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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Oct 21. 2024

18. 절망의 럭키 걸

 반쯤 초점을 잃은 눈으로 힘겹게 호텔 객실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 위에 퍽- 하고 그녀는 쓰러졌다. 새벽까지 마감 원고와 씨름하다 이른 아침 발리행 비행기를 탔다. 영세한 독립 잡지사에서 대형 상업 패션지로 자리를 옮긴 후 첫 해외 출장이었다. 마감 기간만 아니었다면 편집장 자신이 갔을 자리인 걸 서로 뻔히 아는 마당에 그는 “하나, 너니까 보내주는 거야” 하며 생색을 냈다. 발리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의 초대형 고급 리조트 홍보팀 직원이 나와 한국을 대표한다는 대형 신문사와 잡지사 기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부패한 정부 관리들보다 기자들이 더 악질이야.” 토목건축일을 하는 그녀의 아빠는 공사 현장이 열리면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는 약점을 들이밀며 금품을 요구하는 기자들을 욕하곤 했다. 이제 무리 안에 든 그녀는 웃을 수 없었다.

     

 일행은 커다란 밴에 몸을 싣고 제일 먼저 킬로그램당 수백 달러에 팔린다는 루왁 커피를 마시러 농장에 들렀다. 그녀를 제외한 모두는 제각각 선물용 커피 상자를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거드름을 피우며 농장을 나섰다. 5성급 호화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일행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만찬을 대접받았다. 그녀를 비롯한 모두는 이 호화로운 대접을 잊지 않고 서울로 돌아가 기사로 갚아야 했다. 그녀를 제외한 모두는 이미 이런 자리에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서로 통성명하며 한편으론 매체의 영향력 순으로 재빨리 줄을 서기 바빴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어떻게, 무슨 의도로, 얼마나 멋진 일을 열심히 하는지 한창 떠들고 난 후에도 “돈은 얼마 못 벌겠네”라는 대답만이 돌아오던 무명의 잡지사에서 출장비가 없어 해외는커녕 사비를 털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던 제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한 저녁을 먹고 마침내 호텔 객실을 배정받을 때쯤 그녀는 거의 정신을 잃기 일보 직전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통 보수 매체 기자라는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온 배를 통통거리며 벌겋게 기름진 입술로 이쑤시개를 물고는 쯥쯥 소리를 내며 그녀와 다른 여기자들을 불러 세웠다. “어이, 거기! 이따 우리끼리 모여서 한잔해야지?” 순간 여기자들의 낯빛이 잿빛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신물이 올라오는 걸 애써 참으며 “아유, 선배님들. 제가 오늘 새벽까지 마감하다 와서 지금 눈 뜨고 있는 것도 신기할 지경이에요. 죄송하지만, 저는 먼저 들어가서 쉬겠습니다”라며 연신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젠장, 나는 매번 이게 대체 왜 죄송한 거야?’ 그러자 그들은 “에이, 여자들이 빠지면 어디 술맛이 나나?” 하며 키득거렸고, 그게 또 익숙해진 여자들은 애꿎게 서로의 발끝만 쳐다보며 ‘도망쳐, 도망쳐’만 외치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눈 대신 입으로 웃으며 배꼽 아래 양손을 포개 갖다 붙이고 허리를 조아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들의 코앞까지 성큼성큼 걸어나 눈을 마주하며 “여자 끼고 술 처먹는 버릇 좀 버려!”라고 소리치는, 저기 어디 평행 우주에나 있을 법한 또 다른 자신을 상상하며.

