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술가의 성장을 지켜보고 기억하며 기념하는 일은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늘 곁에 두고 가꾸어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모습은 계절마다 시시각각 변하며 늘 좋을 리 없고, 때론 식음을 전폐한 고통스러운 투쟁도 지켜봐야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멋진 성장으로 나타나죠.
자비에 돌란 감독은 2009년,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감독과 대본, 프로듀서, 의상까지 맡은 <아이 킬드 마이 마더>로 칸에 입성했고, 잇따라 발표한 <하트비트> <로렌스 애니웨이> <탐엣더팜> 역시 전 세계 영화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2014년 공개된 <마미>로 제67회 칸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해 심사위원상을 받았죠. 그 해 스물다섯이었던 그는 1989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26세에 경쟁 부문에 진출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칸영화제 최연소 진출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돌란은 인연이 깊은 감독입니다. 그의 열아홉 데뷔작부터 매해 돌풍처럼 몰아치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성장을 지켜봤고, <마미>가 한국에 배급될 당시 대대적인 영화 소개와 전시, GV 작업에 참여했습니다.<아이 킬드 마이 마더>부터 <마미>까지 돌란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감독 및 각본, 편집, 프로듀서, 의상까지 모두 직접 맡았고, 모두 인디 영화였던 만큼 돌란만의 과감한 스타일과 메시지, 창의력, 천재적 재능의 불꽃이 그야말로 펑펑 튀었습니다. 여기에 잘생긴 외모와 스타성까지 갖춘 그는 캐나다에서도 프랑스어를 쓰는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 ‘칸의 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유난히 칸영화제의 사랑과 주목, 서포트를 받았습니다.
자비에 돌란(Xavier Dolan)
좀처럼 끝날 줄 모르는 슬픈 언더그라운드 파티 같은, <로렌스 애니웨이>
돌란이 인디 영화를 만들던 시기에 탄생한 <아이 킬드 마이 마더> <하트 비트> <로렌스 애니웨이> <탐엣더팜> <마미> 중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는 <로렌스 애니웨이>(2012)입니다. <신의 은총으로>의 멜비 푸포와 이 영화로 제65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수장 클레망, 나탈리 베이의 빛나는 연기와 스물세 살 감독 자비에 돌란의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 반항, 위트, 그리고 우아한 미장센의 향연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파티 같은 영화입니다. 감독뿐 아니라 연기도 하는 자비에 돌란 자신이 카메오로 나오기도 합니다.
<로렌스 애니웨이>에 깜짝 등장하는 자비에 돌란
자비에 돌란은 일찌감치 커밍아웃을 한 게이입니다. 그는 초창기 작품들에서 성소수자와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의 갈등, 그로 인해 변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고 심도 있게 담아냅니다. 그런데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하도 깊어서 돌란의 영화에서 다뤄지는 관계와 감정은 성소수자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으로 확장됩니다.
성소수자에 대해 상당히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친구에게 저는 말없이 이 영화를 추천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 마음이 조금 열린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네가 해본 적 없는 사랑이라고 부정할 순 없지.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사랑이란 무엇인가
로렌스와 프레드는 오직 서로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자유와 구원의 강렬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남은 생은 여성으로 살고 싶다”라는 로렌스의 고백에 그의 약혼녀 프레드는 방황합니다.
"35년을 이렇게 산 건 죄악이나 다름없어."
남성이었던 로렌스가 점차 여성으로 변하면서 그의 사랑, 가족,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회가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그리고 이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의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며 혹시라도 밖에 나가 누군가에게 맞고 들어오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도 프레드는 그 사랑 앞에 담대해지려 노력합니다.
35년 동안 남자의 몸에 갇혀 고통스럽게 살아온 자신의 정체성을 대면하고,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로렌스는 때론 사회적 편견의 폭력 앞에 무너지고, 때론 그에 반항하며 자기 안의 혁명을 일으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씬은 교사인 로렌스가 하이힐에 여자 옷을 입고 교내를 활보하며 “반항이냐”라고 묻는 동료 교사에게 “혁명이에요”라고 말하며 웃는 장면입니다.
"아뇨. 혁명이에요."
더 이상 자기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세상에 펼쳐 보이는 용기의 이면엔 스스로 감내해야 할 내면의 외로운 투쟁과 사회적 인식에 대한 도전이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닙니다. 로렌스의 결정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프레드가 겪는 엄청난 감정적 변화와 고통, 갈등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사람 손톱에 매니큐어도 겁나냐? 남편을 위해 가발 사봤어?"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수만 가지의 빛깔을 띈 사랑의 매우 복잡하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이 영화는 담대하고 우아하게 표현합니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성전환 이슈 이상의 깊이를 담은 <로렌스 애니웨이>는 자아 정체성과 사랑, 그리고 사회적 편견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돌란은 성정체성이 그저 영화의 테마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계를 이야기할 때 인간이 겪는 복잡한 감정의 핵심을 전달하는 데 기여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특정 성정체성에 대한 논의에 한정하지 않고, 보편적인 사랑의 복잡성을 조명하는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결국 사랑과 상처, 고통,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죠. <로렌스 애니웨이>는 그가 감독으로서 어떻게 개인적 경험을 통해 더 큰 사회적,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에케 호모(Ecce homo)는 요한복음서 19장 5장에 나오는 라틴어 어구로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예수를 채찍질하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뒤 성난 무리 앞에서 예수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자비에 돌란에게 ‘비주얼 스타일리스트’라는 왕관을 씌운 작품입니다.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를 통해 캐릭터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죠. 돌란은 독창적인 촬영과 몽타주 기법을 통해 장면마다 감정을 강렬하게 극대화합니다. 특히 하늘에서 옷이 쏟아지는 장면은 이 영화의 화룡점정이죠. 또한 19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영화 내내 깔리는 80년대 디스코와 전자음악이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많은 이들이 돌란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감정의 진폭을 치켜세웠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그것의 과도함에 대해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감정 과잉의 연출이나 미학적 집착에 대해 지나치게 자의식적인 감독이라며 비꼬는 사람들도 많았죠. ‘칸이 사랑한 남자’라는 타이틀을 너무 어린 나이에 얻은 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 불안함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돌란은 이 작품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진정성과 특유의 연출 스타일을 밀고 나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연출력과 예술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마미>와 <단지 세상의 끝>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할리우드로 진출한 돌란이 <더 데스 앤 라이프 오브 존 F. 도노반>을 만들고 한동안 방황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비즈니스맨보다 스타일리스트에 더 가까운 감독이었으니까요.
돌란은 한 인터뷰를 통해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느낀 회의감과 자기표현의 제한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나 자신을 찾지 못했다”라고 말하며 대형 상업 영화 시스템이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적 자유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음을 드러냈죠. 그의 인터뷰를 보며 저는 <로렌스 애니웨이>의 ‘로렌스’를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삶, 그 자체가 우리 모두에겐 끝없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이 지나 최근 돌란은 은퇴를 암시했던 것과 달리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억눌려 온 예술적 중압감에서 벗어나 좀 더 유머러스한 감정이 어우러진 영화를 만들겠다고 밝혔죠. 현재 대본의 마무리 단계에 있고 2026년 개봉을 목표로 한다고 하니 좀 더 성장한 모습의 돌란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