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하나 Oct 24. 2024

19. 촛불을 들고 있는 한 사람

 다음 날 아침, 그녀가 퉁퉁 부은 눈으로 다이빙 센터에 나타났을 때 아침 다이빙을 준비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케빈이 그녀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꼭 안았다. 또다시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으며 그녀는 고개를 떨궜고, 케빈은 “네가 늘 불평하는 아무 맛 안 나는 차 한잔할래?” 하며 온 얼굴을 다해 담뿍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말없이 끄덕이며 이른 햇빛에 데워진 작은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래가 그녀의 맨발을 감쌌다.

     

 “어제 클로드에게 들었어. 네가 다이빙 끝나고 올라와 울더라고… 그런데 고래상어를 만나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무뚝뚝하고 심드렁하고 가끔 재밌는 심술쟁이 아저씨라고만 여겼던 클로드가 그런 말을 했다니. 의외였다. “클로드가 그렇게 말했다고? 나한텐 아무 말도 안 하던데….” 케빈은 머그잔을 양손에 들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너도 알잖니. 그렇게 다정한 표현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하지만 네가 꼭 알았으면 해. 여기 있는 우리 모두 항상 널 걱정하고 아낀단다.” 그녀는 케빈이 만들어 온 차가 담긴 머그잔을 양손으로 감싸안았다. 뜨끈하고 사려 깊은 그 마음이 고마웠다. 머그잔에서 내뿜는 열기로 벌써 이마에 땀이 서리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낯설고 외딴섬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말이 담긴 호사로 여겼다.

     

 “나 오늘 다이빙 안 가도 될까? 이미 다이빙 리스트에 내 이름을 적어두긴 했는데….” 그녀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묻자, 케빈은 “물론이지! 다이빙 간다고 해놓고 아예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직접 와서 말할 필요 없어. 모든 건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단다. 하나, 넌 너무 예의를 차려서 탈이야. 하하”하고 환하게 웃었다. 그녀에게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난다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다’는 게 사실 어떤 건지도 잘 몰랐다. 그녀는 일상의 모든 것을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해야 하는 의무처럼 이행하고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나한테 뭐든 이야기해도 돼.” 케빈은 머그잔에 우유를 부으며 말했다. 환한 얼굴로 보트에 올라 그녀에게 손을 흔드는 다이버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말했다. “어제는 바닷속에서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떠올랐어. 고래상어를 만나면서 한국에서의 아픈 기억이 나를 덮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거든. 한국은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오랫동안 살아온 나라인데, 내 삶의 반 이상은 그 사회를 증오하며 살았던 것 같아. 그래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고. 한국에서 멀리 떠나 있으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만 사는 삶이, 늘 스스로 자격 미달에 희생자로 여기는 삶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너무 단순하게만 생각했지. 그런데 이 섬에 들어온 첫날부터 나는 내 나라를 떨쳐낼 수가 없었어. 아니, 오히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아. 여기선 서로 어느 나라에서 온 건지가 이름보다 중요하니까. 벗어나고 싶은 것으로부터 오히려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야. 그동안 매일 다이빙을 쉬지 않고 하면서 일부러 나를 그런 생각 안 하게 몰아붙인 것 같아. 오늘은 좀 쉬면서 우리 케빈 아저씨와 이렇게 대화도 나누고… 좋잖아?” 그리고 그녀는 양쪽 입꼬리를 씰룩거리다 케빈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오~ 저 미소! 하나 너는 그렇게 활짝 웃을 때가 제일 예뻐. 여기서 너는 안전하다는 것만 알아뒀으면 좋겠어. 네가 어떤 생각을 하던, 어떤 감정을 겪던, 어떤 일을 하던 너는 여기서 안전해. 그리고 넌 혼자가 아니야. 여기, 아니 이 섬에 모여 사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문제와 사연이 있지. 거기서 도망쳐왔든 그걸 버리고 왔든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 있는 네 마음의 상태야. 나는 네가 매사에 늘 열심이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배려해서 좋아. 네가 한국인이라서 좋은 게 아니란다.” 케빈의 말이 끝나자, 그녀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정말? 프랑스 사람들은 처음부터 싫어하잖아?” 그러자 그는 헛기침하는 시늉을 하며 “그건 좀 다른 얘기고…” 하고 눈을 찡긋거렸다.

      