      

 도망치듯 방으로 흘러들어와 침대에 배를 깔고 엎드린 그녀는 반사적으로 침묵을 잠재울 TV를 틀었다. 의미 없이 돌리던 채널이 ‘SOUTH KOREA’라는 새빨간 자막 글씨에 반사적으로 멈췄고, 하얗고 거대한 배가 옆으로 누워 시꺼먼 바다 위에 반쯤 잠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장면이 거대한 미술관의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처럼 그녀의 기억에 영원히, 선명하게 박제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푸른 눈의 금발 머리 앵커는 심각한 얼굴로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자신들은 정보가 그리 많지 않다는 말뿐이었다. 삐-하는 백색소음과 함께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왔다. 재빨리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지만, 한국 뉴스는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와 삐쭉 솟은 머리카락을 느끼며 인터넷으로 재빨리 뉴스를 검색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선명하게 보였고, 대한민국 공영방송 뉴스에서는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들 338명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는 거 다시 한번 전해드립니다”라며 앵커가 또박또박 입술을 떼었다. 스르륵 긴장이 풀려 그녀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그녀는 출장 일정을 이어갔다. 부자들과 신혼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다는 누사두아 지역의 5성급 리조트는 웬만한 대학 캠퍼스보다 크고 으리으리했다. 조식을 먹으러 내려간 식당엔 간밤의 숙취에 여전히 벌건 얼굴로 숙성된 술 냄새를 풍기며 선배 기자들이 팔짱을 낀 채로 그녀를 위아래로 고깝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볼 일 없는 사람들이다. 어차피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을 생각도 없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다시 한번 눈이 아닌 입으로만 웃으며 “아이코, 선배님들. 어젯밤 재밌게 보내셨나 봐요” 하고는 최대한 그들로부터 멀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해변을 향해 모조리 열린 통유리창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닷바람에 하얀 실크 커튼이 부드럽게 나부끼고 발리의 아침 햇살에 고급 은식기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고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 느낌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넘쳐나는 음식 앞에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애꿎은 시간만 다 보내고 결국 입에 익은 크루아상 두 조각을 입에 욱여넣은 그녀는 그날의 일정인 리조트 투어에 따라나섰다. 홍보 담당자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넓은 수영장 3개를 보여주는 데에만 반나절이 걸렸다. “사람들이 정말 하룻밤에 백만 원을 넘게 내고 여기서 잔다고요?” 그녀는 볼멘소리로 옆에 선 선배 여기자에게 투덜거렸다. “호호, 어머, 자기, 어느 매체에서 왔어? 이런 데 처음인가 봐? 다 공짜잖아. 그냥 즐겨요.”

      

 ‘이게 다 공짜라고?’ 어제 객실에서 TV를 틀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귓가를 맴도는 백색소음이 더 거친 질감으로 변해 증폭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이 모든 건 공짜가 아니다. 그녀가 좋든 싫든 이런 이 리조트에 관한 기사는 이미 정해진 방향과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노골적인 광고보다 간접적인 광고 기사가 더 우아하고 교묘하다고 믿는 광고주와 매체, 소비자가 모두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용인한, 알면서 속아주고, 또 상대방이 아는 걸 알면서 속이는 소모적인 가면극과도 같았다. 그녀의 역할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 최대한 소비를 부추기는 뱀처럼 펜을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공짜라고?

      

 “그나저나 선배, 어제 뉴스 봤어요? 한국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고등학생들이 탄 페리가 침몰한 모양이에요. 다행히 다 구조했데요.” 그러자 선배는 건조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다행이네. 그나저나 오늘 밤 체크아웃인데 방에 있는 샤워가운 잊지 말고 챙겨가. 엄청 비싼 거더라.”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네? 샤워가운을 챙겨가라고요? 그거 호텔 물건 아니에요?” 하고 놀라 되물었고, 선배는 마치 대단한 삶의 지혜라도 전수하는 것처럼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수영장에서 오줌 싸는 거 같은 거지, 뭐… 법인카드로 주말에 집 앞에서 삼겹살을 사 먹거나. 모두 보이지 않게들 뒤에서 하는 거.”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밤 비행기를 타기 전 짐을 싸다 말고 욕실에 걸린 고급 샤워가운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대한민국은 내 돈도, 네 돈도 아닌 ‘눈먼 돈’으로 굴러가.” 4대 보험은커녕 최저시급도 보장 안 되는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었을 때 그녀의 아빠가 한 말이 떠올랐다. “룸살롱 접대비 같은 거?”하고 묻는 말에 아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법인카드에 영혼을 저당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 하고 말했다. 그녀는 끝내 샤워가운을 캐리어에 넣지 않았다. 그녀에겐 중요한 일이었다.

