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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Nov 04. 2024

22. 노스 코리안 스파이


 연말 성수기를 맞아 북적거리는 섬에는 혹독한 겨울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북유럽 사람들이 특히 많아졌다. 영국은 크리스마스에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술을 마시며 어떻게 가족들과 연휴를 보내는지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케빈과 함께 그녀는 다이빙 센터 입구에 놓을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한국에선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냐는 케빈이 물었고, 그녀는 사실 자신의 나라가 서구에서 들어온 명절을 술 마시며 죽도록 노는 또 하나의 명분으로밖에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연휴 대부분을 클럽이나 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보냈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케빈은 크리스마스 정신을 기리지 않는 나라와 사람들이 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는 걸 처음 안 것처럼 조금 놀라고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더 열정적으로 크리스마스에 먹는 에그녹과 파이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순간 반항심이 들어 한국의 정월대보름이나 동짓날, 설날, 추석 등에 대해서도, 케빈이 모르는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다른 가치관과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으나 결국 그러다 말았다.

      

 클로드는 미간에 주름을 잔뜩 품은 찌푸린 얼굴로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 기간 빼곡히 찬 다이빙 코스 강습 예약 스케줄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러다 언제나처럼 한쪽 눈썹 끝을 추켜올리며 그녀를 따뜻하고도 아니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 너는 도대체 언제 다이브마스터 트레이닝을 끝내고 강사가 될 거니?”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그녀가 강사로서 준비가 되었다는데 혼자만 아니라며 계속해서 다이빙 트레이닝을 이어가던 그녀였다. 그녀와 함께 다이브마스터 트레이닝을 시작했던 친구들은 모두 강사가 되어 이미 다이빙 코스를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준비되었다고 생각되면 결정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케빈이 끼어들어 “그럼, 물론 하나 네가 준비되었다고 생각할 때. 클로드는 네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하고 말했다. 그래도 그녀는 한사코 아직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여전히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겸손도 가식도 아닌 그녀의 세포에 각인된 희한한 삶의 태도였다. 강사가 되고 나면 더 이상 클로드가 다이빙을 가르치는 코스를 참관하며 배울 수 없다는 것도 나름의 이유였다. 그녀는 클로드의 수업에서 여전히 그녀가 범접할 수 없는 마법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그녀의 걱정은 따로 있었다. “내가 백인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녀는 눈을 낮게 깔고 목소리를 조그맣게 내며 물었다. 클로드와 케빈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동그래진 눈으로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하고 동시에 물었다. 그녀는 이 작은 섬의 70개가 넘는 다이빙 센터를 통틀어 아시안에게 다이빙을 가르치는 백인 강사는 봤어도 그 반대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보지 못하니 그녀의 상상력도 가난해져만 갔다. 클로드가 다이빙을 가르칠 때마다 보조로 함께하면서도 백인 교육생을 가르치는 아시안으로서 제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나는 원어민처럼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도 못하는 걸….”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클로드가 말했다. “하나, 넌 여기 일하는 어떤 강사들보다 뛰어나. 넌 여기 온 뒤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며 다이빙했어. 가끔은 이게 뭔데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나, 할 만큼. 지금 네가 강사 자격이라면 나는 누구보다 너를 믿고 우리 다이빙 센터를 찾는 학생들은 너에게 맡길 거야.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든 관계없이….”

     

 결정을 미뤄오던 그녀는 속마음이 들킨 아이처럼 풀이 죽어서는 만지작거리던 금색 방울로 시선을 돌려 크리스마스트리에 달았다. 맞은편에서 기다란 은색 반짝이 줄을 나무에 빙 두르던 케빈은 그녀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하나 네가 늘 하던 얘기 있잖아. 바닷속에서 인간은 말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바닷속이 좋다고. 다이빙을 가르치는데 언어가 큰 문제가 되진 않아. 그리고 네 영어는 완벽해. 지금 네 모습을 봐. 이곳에서 우리와 늘 영어로 얘기하며 모든 일상을 함께 하잖아.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어?”

