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해외에서 살 때 경험이에요. 영미권, 유럽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다 보면 “How are you?”라고 안부를 묻는데, 한국에선 이보다 “식사하셨어요?(Have you eaten?)”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쓰잖아요.
가끔 이렇게 제가 한국어를 영어로 직역해 한국식으로 안부 인사를 건네면, 서양 친구들은 ‘왜 이런 걸 묻지?’ 하는 식으로 의아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이따금 어떤 친구들은 “너 지금 나한테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하며 오해를 하기도 해요. “밥 먹었어?”라는 표현을 “나랑 함께 밥 먹으러 가지 않을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거죠.
먹는 것에 진심인 한국
5천2백만 한국인은 무엇보다 밥에 진심입니다. ‘먹방(Mukbang)’은 한국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은 ‘먹방(Mukbang)’을 아시나요? 온라인으로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청각 방송을 뜻하는 ‘먹방(Mukbang)’은 한국어 단어 그대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죠.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평상시 쓰는 언어 표현들을 보면 한국인이 얼마나 밥에 진심인지 알 수 있죠.
한국인들은 지인과 만나면 “잘 지냈어?” 대신 “밥 먹었어?”라고 주로 묻습니다. 단순히 진짜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여부가 궁금하기보다는 밥을 챙겨 먹을 만큼 오늘 하루 여유가 있었는지, 조금은 쉬면서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와 같은 안부를 묻는 의미입니다.
“밥 먹었어?”라고 묻는 질문에 상대가 “Yes”라고 답하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밥 먹을 시간 정도는 있었구나, 다행이다’라고 안도하고, “No”라는 답을 들으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고 힘들구나’ 하며 안타까워하죠.
일을 마치고 나서도 상대에게 “밥 먹었어? 밥 꼭 챙겨 먹어”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 표현의 “Good job, guys!”와 비슷합니다.
이외에도 ‘밥’에 관한 한국어 표현은 무궁무진합니다. 상대에 고마움을 표현할 땐 “정말 고마워. 내가 밥 한 끼 살게”라고 하고요. 오랜만에 안부를 물을 때에도 “요즘 밥은 잘 먹고 다니냐?”라고 말하고, 지인과 헤어질 땐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라고 하죠.
바쁘다는 표현을 “나 요즘 밥 먹을 시간도 없어”라고 한다던가, 지쳤을 땐 “나 요즘 밥맛이 없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각한 상황에서 눈치가 없는 상대에게 “야, 넌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냐?”라고 타박을 주기도 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땐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하고 푸념하기도 합니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엔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이라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
함께 모여 나눠 먹는 한국인의 음식 문화
한국에서 “밥 먹었어?”라는 표현이 안부 인사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정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대한민국 충청북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것도 ‘야생벼’가 아닌 무려 기원전 1만 5천 년 전에 사람들이 정착해 농사지은 ‘재배벼’랍니다. 동아시아의 쌀 재배 문화의 기원이 한반도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증거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볍씨가 한국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의 쌀 문화의 기원이라 주장했던 나라는 중국이었습니다.
한국은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Sikgoo)’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함께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벼농사는 과정이 까다롭고 노동력이 많이 들어온 마을이 함께 힘을 합쳐야 했습니다. 이러한 농촌 문화는 한국의 공동체 문화, 함께 모여 앉아 밥을 나눠 먹는 문화로 이어졌죠. 그로 인해 한국인들은 오래전부터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라도 한 자리에 모여 앉아 함께 밥을 먹으면 ‘식구’라고 불렀죠.
한국인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힘든 일을 진행할 때 “다 같이 밥 먹고 하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밥을 나누어 먹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중요합니다.
제가 해외에서 서양 친구들과 생활할 땐 모두 각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메뉴를 알아서 챙겨 먹는 걸 많이 봤어요. 한 사람 당 피자를 한 판씩 시켜 먹는 걸 보고 처음엔 문화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부분 친구들이 각자의 피자 외 다른 사람의 음식엔 손대지 않고, 자신의 피자를 모두 먹고 식사를 끝내거나 남은 건 집으로 가져가더군요. 피자집은 물론 어떤 음식을 먹든 다양한 메뉴를 시켜 함께 나눠 먹는 한국인들의 식사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지요. 한국인들의 정서로는 ‘네 것’ ‘내 것’을 정확히 나누는 서양의 식사 문화가 낯설게 느껴졌어요.
한국인은 밥을 함께 나눠 먹는 것에 깊은 의미를 둡니다. 한국인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밥을 함께 나누며 정을 나누고 공동체 의식을 쌓아온 민족입니다. 한국인은 언제나 상대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때 정성 들여 차린 푸짐한 밥상을 대접합니다. 그리고 찾아온 손님에게 예를 갖춰 식사를 대접하지 않으면 큰 결례를 범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해외에 살 때 한국 음식을 잔뜩 해서 외국 친구들과 나눠 먹으려고 싸갔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걸 그냥 준다고?” 하며 의아하게 생각했어요. 한국인들은 원래 음식을 할 때 푸짐하게 해서 친구들, 이웃들과 나눠 먹는 문화라고 설명하니 그제야 마음 놓고 먹더군요. 그럼에도 먹고 나선 마음이 불편했는지 “얼마 주면 될까?” 하며 돈을 지불하려는 친구들도 있었답니다.
굶주림의 고통과 기억을 간직한 한국인의 정
예로부터 쌀을 먹은 한국인들은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에게 모든 쌀을 수탈당하며 극심한 빈곤을 겪었습니다. 해방 후 바로 이어진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은 굶주림에 고통받았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은 너무 가난해서 제때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고 쌀이 모자라 다른 잡곡을 섞어 먹어나 밀가루 음식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쌀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에겐 ‘쌀’이 곧 ‘밥’이자 ‘생명’ ‘풍요로운 삶’을 의미했죠.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50년도 안 돼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나서 선진국이 된 지금, 한국인은 여전히 ‘밥을 제때 풍족하게 먹지 못하는 설움’이 얼마나 한이 되고 가슴에 사무치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은 유독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강하죠.
양질의 식사를 제때 챙겨 먹는 것은 신체적 건강을 넘어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는 데에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은 밥을 먹을 때 심리적으로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는 밥과 관련된 따뜻한 감정을 경험하고, 어릴 때 엄마가 정성껏 차려준 밥상과 테이블에 함께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식구’를 떠올리며 ‘돌보아짐’의 느낌을 마주하죠. 한국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바로, ‘따뜻한 감정’을 삼키는 것입니다.
어디서든 한국인 친구를 만난다면, “How are you?” 대신 “Have you eaten?”이라고 물어보세요.
그나저나, 당신은 밥 잘 챙겨 먹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