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베이비 레인디어>
*이 글은 넷플릭스 시리즈 <베이비 레인디어>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1일에 전 세계에 공개되어 현재 <기생수>과 <삼체>를 제치고 TV 시리즈 부분 글로벌 1위를 달리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베이비 레인디어>는 영국의 코미디언 리처드 개드가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영국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20대에 스토킹과 그루밍을 통한 성폭행을 당했던 리처드 개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마약, 성폭력, 스토킹이라는 소재 면에서 한국과 어느 정도 정서적 거리가 있기에 넷플릭스 코리아 TV 시리즈엔 TOP10 안에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시리즈는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상에서 전혀 멀지 않습니다.
놀랍도록 용감하고 통찰력 있는 이야기
리처드 개드가 직접 연기한 ‘도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픈 꿈을 좇아 런던에서 고군분투합니다. 도니가 일하는 바에 우연히 들른 중년 여성 ‘마사’에게 호의를 보였다가 이를 왜곡해 집착을 보이는 그녀로부터 수년간 스토킹과 괴롭힘을 당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이는 도니가 연상의 남성이자 코미디 업계의 멘토 ‘대리언’으로부터 마약 투여와 그루밍, 반복적인 성폭행, 강간을 당한 후 시작되었고, 이러한 시련으로 인해 도니는 감정적으로 혼란을 느끼고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의문을 품으며 극도의 자기혐오와 씨름합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코미디언 리처드 개드는 자신의 성폭력과 스토킹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 안에 오랫동안 묻어둔 끔찍한 트라우마와 마주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도니의 위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어두운 감정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결코 움찔하지 않습니다. OTT 스트리밍 콘텐츠 시대에 인기를 끌고 돈이 되는 컨텐츠를 만들려면 ‘미치광이 스토커 피해자의 고군분투 극복기’가 관객에게 더 친숙하겠죠. 하지만 수년간 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모든 트라우마를 기적처럼 극복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된다는 헐리우드 식 결말은 여기 없습니다.
이 시리즈의 첫 에피소드만 본다면 마사는 전형적인 스토커로 묘사된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는 <베이비 레인디어>의 ‘트로이 목마’ 작전입니다. 시청자를 속여 끌어들인 다음 성폭력과 학대, 수치심, 그리고 심연의 트라우마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시작합니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해진 자극적인 스토킹 범죄 스릴러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더 어둡고, 더 통찰력 있는 드라마입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모두 가해자
<베이비 레인디어>가 수준 높은 통찰력을 지닌 작품이 된 이유는 이 작품이 ‘스토커 마사’를 다루는 시선입니다. 마사는 끔찍한 사람이고, 도니는 가련한 피해자라는 단순한 결론을 널찍하게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가지고 있는 내면화된 편견과 성적 수치심, 자기혐오라는 인문학적 주제에 깊이 다가갑니다. 또한, 실제 이를 경험한 ‘피해자’의 이름표를 단 리처드 개드가 직접 대본을 쓰고 감독하고 연기함으로써 그는 스스로 그 이름표를 떼어냅니다. 마사에게 달린 ‘가해자’라는 이름표 역시 떼어내죠. 그리고 관객에게 묻습니다. “자, 이제 여기서 누가 온전한 피해자이고, 가해자인가?”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떤 식으로든 어떤 종류의 폭행에든 노출된 적 있는 관객들에게 도니는, 학대를 당한 이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끊임없이 학대자에게로 돌아가는 패턴을 반복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한 피해자’의 희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과 희망을 말하기 전 우리가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고 마치 없는 듯 지나치고 무시해 버리는 어두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불편하고 충격적인 네 번째 에피소드
일곱 편의 에피소드 중 도니에게 가해진 폭력이 묘사되는 네 번째 에피소드는 굉장히 불편하고 충격적입니다. 리처드 개드는 이 에피소드가 15분 정도 더 긴 60분 분량이었으며, 일부 장면이 잘리기 전에는 이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대하는 스탠스는 당당합니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하지 않은 것도 보여줘야 불편한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예술의 당위성을 보여주죠.
이 모든 경험으로 다시 돌아가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영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리처드 개드 자신에게 어떤 과정이었을지, 때때로 스스로 경험한 폭력을 들여다보고 글을 쓰려다 몇 번이고 펜을 놓은 저로서 이해가 갑니다. 리처드 개드는 시리즈 전반에 도니의 보이스오버를 이용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관객들과 함께 합니다.
모든 것이 돌고 돌아, 결국은 그렇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도니가 대리언의 집에서 나와 마사의 보이스메일을 들으며 바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너무 좋았습니다. 도니가 울기 시작하자 도니를 불쌍히 여긴 낯선 바텐더가 그가 예전에 마사에게 차 한 잔을 권했던 것처럼 보드카 콕으로 호의를 베풉니다. 도니는 이상한 표정으로 바텐더를 올려다보죠. 혼돈의 시간을 돌고 돌아 결국 도니 역시 마사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사람이 되어 취약한 시기에 낯선 사람의 친절을 경험하게 되죠. 도니도 어쩌면 마사처럼 낯선 사람에게 건강하지 않은 애착을 갖게 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까요? 그렇다면 도니와 마사는 무엇이 다른 걸까요?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경험을 촘촘하게 얽힌 여러 겹으로 표현한 시리즈는 우리 모두는 친절을 가장한 이기심, 혹은 무심함으로 서로를 끊임없이 옭아맨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예술은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 모를 때 흥미롭다
리처드 개드는 <베이비 레인디어>의 성공으로 잇따른 인터뷰에서 “도니에게 ‘피해자 서사’를 덮어씌우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예술은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 모를 때 매우 흥미롭다”라고 덧붙이죠.
<베이비 레인디어>의 도니는 무고한 희생자도, 힘 있는 생존자도 아닙니다. 학대의 순환은 자기 영속적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히 치유되는 상처와 트라우마는 없으며, 우리 모두는 그저 외롭고 고립된 상처투성이의 인간일 뿐이죠. 스스로 피해자로 정의하고 이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도니는 결국, 자신 또한 완벽하지 않고 자의든 타의든 어떤 식으로든 잘못을 저지르며 혼란스러워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걸,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기를 혐오하는 마음이 더 강해 두려움에 떠는 비겁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베이비 레인디어>에서는 용감한 자기 고백을 통해 자기혐오에 맞서려는 한 인간의 모습이 인간의 보편성으로 이어집니다. 리처드 개드가 공개적으로 스스로에 던진 질문은 관객에게로 번집니다.
당신은 과연 ‘피해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