      

 결국 ‘탑승자 전원 구조’는 역사상 최악의 오보였다. 검고 사나운 파도가 새하얀 배를 집어삼키는 동안 그 안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얌전히 앉아 어른들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선장은 팬티 바람으로 혼자 탈출했고, 아무것도 안 하고 못 하고 배 근처만 내내 돌던 해경은 높은 양반이 현장을 시찰하는데 구조 헬기를 내어줬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발만 동동 구르며 파도에 삼켜지는 배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결국 304명의 사람이 시꺼멓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그 죽음들의 목격자였다. 사람들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앓았다.

      

 그녀는 분에 맞지도 않는 발리의 호화 리조트에서 외신 뉴스로 처음 목격했던 장면의 충격과 그로 인해 배가된 죄책감과 후유증에서 아주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시꺼먼 바다가 천천히 집요하게 집어삼킨 배 안에 남겨진 아이들의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 그녀는 안산 분향소로 향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고 신나 하던, 그저 열여덟의 얼굴들이었다. 수능 접수를 위해 찍었을 말갛고 앳된 미소 가득한 증명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어 버릴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한 학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도시는 마치 진공 상태와도 같았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봄기운에 희미한 안개가 자욱이 깔린 도시의 밤, 아무도 감히 경적을 울리거나 음악을 틀거나 소리치지 못했다. 침묵을 넘어선 침묵과 절망을 넘어선 절망이 도시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녀는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사진을 보며 눈을 마주쳤다. ‘많이 무서웠지… 많이 추웠지… 저렇게 다들 밖에서 쳐다보고 있으면서 왜 우리 안 구해주나, 많이 서러웠지?’ 그녀는 차마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한 국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한 개인과 가족, 사회가 얼마만큼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그녀는 똑똑히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억했다. 폐기 직전의 오래된 선박을 싸게 사들여 개조하고 과적한 인간의 탐욕을 단지 금전적 이득이 된다는 이유로 눈 감아온 물질만능주의의 사회 시스템, 전원 생존이라는 역사적 오보를 내고도 유족에게 사과 한번 않고 자극적인 뉴스를 이어가는 언론, 모두 구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모두 구하지 못한 무능하고 비열하고 비정한 정부와 대통령, 그리고 그 여자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죄책감과 분노, 무기력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생때같은 자식을 차가운 바다에서 건져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죄인을 자처한 유족들은 진상을 밝혀달라 애원하며 나라님들 앞에 무릎을 꿇고 손바닥이 닳도록 빌었다. 정부는 노골적으로 진상 조사를 방해하고 진실을 은폐하며 사실을 축소했다.

      

 그녀는 분향소에서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적어 온 이름들이 빼곡히 담긴 노트를 들고 침묵시위에 참여했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저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라고 해서 정말 그 말을 믿고 끝까지 기다렸던 아이들을 그녀는 어디든 데리고 다녔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촛불을 옮겨주면 그녀가 또 그 촛불을 받아 옆에 앉은 다른 사람에게 옮겼다. 그러면 아이들이 조금 따뜻할까, 싶었다. 고요한 침묵시위에도 “김밥 있어요, 김밥!” 하는 김밥 아줌마의 외침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아프고 슬프고 화나더라도 사람들은 배부터 채우자며 김밥을 입에 물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들을 앞세운 부모가 봄꽃이 지고 흰 눈이 내리도록 무릎을 꿇은 채 곡기를 끊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었다.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고 그 비극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 기어코 인간성을 내려놓은 사람의 얼굴을 한 짐승들이었다.

