는 충성파들로 채워지고 있다. 법치라는 국가의 운영체제가 맹목적 충성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버린 것이다.
이 참담한 붕괴 앞에서 미국의 시민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이 겪은 '12.3 내란'의 기억을 꺼내 보였다. 총과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과 전쟁 위기조차 한국 시민들이 어떻게 맨몸으로 막아냈는지 역설했다. "당신들도 할 수 있다"는 나의 격려에 돌아온 것은 서글픈 회의주의였다. "미국은 너무 커서 안 돼", "인구가 너무 많아 불가능해."
처음엔 그 말이 비겁한 변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것이 미국의 지리적, 사회적 비극임을 깨달았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밀집'의 에너지였다면, 미국은 '고립'의 제국이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밀실과 촘촘한 디지털 신경망 덕분에 우리는 순식간에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고 공포를 이길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너무 넓다. 끝없이 펼쳐진 교외의 주택들은 개개인을 안전하게 격리시키는 요새와 같다. 그들은 광장에서 어깨를 거는 대신, 각자의 거실 소파에 파묻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만 분노를 소비한다.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권력은 정확히 그 틈을 파고들었다. 냄비 속의 물이 끓고 있는데도, 당장의 안락함 때문에 뚜껑을 열고 나올 생각을 잊은 '끓는 물속 개구리'. 그것이 고립된 제국 시민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그렇다면 이 폭주하는 기관차를 멈춰 세울 힘은 어디에 있는가. 안타깝게도 과거와 같은 혁명적 군중이나 뜨거운 연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알고리즘은 분노를 각자의 타임라인 속에 가두었고, 거주지의 분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언어를 단절시켰다. 광장은 사라졌고, 파편화된 거대 단톡방들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나니머스' 같은 디지털 자경단도, 혜성처럼 나타나 대중을 구원할 정치적 메시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비루하지만 끈질긴, '각자도생 속의 연대'뿐이다. 이것은 화려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건조하고 지루한 법정 드라마이자 다큐멘터리다. 연방의 명령을 거부하며 '법적 내전'을 불사하는 캘리포니아나 뉴욕 주 정부의 저항, 소비를 통해 기업을 압박하는 자본주의적 투쟁, 그리고 다가올 선거의 득실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정치인들의 생존 본능. 이토록 건조하고 피로한 싸움들이야말로 무너져가는 시스템을 근근이 떠받치고 있는 마지막 버팀목이다.
영웅 서사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각자의 참호 속에서 타전하는 건조한 생존 신고다. 혐오의 알고리즘 틈새로 서로에게 보내는 짧은 눈짓,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미치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는 타인의 존재. 우리에게 남은 건 거창한 연대가 아니라, 이 거대한 망각의 시스템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기억을 지켜주는 '공모자'가 되는 일이다. 그 은밀하고 위태로운 연결만이 우리가 괴물이 되지 않고 이 시대를 건너게 할 유일한 동아줄이다. 그 무미건조하지만 질긴 신호들만이 이 야만의 시간을 버티게 할 최소한의 산소 호흡기다.
미국이라는 '시스템의 신화'는 막을 내렸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2026년의 세계는 더 이상 민주주의, 인권, 동맹이라는 고상한 가치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이익', '거래', '힘'이라는 원초적인 단어들이 채웠다. 트럼프는 낡은 국제 질서의 기둥을 부수고, 그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탐욕의 탑을 쌓아 올리고 있다.
이 거대한 해체와 재편의 흐름 속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의 '선의'나 '시스템'에 기대는 안일함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혈맹"이라는 감상적인 수사는 외교 테이블에서 치워야 한다. 트럼프라는 냉혹한 거래자 앞에서는 감정보다 정확한 '계산서'가 필요하다. 반도체, 배터리, 그리고 지정학적 가치를 철저히 수치화하여, "지불한 만큼만 움직이겠다"는 저들의 문법에 맞춰 우리 또한 차갑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야 한다. 트럼프 2기라는 외부의 폭풍은 어떻게든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12.3 내란 사태를 통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손쉽게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미국의 견고해 보이던 시스템이 허무하게 잠식당하는 과정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 사회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시민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야 한다.
트럼프 2기는 그저 견디면 지나가는 '계절성 폭풍' 쯤으로 여겨선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미국의 체제가 영구 집권의 길을 닦을지, 혹은 내전이나 3차 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의 벼랑 끝에 서 있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무엇이 남을지, 아니면 그 자리에 폐허조차 남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그리고 곧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를 불길한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다. 영웅이 구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아주 지루하고,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를 처절한 싸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