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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게 바로 파시즘이야

역사는 느리지만 결국, 옳은 방향으로 간다.

by 조하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상식적인 국민 70%가 오랜 시간, 극우 파시즘 세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의 12.3 내란 이후, 오랜 시간 한국 사회를 유령처럼 떠돌던 극단주의 세력이 “바로 지금이다!”라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수면 위로 튀어 오르고 있다. 불쾌하기 짝이 없어 무시하고 피하고 싶지만,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게 바로 그거다. 불쾌함과 짜증으로 유발되는 체념과 무관심. 괴물은 우리의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기회로 우리는
민주공화국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를 역이용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체제를 말살하려는 반국가세력을
피아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12.3 내란으로 궁지에 몰린 대한민국의 파시즘 세력은 위기감 속에서 앞으로 더욱더 무모하고 난폭하게 굴 것이다. “내가 가진 걸 잃을 바엔 그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겠다”는 심보로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모든 것을 블랙홀로 내던진 우두머리 윤석열처럼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해치면서도 끝까지 망상에 사로잡혀 스스로 영웅이라도 된 듯한 승리감에 도취된 사람들이 숨겨왔던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있다. 내 가족, 이웃, 학교 친구, 선생님, 직장 동료, 상사, 사회 인사, 정치인, 정부까지도. 그리고 우리는 외부의 파시즘뿐 아니라 자기 안의 파시즘과도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극우 파시즘 세력 국민의힘은 실력 대신 권력을 믿는다


파시즘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며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다. 대통령 탄핵 소추 헌법 심판의 피청구인이자 내란죄 형사 재판의 피고인이 된 윤석열은 여전히 자신은 현직 대통령이라며 “계엄은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내란죄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계엄령은 우매한 대중을 깨우기 위한 ‘계몽령’이었다고 말한다. 계몽령 주장을 가장 먼저 시작한 건 한 극우 유튜버였다. 지금도 윤석열은 ‘짐이 곧 국가다’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국민의힘과 지지 세력 역시 자신이 왕정주의 귀족이라 여긴다.

미국의 파시즘을 부활시킨 트럼프는 윤석열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법치주의보다 범죄 조직에서 잘 통하는 개인적 충성심과 의리를 강조한다. 트럼프는 첫 번째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공공연히 헌법 질서를 무시하는 발언과 행동을 일삼았고, 2020년 대선 패배 후에는 지지자들을 선동해 미 국회의사당 폭동을 촉발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으로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공정과 상식, 정의와 법치주의를 강조했지만, 집권 후 검찰 조직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노골적으로 탄압했다. 이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법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파시즘적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트럼프와 윤석열은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해 국민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는 전략을 사용한다. 트럼프는 ‘진짜 미국인’과 ‘좌파 엘리트’라는 프레임을 활용했고, 윤석열 역시 ‘반(反) 문재인 정서’와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사회적 갈등을 조장했다. 이러한 방식은 소수 엘리트가 대중의 불만을 특정 적대 세력에게 돌리며 통치를 정당화하는 전략이다.


다운로드.jpg 윤석열은 매년 국군의 날마다 이례적인 군사 행진과 사열을 통해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꿈꿨다.



1920년대 무솔리니와 히틀러에 의해 출현한 파시즘은 주로 강한 국가를 상징하는 군복과 집단 행진 등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과시됐다. 21세기 파시즘은 디지털 선전과 알고리즘 조작을 통한 음모론 확산을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여전히 변치 않는 공통점은 강력한 지도자에 의한 통제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윤석열은 대통령 취임 이후 매년 국군의 날마다 수십억을 들여 이례적인 규모의 군 시가행진을 벌이고, 전 군의 사열을 받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안보에 무능한 대통령이 ‘전쟁광’ 참모들에 둘러싸여
‘왕 놀이’를 한 것이다.

제2의 박정희와 전두환을 꿈꾸던 그의 실상은
군 미필에 ‘부대 열중쉬어’도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무능력하고 위험한 군 통수권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 불법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 기능을 막으며 헌법을 유린했다. 국헌을 어지럽힌 내란죄 혐의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결의되어 끝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후에도 그는 군대 대신 경호처를 사병처럼 부리며 체포에 저항했다. 그의 파시즘적 세계관에서 왕은 무슨 죄를 지어도 잡혀가지 않는다. 감히, 누가 전지전능한 그를 판단한단 말인가!




파시즘은 경제적 위기를 일으키고, 이를 이용한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불황이 지속되면서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중산층과 서민층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안정과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경제적 위기는 민주주의가 취약해지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높은 실업률이나 인플레이션은 정치에 회의감만 높이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경제적 박탈감이 커진 사람들은
정치와 사회에 불만을 품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의 일부는
급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극우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한민국의 경우, 부동산 문제와 청년 고용 불안, 젠더갈등, 세대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극우 성향의 정치적 레토릭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기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윤석열과 정부, 그 자체란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과 12.3 불법 계엄선포로
대한민국은 수백조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내란 사태 이후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원 달러 환율은
2025년 2월 4일 기준 1,463원을 기록하고 있다.