     

 그때 오후 다이빙에서 돌아온 다이버들로 시끌시끌하기 시작했다. “헤이, 노스 코리안 스파이!” 노르웨이에서 온 안드레였다. 그녀와 동갑이지만 그녀보다 두 배는 더 큰 덩치에 그녀보다 이십 대는 더 많은 타투를 가지고 있었다. 몇 년 전 여기서 다이빙 강사가 되어 겨울 시즌마다 이 섬에 서너 달 머물며 다이빙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안드레는 한국에서 왔다고 그녀가 자신을 소개한 첫날부터 북한인지 남한인지 물었고, 남한이라 진지하게 답하는 그녀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며 분명 북한에서 온 스파이일 거라 말했다. 그는 그것을 진정으로 ‘웃자고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어차피 그에게 자신이 열정적으로 규정짓는 그 북한과 남한이 어디에 있는지 세계지도에서 찍어보라면 당황할 게 뻔하니 그녀는 싫은 내색 없이 그의 무지와 자만을 봐 주기로 했다.

      

 안드레는 민물이 담긴 큰 수조에 다이빙 장비가 든 가방을 한꺼번에 넣고 흔들흔들 대충 씻고 장비실에 던져 넣고는 바에서 차가운 맥주를 가져다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 바로 이거지!” 하며 안드레는 테이블에 두 명의 교육생과 둘러앉아 오늘 다이빙 교육의 내용을 로그북에 적었다. “자, 오늘은 오픈워터 코스 개방수역 실습 첫 번째와 두 번째 다이빙을 했어요. 첫 번째 다이빙 최대 수심은 15미터, 다이브 타임은 30분….”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그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다이빙 프로페셔널로 분류되는 다이브마스터와 강사는 다이빙 자격을 인증하고 관리하는 단체의 규정을 지켜야 한다. 다이빙의 입문 코스인 오픈워터 코스 개방수역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다이빙에서 교육생에게 허용된 최대 수심은 12미터다. 그걸 안드레가 어긴 것이다. 그녀는 다이빙 단체가 정한 규정을 강사가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세상이 두 쪽이 날 것처럼 화를 내던 강사 형식을 떠올렸다. 그녀는 로그북 기록을 마치고 교육생들을 보내고 남은 맥주를 마시고 있는 안드레 옆에 앉아 가만히 눈치만 봤다. 왜 규정을 어겼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직 정식 다이브마스터도 아닌 자신이 감히 강사에게 그런 걸 물을 수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온 나라에선 괘씸할 일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또 편치 않아 그녀는 안드레 옆에 앉아 괜히 맨발로 모래를 휘저으며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오, 맞다! 하나, 나 부탁이 있는데 좀 들어줄래?” 안드레가 그녀에게 물었다. “물론이지. 뭔데?” 호시탐탐 그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노리던 그녀는 뜨끔해 바로 대답했다. “내 교육생 둘 말이야. 내일 오전 개방수역 세 번째, 네 번째 실습 다이빙을 나가는데 두 친구가 너무 못해. 너도 알겠지만… 아시안이라 좀 힘들어.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고…. 하, 나 오늘 정말 끔찍한 오후를 보냈어. 내일 아침 하나 네가 내 코스 보조로 들어와 줄래? 이 멋진 강사님, 가르치는 것도 보고 말이야.” 그녀는 그가 어떻게 수업하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안드레의 두 교육생은 겉모습만 아시안이지 캐나다에서 나고 자랐다는데 ‘아시안은 수영을 못 한다, 고로 다이빙을 못 한다’라는 명제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안드레가 맥주를 마저 비우고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하고 자리를 뜰 때쯤 진즉에 맥주병을 들고 테이블에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줄리앙이 그녀 옆에 앉았다.

