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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Oct 28. 2024

20. 리빙 인 어 버블


 “하나, 하나, 하나.” 알고 보니 벤만 그녀의 이름을 자주 부른 것이 아니었다. 섬에서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은, 아니 서양에서 온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문장의 처음과 끝에 그녀의 이름을 살뜰히, 그리고 다정하게 붙였다. 단둘이 눈을 마주치는 대화에서도 상대는 끝없이 그녀를 확인하고 살피고 소환한다. 그녀가 살던 곳에선 마주 앉은 사람을 이름 대신 ‘너’ ‘당신’ ‘선배’ ‘선생님’ ‘과장님’ ‘대표님’이라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거기’ ‘그쪽’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그래서 에어컨을 고치러 온 기사나 매일 마주치는 회사 건물 경비원 같은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름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현존을 확인할 수 있어 이름을 자주 불리는 게 좋았다. 그녀의 이름이 더 많이 불릴수록 그녀의 존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러면서 그녀도 항상 누군가의 이름을 자주 불러야겠다고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른 아침 다이빙 센터로 출근하는 길에 마주치는 길거리에서 주먹밥을 파는 아주머니나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꼭 들르는 과일 가게 아가씨의 이름을 묻고 또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을 알고 싶은 마음은 그 존재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었다. 이름을 모르면 그녀에겐 그저 ‘태국 사람’ ‘영국 사람’ ‘중국 사람’ 혹은 ‘서양인’ ‘동양인’ 같은 보통명사로만 남게 될 뿐 각각의 한 사람이 개별적으로 인지되지 않았다.      


 이 섬에선 그게 쉬웠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활짝 열려있었고, 그녀가 묻기 전에 먼저 이름을 물었다. 아무 이유와 목적 없이 서로 이름을 물으며 시작한 가벼운 대화는 훨씬 풍성하고 흥미로운 사람의 이야기로 무르익었다. 그녀가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트레이닝하는 다이빙 센터에선 그게 훨씬 더 쉬웠다. 저마다 출신 국가와 문화와 언어가 달랐지만, 바다와 사랑에 빠졌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자신의 비대한 자아를 거대한 바닷속 세상에서 경험한 경외감으로 조금씩 깎아나가고 있었다. 행복한 사람들, 아니 적어도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녀는 무뚝뚝한 고층 빌딩으로 빽빽한 도시에서 그보다 더 무심하게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고 걷던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그녀 자신은 어떠한가. 그녀도 이곳에서 행복한가. 그토록 바라던 평안을 찾았는가.

      

 “리빙 인 어 버블(Living in a bubble).” 함께 다이빙을 마치고 보트에서 수면 휴식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녀가 다이빙 강사로 이 섬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을 때 클로드의 대답이었다. “다이빙 강사로 산다는 건 직업보다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바꾸는 것에 가까워. 리빙 인 어 버블(Living in a bubble), ‘다이버의 성지’ ‘다이버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 섬에서 오래 지내온 다이버들은 다 그렇게들 말해. 다이버가 물속에서 내뿜는 자신만의 버블 속에서 사는 거야. 끝없이 업데이트되는 사회로부터 멀어진 만큼 자연과는 가깝게.” 그녀는 이미 다이빙 강사가 되어 이 섬에서 살고 싶다는 결심을 굳힌 지 오래지만,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결심을 꺼내어 되짚어 보고 의심하고 있었다. 무심한 빌딩 숲에서 목적과 의미 없이 조금이라도 위험이 될 만한 건 모조리 베어버려야 했던 무사(武士)가 파라다이스의 피터팬이 되는 건 하루아침에 마음먹은 대로 그리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불안하지 않아?” 그녀는 마침내 품고만 있었던 속마음을 뱉었다. “나만 빼고 세상이 발전하고 사람들이 변하는 게?” 사실 그녀는 그랬다. 매일 같이 새롭게 발표되는 뮤지션의 신보와 영화 신작, 각종 페스티벌과 콘서트, 브랜드 행사, 미술관 전시회 등등 그 모든 걸 따라잡으려 그녀는 헉헉거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새로운 걸 좇지 않으면 도태되고 뒤진다는 불안은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아이디어가 바닥난 브랜드들은 어느 날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친환경’이라는 주제를 들고나와 갑자기 다들 에코백을 만들기 시작했다. 단 한 시즌 브랜드 행사장에 초대받아 그녀가 받은 에코백만 수십 개가 넘었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장식된 돌고래 그림이 애처롭고 민망했다. 그렇게 또 다른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에코백들이 환경에 더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메시지와 방식만 바뀔 뿐 결국 세상은 소비로 팽창하고 있었다. 그런 세상의 폭력적인 억압과 기만이 싫어 이 섬에까지 와놓고도 그녀는 여전히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며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간간이 불안에 시달렸다. 한국 사회의 성공을 갈망하는 DNA를 가진 그녀는 성공이라는 게 무의미한 다이빙을 하면서 이따금 길을 잃었다. 애초에 어떤 게 성공한 삶인지 고민조차 없었던 터라 그녀는 이 삶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지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럴 때면 어떻게든 오늘을 버텨낸 것이 수십 년 후 돌려받을 보험금에 일조한다는 것으로 위안 삼으며, 남들처럼 역겨움과 신물이 올라와도 한 번 참고, 더, 더,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사회의 진리를 떠올리며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을 더 강력하게 정당화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했다.      


