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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Oct 17. 2024

17. 고래처럼 살지만 상어처럼 숨 쉬는

 수심 25미터, 다이브 타임 10분. 그녀는 손목에 찬 다이브 컴퓨터에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각종 다이빙 정보와 공기 잔압을 확인한 뒤 버디인 클로드와 오케이 수신호를 주고받고 천천히 바닷길 산책을 이어간다. 바닷속에도 숲이 있고 꽃과 나무가 있고, 대지가 있고 폐허가 있으며 구름이 있고 달이 있고 먼지가 있다. 그리고 바닷속엔 또 다른 바다가 있다. 어깨를 크게 부풀리고 턱을 치켜들고는 하늘에 대고 우월함을 뽐내기에 바빴던 인간의 말은 이곳에서 허망해진다. 그녀는 오늘도 납작 엎드려 바닷속을 유영한다. 이미 이른 새벽 바다로 나가는 보트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고 바닷속에 두 번 뛰어든 그녀에게 오늘만 해도 벌써 세 번째 다이빙이다. 이번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 위로 올라가 보트 위에서 1시간 정도 수면 휴식 시간을 가지며 몸에 축적된 질소를 빼낸 뒤 그녀는 다시 바닷속에 뛰어들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격일로 껴있는 나이트 다이빙이 있는 날이니 보트를 타고 뭍에 잠시 돌아갔다가 또다시 어둠의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감염 없이 무릎의 상처가 거의 아물자마자 레스큐 코스를 마친 그녀의 다이브마스터 과정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때마침 다이브마스터와 강사 과정을 위해 아이슬란드에서 온 바리사는 그녀와 함께 다이빙한 첫날, 다이빙 센터로 돌아와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 못지않게 당황한 클로드와 케빈은 이유를 물었고, 갓 스무 살을 넘긴 질투심 많은 소녀는 “하나가 다이빙을 너무 잘해서 속상해. 그리고 너무 열심히 하잖아.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이라며 입을 삐쭉 내밀고 말했다. 그녀를 제외한 다이빙 센터의 모든 강사와 다이브마스터, 손님 다이버들은 아침에 다이빙하면 오후엔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하이킹을 가거나 낮잠을 자며 쉬고,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릎의 상처가 나은 이후 단 하루도, 단 한 번도 다이빙을 쉬지 않았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다이빙 수련을 이어갔다. 나이트 다이빙이 있는 날이면 하루에 최대 5번까지 바다에 뛰어들었으며, 다이빙 보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이 되었고 보트를 집 삼아 먹고 자는 캡틴과 보트 크루들은 그녀의 식구가 되었다. 하루는 캡틴이 온갖 손짓을 섞어가며 “하나처럼 다이빙을 열심히, 부지런히 하는 친구는 처음 봤다”며 “역시 까올리”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곳에서 그녀가 하는 모든 습성은 그녀의 의도와 상관없이 한국인의 것으로 대표성을 띠었다. 그녀는 여전히 서울에서 옮아 온 ‘열심히 하는 병’의 대표 증상을 보이고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오전과 오후 다이빙 사이 잠깐 뭍에 닿으면 그녀는 재빨리 뛰어가 샌드위치를 하나 사다 허기를 채웠고, 오후와 나이트 다이빙 사이 또 잠깐 뭍에 닿으면 항구 근처에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야시장에서 돼지 꼬치구이를 두어 개 사다가 또다시 보트에 올랐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이 열심히 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했다. 다들 바리사의 투정을 귀엽다며 웃고 넘겼지만, 사실 그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고,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 사회에 최적화된 몸과 정신으로 여전히 살고 있었다. 한국에선 ‘열정’이고 ‘성의’라 불리는 당연한 것에 다른 곳의 누군가는 위협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던 자기 삶 곳곳에 깊숙이 밴 뒤틀린 간절함과 전투력의 찌꺼기를 알아챘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다이빙을 성스러운 의식으로 여겼다. 마치 바다에 뛰어들면 뛰어들수록 무언가 씻겨나간다고 믿는 신앙인처럼 그녀는 다이빙, ‘바닷속에 있음’, 그 자체에 집착했다. 서울에서 그녀는 일을 하거나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사교 활동을 해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녀는 언제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 어떨 땐 아무것도 플레이하지 않고 듣는 척만 하거나 - 아무도 없는 작은 극장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독립 영화를 보거나 글을 썼다. 이제 그녀는 바닷속에 있으면 그 어떤 음악도, 영화도, 글도 생각나지 않는다.      