      

 “하나, 넌 왜 늘 ‘예스’라고만 해?” 줄리앙이 다정하고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그래? 늘 ‘예스’라고 한다고?” 그녀는 몰랐다. 전혀 몰랐다. 각기 다른 문화와 개성을 가진 사람들의 조화로운 혼란에 압도되어 그녀는 자신이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응. 다이빙 센터 사람들 모두 하나 넌 절대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 이렇게 말하며 줄리앙은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맥주병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의사를 물었고 그녀는 “나 술 안 마시는 거 알면서” 하며 미소를 지었다. “알지. 그래도 오늘은 마시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줄리앙도 미소로 답했다. “난 이게 참 좋아. 안 마신다고 하면 더 이상 권하지 않는 거. 마셔도 내가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는 거. 한국에선 술을 안 마신다고 하면 더 마시게 하거든. 가정폭력, 음주 운전, 성범죄 등등 수많은 한국 사회의 비극이 술 때문에 일어나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은 내가 같이 취해서 그들과 함께 개가 되지 않는 걸 괘씸해하는 거 같아.” 그러면서 그녀는 싫다는데도 술병을 쥐여 주고 술을 따르라는 수많은 상사와 싫다는데도 술잔을 쥐여주고 술을 따르는 수많은 남자를 떠올렸다. 평소엔 멀쩡하다가도 술만 먹으면 벌게진 얼굴로 가슴만 쳐다보던 편집장과 한국에선 술을 안 먹으면 남녀 간의 역사가 안 일어난다며 그게 무슨 세상의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던 한 선배 기자의 모습도 지나갔다. 대학 시절, 남자 친구 선배들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소주 한 잔도 못 먹는 그녀에게 두꺼비가 있는 소주 한 병을 먹여 기어코 병원으로 가야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술이라면 지긋지긋하지만 “술 취해서 그러는 거니 네가 이해해”라는 말로 서로 눈감아주고 방치하는 사회가 더 지긋지긋했다.

      

 “절대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그녀가 줄리앙에게 말했다. “하하하. 너도 알다시피 난 프렌치야. 내가 뭐라고 할 것 같아?” 그녀는 또다시 맨발로 모랫바닥을 휘적이며 말했다. “뭐,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누군가 부탁할 때 도와주면 좋잖아.” 줄리앙은 반문했다. “네가 싫을 때도?” 그리고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좀 전에 안드레가 규정을 어긴 것 같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그러자 줄리앙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딴 규정, 누가 신경 쓴다고? 바닷속에서 규정보다 1~2미터 더 깊이 들어갔다고 뭐가 어떻게 되지 않아. 프랑스에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자격증 없이도 다이빙을 많이 해. 오히려 그들이 더 전문가일 때도 많고.” 

     

 그녀는 모범을 정하고 따르는 일에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리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일에 침묵하거나 질문하지 않는 일에도 익숙했다. “미안… 내가 주제넘게….” 그러자 줄리앙이 말했다. “네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할 필요 없어.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나는 여기에서 강사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다면 그게 클로드건 케빈이건 누구 건 싫다고 말해. 하나 네가 집단이나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건 좋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싫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좋아. 하지만 그게 네가 집으로 돌아가 잠 못 드는 이유가 된다면,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 집단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사그라지는 게 맞다고 주장하던 사회에서 나고 자란 그녀의 세계와 그 집단과 공동체도 선명한 제각각의 개인이 없다면 무의미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나고 자란 줄리앙의 세계가 이 작은 섬에서 충돌했다. 이 중 누구의 세계가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줄리앙의 세계는 단단하고 거침이 없었으나 그녀는 자신의 세계에서 우유부단하고 의기소침해졌다. “사람들이 싫어할까 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줄리앙에게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강박과 끝없는 인정욕구의 시작점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 날 아침 안드레에게 앞으로 자신을 ‘노스 코리안 스파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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