 “너는 여기 오기 전엔 불안하지 않았니?” 클로드가 그녀에게 되물었다. “내가 90년대 말 이 섬에 처음 왔을 땐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어. 지금까지 여기 살면서 섬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불행해졌다고 느낀 건 이 섬에 스마트폰이 들어오고서부터야. 그 느긋하고 여유로웠던 사람들이 그 빌어먹을 스마트폰으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고 나더니 조바심이 생기고 불안해지더라. 내가 여기서 사는 게 불안하다면 영국으로 돌아가도 불안할 거야. 세상 어딜 가든 나는 똑같겠지. 나 자신이 변하지 않는데 내가 발전된 도시에 있건, 이런 오지에 가까운 파라다이스에 있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녀는 가만히 시선을 돌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에 한참 두었다가 돌연 다이브 컴퓨터로 수면 휴식 시간을 확인하고는 클로드에게 말했다. “이제 들어갈 시간이야, 가자!” 그러자 클로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거구나, 네가 다이빙을 쉬지 않고 하는 이유가. 너는 지금 네 안의 불안과 싸우고 있는 거야.”     


 그녀는 바닷속에서 클로드의 말을 되새겼다. 그는 그녀를 간파했다. 그녀와 함께 이곳에서 다이브마스터 트레이닝을 하는 바리사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위협감을 느꼈던 것도, 다이빙 센터 누굴 붙잡고 물어봐도 “하나보다 열심히 다이빙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던 것도 모두 그녀의 불안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마저 다이빙을 열심히 해서 좋은 강사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이빙을 가르쳐서 명성을 얻고 돈을 벌어 성공하고 싶은 거였다. 그리고 그에 잠식된 마음속에 검고 익숙한 불안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는 바닷속에서 클로드를 좀 더 유심히 관찰했다. 지금까진 그의 다이빙 스킬과 부드럽고 유연한 움직임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그 사람 자체를 깊게 들여다봤다. 경력과 실력, 명성을 모두 갖춘 그는 마음만 먹으면 강사 레벨을 더 높여 다이빙 업계에서 사업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명쾌한 정의 내리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녀가 나고 자란 사회의 기준으론 그랬다. 15년이 넘게 이 섬에서 다이빙을 해온 그는 눈을 감고도 이 섬 주변 곳곳의 다이브 포인트를 제 손바닥 안처럼 잘 알았다. 그런데도 그는 그 흔하디흔한 나비고기를 보고는 여전히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에게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곳이 아닌 런던 외곽 어딘가에서 그 나이에 어울릴 법한 아내와 아이와 함께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감히 누가 그의 선택에 토를 달 수 있을까.     


 그 순간 바닷속에서 그녀는 손바닥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에 무심코 제 손을 내려다봤다. 그동안 다이빙을 위해 수없이 탱크 밸브를 여닫으며 생긴 굳은살이었다. 손바닥 중지와 약지 아래 사이좋게 나란히 자리한 굳은살을 보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딸의 육체노동을 어떻게든 피하게 하려는 의도로 고집스럽게 대학에 보낸 엄마를 떠올렸다. 그녀는 엄마는 이 굳은살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그녀는 갑자기 산뜻해졌다. 에고를 내세워 사상의 경쟁으로 밥벌이하며 어딘가 붕 떠서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잡지 기자 일을 할 때 늘 안고 살던 죄책감과 자괴감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몸으로 하는 노동의 정직함과 고귀함으로 자신이 땅과 바다와 하늘에 좀 더 달라붙은 것 같았다. 그녀가 기록과 경쟁이 없는 다이빙을 하며 매일 같이 바닷속에 뛰어드는 이유를 이제야 스스로 알 것 같았다. 또다시 굴러떨어질 걸 알면서도 매일매일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그녀는 나름의 진실함에 접지하기 위해 어차피 또다시 뭍으로 올라와야 할 걸 알면서도 자꾸 바닷속에 뛰어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적어도 이것은 그녀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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