       

 세월호 관련 취재를 전문적으로 맡아 팽목항에서 몇 달을 먹고 잤던 그녀의 친구이자 뉴스 기자인 동욱이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나… 더 이상 한국에서 지내기 힘들 것 같아. 이 나라의 가장 깊고, 어둡고, 악한 걸 보고 말았어. 늘 환청에 시달리고 악몽을 꿔. 그런데 거기에 맞서 싸울 용기도 배포도 없다, 나는.” 여기저기 방송국 계약직을 전전하다 세월호 관련 탐사보도로 큰 주목을 받으며 기자로서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을 맞은 그였다.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그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음악을 즐겨 듣고 문학을 좋아했다. 그런 그가 부조리의 정점을 들여다보게 되었으니 괜찮을 리 없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될까?” 그녀가 물었지만,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둘은 말없이 작고 노란 리본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결국 동욱은 언론학을 배우러 미국으로 떠났다.

      

 그녀는 버텨볼 작정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노트를 어디든 품고 다니며 ‘가만히 있으라’라는 팻말과 촛불을 들고 침묵 속에 행진하다 이유도 없이 경찰서에 끌려갔다 온 후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버틸 작정이었다. 그녀의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은 건조한 사막 같은 얼굴로 “이제 그만하라”며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먹고살았다. 그녀는 시위대에 온갖 혐오와 저주의 말들을 퍼부으며 뜬금없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흔드는 노인들을 길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자신도 부모이면서 자식을 앞세운 한(恨)으로 가슴이 뻥 뚫린 또 다른 부모를 “자식 팔아 장사한다”라는 말의 칼로 베어버릴 수 있는 건 대체 어떤 신념일까 궁금해 집회가 끝나고 삼삼오오 흩어지는 한 무리를 쫓았다. 광화문 광장 뒷골목 국밥집에 모여 앉아 “오늘은 얼마 받았어?” 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려 구겨진 만 원짜리 지폐를 펼쳐 세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목격한 순간, 그녀는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식민지였던 한국에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본 정부에 광복 반세기가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받지 못한 둘로 갈라진 비련의 나라, 그녀의 나라 한국은 자국 내에서 국가에 의해 벌어진 끔찍한 학살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 어떤 일에도 사과하지 않고, 또 사과받지 못한다. 결국 그 누구도 사과받을 자격이 없는 나라 곳곳은 썩은 내가 진동했고, 그녀에게도 이미 그 냄새가 흥건히 옮아 붙었다.     

 

 1년 후, 그렇게 도망쳐 온 외딴섬에서 그녀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매일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바다에서 매번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뭍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304번을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면 그제야 아이들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그렇게라도 하면 그녀도 조금이나마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녀는 바닷속에서 자신을 찾아온 고래상어가 아이들의 영혼이라 굳게 믿었다. 우리는 이제 괜찮다고, 이렇게 넓고 깊은 바다에서 자유로우니 더 이상 미안해 말라고 그녀에게 말하는 거라 믿었다. 뭍에 다다른 그녀는 내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고래상어를 만난 다이버는 하루 종일 섬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다. 그녀는 다이빙 센터의 모든 다이버뿐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만난 과일가게 아가씨와 빨래방 아줌마, 슈퍼에서 만난 다른 다이빙 센터의 다이버들에게도 “럭키 걸”이라는 말을 담뿍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이름들이 적힌 노트를 펼쳐놓고 달빛을 쬐고 파도 소리를 들려줬다. 어쩌면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종이라 이리도 길게, 다른 종을 파괴하면서, 그리고 때로 같은 종을 짓밟으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고래들이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그들 스스로 원치 않기 때문이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사람들의 작은 그물. 그녀가 지금까지 애타게 찾아온 것은 그 모든 작은 선의의 주고받음이었다. 어떤 이에겐 그리 대단치 않아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에겐 그 헐겁고 작은 그물망이 구원이 된다. 어떤 이에겐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그 자체일 수도 있다. 행운과 축복의 상징인 고래상어가 그녀에게 온 날, 그녀는 절망의 마음을 조금 바다에 떼어내고 또다시 작은 그물망을 던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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