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사형 구형의 날, 일본에서 울려 퍼진 이재명 대통령의 드럼 비트
2026년 1월 13일 밤,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에 대한 결심 공판이 열린 날이었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의 박억수 특검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법정형 중 최저형이 아닌 형은 '사형'밖에 없습니다. 이에 피고인 윤석열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피고인석의 윤석열은 웃었다. 옅은 미소를 띠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권력자의 여유라 했고, 누군가는 반성 없는 오만이라 평했다. 하지만 심리학의 렌즈로 들여다본 그 웃음의 실체는 '신경성 웃음'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공포, 그리고 자신의 견고했던 세상이 완벽하게 붕괴하는 순간 뇌가 무의식적으로 작동시킨 비상 방어 기제였다. 평생을 칼자루를 쥔 채 남을 단죄하며 살아온 자가, 생전 처음으로 시퍼런 칼날 앞에 섰을 때 느꼈을 그 원초적인 '전율'. 그 웃음은 강함의 증명이 아니라,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자아의 비명이자 붕괴의 신호였다.
정의의 저울은 공범들에게도 가차 없었다. 내란을 설계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에게는 무기징역이, 실행을 맡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게는 30년이, 경찰력을 사유화한 조지호와 김봉식에게는 각각 20년과 15년이 구형됐다. 검찰의 구형은 "성공한 내란도 처벌받는다"는, 12·12 군사반란의 실패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헌법적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제 역사의 공은 2월 19일 선고를 앞둔 지귀연 판사에게 넘어갔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비극보다 희극에 가까운 얼굴로 찾아온다. 윤석열에게 사형이 구형된 그 밤, 한때 그와 '한 몸'이었던 한동훈은 국민의힘으로부터 제명당했다. 내란당조차 등을 돌리게 만든 그의 죄목은 거창한 내란 동조가 아닌, 고작 '가족 동원 댓글 조작'이었다.
국내 최고 로펌이라는 김앤장의 변호사 아내와 논문 위조 입시 비리 의혹을 받는 MIT에 다니는 딸까지 동원해 당 게시판의 여론을 조작한 그의 행태는 '엘리트의 졸렬함'이었다. 1차 탄핵 부결 직후, 턱을 치켜 들고 어깨와 가슴을 잔뜩 부풀리고는 한덕수와 나란히 서서 "우리가 국가를 통치하겠다"며 헌법을 정면으로 어기겠다 선언하는 그 우스꽝스러움과 어리석음은, 결국 익명의 키보드 뒤에 숨어야만 유지될 수 있는 얄팍한 것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윤석열이 무모하게 칼을 휘두르다 스스로를 베었다면, 한동훈은 그 칼을 교묘히 이용하려다 자신의 덫에 걸려 넘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옭아매는 이 완벽한 자멸의 서사. 우리는 이 '운명적 공멸'을 지켜보며 이 완벽한 서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악은 심판받기 이전에, 스스로의 모순으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밤이었다.
하지만 서울의 밤이 정의의 실현으로 뜨거울 때,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미국 법무부 민권국은 ICE(이민세관단속국)의 총격으로 사망한 '르네 굿' 사건의 수사를 포기했다. FBI는 증거를 차단했고, 이에 항의한 검사들은 사표를 던졌다. 우리가 내란 직후 겪었던, 권력이 수사기관을 장악하고 인권위가 무력화되던 그 공포의 데칼코마니였다.
미국에 사는 삼촌은 25년 전 유학을 떠나 성실하게 살아온 시민권자다. 조카들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이다. 하지만 '미니애폴리스 모델'이 적용된 지금의 미국에서 시민권은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 2,000명의 ICE 요원이 학교를 급습해 아이들에게 최루액을 뿌리고, 영장도 없이 가정집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피부색이 다르면, 영어가 어눌하면, 그들은 사냥감이 된다.
의사를 만나러 가던 자폐 여성이 차 안에서 겪은 그 끔찍한 야만을 보았다. "나는 자폐가 있어서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려요." 그녀의 절박한 호소는 건장한 남성 6명의 ICE 요원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그들은 안전벨트를 칼로 자르고, 차창을 깨부수고, 짐짝처럼 그녀를 끌어냈다.
트럼프의 명분은 '이민자 추방'이었으나, 그 칼끝은 이미 여성, 장애인, 노인, 그리고 '순종하지 않는 모든 시민'을 향해 확장되고 있다. 혐오가 시스템이 되고, 잔혹함이 공권력의 표준이 된 사회. 그것은 내란이 성공했을 때 우리가 마주했을 대한민국의 평행우주였다.
미국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안에도 그 씨앗은 자라고 있다.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주도하고 중국 동포 상점 앞에서 행패를 부리던 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말끔한 수트를 차려입고 '자유대학'이라는 간판 아래 앉아, 혐오를 논리인 양 포장하여 설파한다.
그들은 제1야당의 비호 아래, 한국의 경제와 외교가 망하길 기도하며 미국과 일본을 구세주라 부른다. 자국을 혐오하고 타국을 숭배하는 이 기이한 '자해적 사대주의'. 천운의 타이밍으로 물리적 내란은 막아냈을지 몰라도, 정신적 내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이들의 스마트폰으로, 교실로, 식탁 위로 스며드는 그 은밀한 혐오의 독은 어쩌면 총칼보다 더 치명적 일지 모른다.
전 세계가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2026년 1월 13일 밤, 시민들의 TV와 스마트폰에는 기묘한 대비가 송출되었다. 화면 하단에는 "윤석열 사형 구형"이라는 붉은 자막이 흐르고, 화면 중앙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다.
백주대낮, 목에 칼이 들어오는 테러를 당하고도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사람. 온갖 핍박과 죽음의 위기를 넘어선 그는, 이제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어 평생의 꿈이었다는 드럼 스틱을 잡았다. 그의 드럼 연주는 말 그대로 '죽음'을 이겨낸 살아남은 자의 심장 박동이었고, 야만의 시대를 건너온 생존자가 우리에게 보내는 치유의 리듬이었다.
오랜 시간 해외를 떠돌며 '북한'과 '김정은'을 언급하며 "한국은 위험해서 어떻게 사냐"는 서구의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를 가장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스스로 만든 공포와 혐오의 괴물이 자신들을 집어삼키는 동안, '위험한 나라'라 불리던 한국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최전선에서 괴물과 싸워 이기고 있다.
어쩌면 외계인들이 지구와 인류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가장 아끼는 실험 대상은 분명 한국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극적이고, 이토록 처절하며, 끝내 이토록 역동적인 서사가 한 나라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운명을 스스로 만들었다. 윤석열의 웃음이 공포의 비명이었음을 간파했고, 한동훈의 가발이 벗겨지는 촌극을 목격했으며, 대통령의 드럼 소리에 맞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바다 건너 삼촌이 겪고 있는 그 공포가, 자폐 여성의 차창이 깨지던 그 야만이, 우리에게도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지귀연 판사의 선고일인 2월 19일,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정의는 저절로 오지 않으며, 민주주의는 피와 땀,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눈 부릅뜬 감시로만 지켜진다는 사실을.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싸우는 법을, 그리고 이기는 법을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뿐이다. 드럼 비트처럼 강렬하게, 우리의 심장은 계속 뛰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