 그때 잔뜩 인상 쓴 얼굴로 클로드가 “퍼킹, 퍼킹”을 외치며 나타났다. “도대체 이 섬에 언제부터 더트 바이크를 타는 빌어먹을 인간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거야?” 하며 투덜거렸다. 그의 집에서 다이빙 센터까지 2분도 되지 않는 길에서 천천히 스쿠터를 몰던 그를 누군가 굉음을 내며 위협적인 몸짓으로 앞질러 간 게 틀림없었다. 케빈과 그녀는 무슨 일인지 알 것 같다는 익숙한 눈빛을 서로 나눴다. 매일 같이 영국 프리미어 리그와 정치 뉴스를 꼭 챙겨보며 냉소적으로 불평하길 좋아하는 클로드는 그녀를 보자마자 “오, 한국에서 아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던데?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대규모 시위 장면이 오늘 뉴스에 도배가 됐어!” 하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였던가?” 클로드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냉소적인 농담을 던지며 언제나 그랬듯 그녀가 크게 웃으며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시늉을 예상하며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잔뜩 예민해져 있던 그녀는 클로드를 날카롭게 째려보며 되받아쳤다. “아직도 여왕을 모시고 사는 나라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클로드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장난기와 냉소가 동시에 드러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오, 웃자고 하는 얘기였는데 그렇게 나오면… 내가 할 말이 없지. 네가 한 말이 사실이니까. 내가 왜 영국이 아닌 여기서 15년째 살고 있게? 호호호호.”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 죄 없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거든. 그걸 실시간으로 모두가 지켜봐야 했어. 나는 아직도 가끔 저 예쁜 바다가 울컥하고 무서워. 사실 나도 할 말이 없어. 애초에 군부 독재자의 딸이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으로 뽑힌 게 말이 안 되지. 내가 투표권이 생기고 처음 투표한 대통령이 대한민국 역사상 돈 없고 빽 없고 대학도 안 나온 상고 출신이었거든? 나는 그때 한국이 정말 교과서에서 배운 민주주의 국가구나, 했어. 다음 세대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치른 희생과 고통이 드디어 결실을 본 거라고. 그런데 결국… 그 사람도 떠났어. 지금 한국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 부르며 스스로 알아서 조롱하고 비웃어. 우린 패배에 익숙하거든.” 그녀는 한참 열변을 토하다 갑자기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와 야자수를 배경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십 대와 오십 대의 두 영국 남자의 파란 눈빛을 보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릴뻔했다. 그녀가 이 섬에 들어와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눈 건 처음이었다.

      

 클로드는 바닥에 조금 남은 차를 입안에 탈탈 털어 넣고 케빈과 그녀를 번갈아 보며 “한 잔씩 더 할래?” 하고 물었고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끓인 차를 내오며 말했다. “하나 너도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무정부주의자야. 대학 졸업하고 런던에서 컴퓨터 회사에 다녔는데 내 일상은 회사, 술, 마약이 전부였어. 열흘짜리 휴가로 이 섬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않았지. 왜? 다시 돌아갈 만큼 내게 의미 있는 삶이 아니란 걸 깨달았거든.” 그러자 그녀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영국을 떠나 여기에서 살아온 지난 15년 동안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어?” 클로드는 한참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정치는 모든 사람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영향을 끼쳐. 그걸 인정하고 안 하고는 각자의 자유지만 진실은 달라지지 않아. 지금 우리가 여기 앉아 마시고 있는 영국 요크셔산 티백을 얼마에 마실 수 있는지도 정치로 정해지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태국은 군부 쿠데타 정권의 나라야. 그런 나라에 생계와 안전을 위해 일하러 들어온 수많은 미얀마 사람도 군부 독재 정권의 피해자잖아. 둘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정치는 시작되는 거야. 죽을 때까지.”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스스로 채근할 거리를 찾기 바빴다. “난 좀 냉정하고 초연해지고 싶어. 그런데 그게 잘 안돼. 여전히 분노가 치솟고 슬프고 원망스러워. 나는 너무 참을성이 없고, 강하지도 못하고, 남들처럼 잘 버티지도 못해.” 그러자 클로드는 스마트폰으로 한국의 광화문 거리 촛불시위 모습을 보도하는 영국 BBC 방송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네 나라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봐. 난 태어나서 저렇게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평화롭게 시위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영국이었다면 벌써 폭력 사태가 일어났을걸.” 울컥하는 마음에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모두 그녀처럼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고, 가족을 위해 영겁의 고단한 아침을 반복하는 아주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그중 누군가는 이미 수십 년 전 광장에 나갔고, 혹은 그 광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누군가의 가족이나 친구일 것이다. 그 작은 날갯짓이 모여 큰 파도가 되었을 때 드디어 ‘서울의 봄’이 왔다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 순서대로 와야 했을 모든 계절을 건너뛰고 봄 대신 찾아온 겨울에 다시 한번 움츠러들며 체념한 채로 그저 삶을 묵묵히 이어 나간 사람들. 


 그때 클로드가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내가 한 말에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발끈하는 걸 보니 너는 여전히 네가 타고 자란 나라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실망도 좌절감도 더 큰 거야. 네가 외면한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진 않아. 시위하는 군중을 보지 말고 그 안에 촛불을 들고 있는 한 사람을 봐. 그 가치를 헤아리면 결과가 어떻든 결코 절망에 빠지지 않을 거야. 넌 너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면 돼.”

     

 그녀는 클로드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 났다!”라며 반짝이는 눈으로 케빈과 클로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클로드는 오랫동안 창고에 넣어두었던 수중카메라를 꺼냈고, 케빈은 바닷속에서 쓰고 지울 수 있는 커다란 수중 칠판과 펜을 준비했다. 그녀는 클로드와 오후 다이빙 보트에 올랐다. 햇살이 드리운 평화로운 바닷속에 뛰어든 그녀는 수중 칠판을 꺼내 같은 시각 한국의 시민들이 모여 광장에서 외치는 구호를 적고 꺼지지 않는 촛불 하나를 그렸다. 클로드에게 준비됐다는 수신호를 보냈고, 클로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녀는 사진을 “더 이상 차갑고 서럽고 무섭지 않은 바닷속에서, 희망을 꿈꾸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라는 메시지와 함께 고국 광장에 선 친구들에게 보냈다. 그녀는 또다시, 기꺼이 용기를 내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