 바닷속을 둥둥 떠다니다 이따금 그녀는 수면 쪽을 한 번씩 올려다보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소속감을 느껴본 적 없는 저 공기의 세상을 어떻게 하면 다시 올라가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인류의 조상이 모두 바닷속에 있음에도 그녀는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아가미가 없어 그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에 늘 한계가 생겼다. 그래서 그녀는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든 다시 바닷속으로 돌아갔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다이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녀는 몸 안에 딱딱한 곳이라곤 하나도 없는 흐물흐물한 액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기분 좋게 노곤해져 침대에 누우면 여전히 바닷속에 있는 것처럼 미세한 울렁임을 느꼈다. 어떤 날 그녀는 제 몸에서 아가미가 돋아나는 꿈에서 깨어나 또다시 검푸른 새벽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다이빙하는지 모두 궁금해했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오로지 바다만 알고 있었다. 그런 바다는 그녀를 언제고 힘껏 껴안으며 반겼다.      


 갑자기 내리쬐는 오후의 햇살로 은은하게 밝았던 바닷속 하늘이 어두컴컴해졌다. 바닷속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소리를 내어 클로드에 무슨 일인지 묻고, 또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바닷속에서 인간은 소리를 잃은 대신 정의할 수 없는 또 다른 감각을 선물 받는다. 그때 그녀는 그 감각이 예민해지는 걸 느꼈고, 저 멀리 끝없이 깊고 검푸른 바닷속의 바다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피해야 한다는 생존본능과 무엇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이 갈등할 새도 없이 그녀는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로 유유히 바닷속을 미끄러지듯 헤엄치며 그녀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건 거대한 무언가는 바로, ‘다이버의 꿈’이라 말로만 듣던 고래상어였다. 크고 납작한 얼굴에 작고 동그라며 서로 멀리 떨어진 눈, 언제나 웃고 있는 얼굴에 덩치는 커다랗지만 수줍고 상냥한, 다이버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보길 소망한다는 그 고래상어가 정확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었다. 그녀의 작은 몸을 둘러싼 모든 공간은 바닷속에서 열려있었고, 긴장과 흥분에 흐트러진 호흡으로 부력까지 통제를 잃었다. 그녀가 점점 깊은 수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미끄러지자, 그녀의 다이브 컴퓨터가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클로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그가 바닷속에서 그녀에게 말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제 인간의 목소리가 사라진 바닷속에서 더 많은 걸 상상하게 되었다. ‘자, 모든 걸 멈추고, 천천히 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천천히, 크고, 깊게 숨을 쉬었다. 마침내 호흡을 되찾은 그녀는 다시 BCD를 조절해 부력을 통제하고 일정한 수심에서 그대로 머물렀다. 그사이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선 고래상어는 갑자기 그녀의 코앞에서 수면 쪽으로 머리를 들어 올려 길고 거대한 몸통과 사선을 이뤘다. 그리고 그녀가 숨 쉴 때마다 호흡기에서 빠져나와 점점 커지며 위로 올라가는 물거품에 배를 대고 천천히 꼬리를 휘적였다. 그녀가 호흡기를 문 채 안으로 내지르는 경이로움 가득한 비명은 그녀의 몸속으로 흡수됐다. 한참 그녀의 물거품을 따라다니던 고래상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갑자기 깊고 먼 검푸름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 찰나에 압도되어 넋을 잃은 그녀의 팔을 흔들며 클로드는 상승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공기가 얼마 안 남았다. 아가미가 없는 그녀는 좋든 싫든 이제 수면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녀는 천천히 상승 절차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어딘지 모를 검푸른 어둠 속을 응시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물고기 중 가장 큰 고래상어는 고래처럼 살지만, 상어처럼 숨쉬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혼자 다니고, 수면 가까이 떠 있는 플랑크톤을 먹으러 올라왔다가 갑자기 수백 미터 해저로 잠수해 버리기도 한다. 그들이 전 세계 바다를 어떤 경로로 여행하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짝을 찾아 새끼를 낳는지 제대로 알려진 게 하나도 없는 신비로운 물고기다. 그녀는 안전 정지를 하는 동안 클로드에게 수신호로 조용히 물었다. “고래상어, 우리가 본 거 맞지?” 그러자 그가 “응. 아기인 것 같은데 3~4미터는 되는 것 같아”라며 아기를 어르는 듯한 수신호와 함께 양 손바닥을 마주한 채로 간격을 벌려 ‘길이’를, 그리고 손가락 세 개와 네 개를 펼쳐 보였다. 


 클로드가 “아니”라고 했어도 그녀는 괜찮았을 것이다. 그녀가 실체를 경험하고 느꼈다면 실재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꿈에 그리던 고래상어를 만났다. ‘뭍에서 제 잘난 줄만 아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또 하나 늘었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공기의 세상 사람들은 고래상어를 커다란 유리관 안에 가두고 자기가 원할 때만 찾아가 구경한다. 바닷속에선 가장 길고 광대하며 미스터리한 바다 여행을 하는 고래상어가 기껏해야 수심 30미터에서 삼사십 분 머무는 게 전부인 인간을 골라 가끔 이렇게 구경하고 사라진다. 그녀는 수면으로 올라가는 길 부서지는 물거품을 보며 생각했다. ‘뭍으로 가기 싫은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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