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History of Swear Words>, 넷플릭스 코리아에서는 <욕의 품격>이란 타이틀로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코미디 시리즈다. F**k, Sh*t, B*tch, D**k, Pu**y, D*mn,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쌍욕의 역사와 의미, 적절한 사용법 등을 인문학적 측면에서 심도 있게 다뤘다.
오랜 시간 잡지 에디터로 일했지만 나는 아직도 왜 이 미국식 욕을 키보드로 칠 때 ‘*’ 표를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리도 정해져 있다. 누가 나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 누군가가 그렇게 쓴 걸 보고 눈치껏 따라 해 온 것 같다. 이렇게 ‘*’ 표를 넣어도 전 세계 사람들이 무슨 단어인지 안다는 것도 신기하다. 욕에 대한 암묵적 합의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지금껏 살아온 경험과 만나본 사람들로 미뤄볼 때 욕을 안 해도 교양 없는 사람도 많고, 욕을 해도 품격 있는 사람도 많다. 발화의 힘은 적절한 때와 장소, 무엇보다 적합한 리스너를 만났을 때 가장 세진다. 특히 욕은 더 그렇다.
넷플릭스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공을 많이 들인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장르화 되어 잘 뿌리내린 미국 문화를 바탕으로 넷플릭스는 데이브 샤펠, 데이비드 레터맨과 같은 거장들과 오리지널 쇼를 기획하고 제작했다. 넷플릭스의 스탠드업 코미디 카테고리를 살펴보며 한편씩 플레이해보면 이유가 보인다. 정치, 젠더, 인종, 성소수자, 섹스 등 물불 안 가리는 다양한 소재에 냉철한 분석과 신랄한 풍자, 비판, 적절한 유머를 썩은 ‘뼈 때리는 이야기’로 재능 있는 코미디언들이 1시간을 넘게 혼자서 무대를 채운다. 배꼽 잡고 웃지만 쇼가 끝나고 나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코미디는 또 다른 의미의 위대한 정치다. 이것저것 눈치 보기 바쁜 한국은 코미디언이 콩트에서 정치 풍자 한 번 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걸 걱정해야 한다. 유병재와 박나래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몇 번 시도하다 펀치는커녕 잽도 못 날리고 싱겁게 끝냈다. 미국은 <SNL> 같은 데서 대통령을 까도 괜찮은 나라다. 대사를 쓰는 작가, 연출하는 PD, 연기하는 코미디언, 보는 이들이 함께 만드는 풍자의 문화가 형성된 나라다. 불만이 많고 비평이 활발한 문화에서 피는 꽃이 더 아름답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금 질투 난다.
특히 넷플릭스는 진보의 방향을 가리키는 콘텐츠를 많이 제작하는 편이다. 다른 OTT 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넷플릭스를 더 많이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욕의 품격> 역시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사회 현상을 짚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한국인에 친근한 할리우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의 얼굴 때문에 <욕의 품격> 플레이 확률이 올랐을 것이다. 또한 그가 첫 번째 에피소드 인트로부터 진지하고도 당당하게 ‘삐-’ 처리 없이 “F*****************k!”을 외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느낌도 든다.
<욕의 품격>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진행으로 여러 코미디언과 영화배우, 평론가, 언어학자, 교수 등이 나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욕의 뜻과 기원, 역사, 쓰이는 상황, 사회적 규제 등에 대해 다룬다. 이들이 너무 진지한 것도 포인트다. 미국 영화에서 누가 가장 많이 ‘F**k’을 사용했는지 통계도 내는데 결과는의외다. 사람이 욕을 할 때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어 스트레스가 풀린다. 욕을 하면 고통을 더 오래 참을 수 있다.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각각의 욕에 관한 짧은 에피소드(20분 분량) 6편을 낄낄거리며 금세 다 보고 나면 미국이 조금 더 보인다. 언어를 보면 문화와 역사, 가치관이 보이기 때문이다. 유교 국가였던 한국 입장에서야 미국만큼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나라가 없지만, 개신교의 나라 미국은 겉보기와 다르게 보수적이고 점잔 떠는 문화 역시 두텁게 존재한다.
특히 ‘B*tch’를 다루는 세 번째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B*tch’의 의미는 목소리 크고(자신의 의견이 강하고) 독선적인 여자를 뜻한다. 그런 여자에 대한 부정이고 모욕이다. 말인즉슨, 여자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선 안 된다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 관념을 담은 욕이다. 한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여자를 ‘B*tch’라 부르는 건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그런데 남자가 남자를 그렇게 부르는 건 그 남자가 나쁘다고 모욕하는 동시에 ‘여자처럼 나쁘다’ 혹은 ‘여자인 것이 나쁘다’는 의미를 함께 쓰는 것과 같다고. 또한 이 욕을 성소수자에게 썼을 때에도 발화자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B*tch’라는 단어가 1400년 경 발정 난 암컷 개를 여자에 비유하며 욕으로 쓰이기 시작할 때 아무도 이런 문제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흥미롭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는 음탕하고 비도덕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B*tch’가 어떻게 변화해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내다보면 말이다. 오늘날 ‘B*tch’는 누군가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또한 스스로를 ‘B*tch’라 부르며 자신의 권리와 욕망을 주장하는 여성들도 많아지고 있다.
잘 생각해보자. 영어 욕 중 ‘Motherf**ker’는 있어도 ‘Fatherf**ker’는 없다. 이는 남성의 권력과의 관계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언어 자체가 남성의 것이다. 이제까지 인류의 지식을 주도한 사람들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욕마저도 만든 이도, 쓰는 이도,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이도 99%가 남성이다. 남성의 사유와 말이 인류가 그동안 생각해오며 써온 언어다. 인간은 언어로 사유한다. 그리고 언어가 담론을 지배한다.
<욕의 품격>은 그저 웃자고 만든 게 아니다. 6가지 욕을 통해 이 시대의 젠더와 인종, 사회 권력 구조, 시대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묵직한 코미디 다큐멘터리이다.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말처럼 욕은 상대를 무력화하거나 모욕해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책임감도 따른다. 그리고 기억하라. 누군가 당신을 ‘B*tch’라고 부른다면, 그건 당신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