파시즘의 수장 윤석열이 직접 경제를 망치고,
그 경제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노인 극빈층이
오히려 그를 지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상식과 이성은 필요 없다. 소외감과 고립감, 외로움과 상실감, 괜히 울화가 터지는 심정을 풀어낼 곳이 필요하다. 윤석열과 파시즘 세력은 온갖 혐오와 폭력으로 물든 광장으로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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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1).jpg 2024년 윤석열의 대파 사태엔 현 대통령 권한대행이자 경제부총리 최상목도 있었다. 윤석열보다 못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윤석열보다 더 나을 리도 없다.



윤석열이 대한민국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믿지도 않거니와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그들에겐 상관없다.



인간의 본성은 자신이 불안하고 연약하다고 느낄 때
강인하고 과격하고, 심지어는 폭력적인 이미지를 가진 세력의 편에 서고 싶어 한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걸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 시스템을 고치려 시도하기보다
차라리 힘 있고 극악무도한 가해자의 편에 서서
자신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듯한 착각에 빠져
거기서 위안을 얻고 기괴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파시즘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1920년대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 속에서 경제적·사회적 위기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대중의 불안을 이용했다. 21세기의 파시즘 역시 기존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반발심을 이용해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단순하고 선정적인 메시지로 선동한다.


트럼프는 일부러 짧은 문장에 쉬운 용어를 써서 여러 번 반복한다. 메시지의 내용은 상관없다. 정치의 ‘ㅈ’ 자도 몰랐던 검찰 출신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마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인상을 준 “좋아, 빠르게 가!”와 같은 캐치프레이즈처럼.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윤석열이 손에 ‘王’ 자를 쓰고 대선 토론에 나와
“대통령이 반드시 ‘RE100’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데도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대통령 후보 배우자가 주가조작, 논문·학력 및 경력 위조 등 각종 범죄에 연관되었고,
“내가 정권 잡으면 모두 가만 안 둬”라고 분명히 경고하는 ‘7시간 녹취록’이 공개되었는데도
대다수의 언론과 대중은 “여자가 대장부처럼 시원시원하다”라며 추켜세웠다.


파시즘이 대중에 쉽게 침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중 심리의 특성이다.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집단에 속하고 싶어 하며, 거기서 불안을 해소하고 안정감을 얻어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고자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방역 정책,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경제적 위기를 겪은 사람들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극우, 혹은 보수 지도자를 선택했다. 그래서 결국, 대중은 그 선택으로 인해 원하는 바를 얻었는가? 대중의 불안을 간파하고 이용하는 본능을 타고난 파시즘은 강력한 리더십을 내세우며 단순하고 명확한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쇼할 뿐 실상은 대중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할 뿐이다.






파시즘은 사람들의 갈등에 춤을 춘다


파시즘 지도자는 사회의 특정 계층이나 사회적 약자, 외국인, 이민자 등을 희생양으로 삼아 대중의 갈 곳 잃은 분노를 결집한다. 종종 대중의 문화적·경제적 불만을 이용해 직접적인 독재보다는 대중의 자발적인 지지를 얻는 ‘소프트 파시즘’ 형태로 나타날 때도 많다. 어떤 형태든 결과적으로 민주적 가치를 위협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과거 파시즘이 주로 유대인 같은 특정 민족에 대한 혐오나 민족주의와 우월주의에 기반한 국가 간 대립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21세기 파시즘은 성별과 성적 정체성, 장애, 노동, 이민자 등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주제를 이용해 갈등을 조장한다.

대한민국의 파시즘 세력은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반페미니즘 정서를 적극 활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단 한 번도 대한민국의 젠더 갈등 해결과 저출산, 초고령 사회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젠더 갈등을 더욱더 부추겨 남성과 여성을 대립하게 만들고, 이 문제를 정치적 선동 수단으로만 이용만 할 뿐이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응원봉 시위대’ ‘키세스 시위대’로 2030 여성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이를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보면서 나는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눈치를 봤다. 여성은 너무 의식적이고 논리적이고 정의로우면 금세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분명 이를 통해 반사적으로 소외감과 피해의식을 느끼는 2030 남성들을 국민의힘과 극우 세력, 일부 언론이 부추기며 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할 게 뻔했다.


결국 우려하던 일은 현실로 벌어졌고, 언론은 마치 정의를 지키는 윤석열 탄핵 찬성 집회는 2030 여성으로, 그리고 사회의 해악인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는 2030 남성으로 대변되는 것처럼 일반화해 쐐기를 박아버렸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이로써 윤석열의 파시즘 세력은 내란을 일으켜 놓고도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젠더 갈등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해 이 사회를 양극단으로 갈라놓는 데 성공했다.



파시즘은 누구라도 하나 죽길 바란다


파시즘은 대중의 이성적인 생각과 논리를 없애고 감각을 마비시켜 정치를 종교적 믿음의 영역으로 바꿔놓는다. 이때 공공의 적을 설정하는 것처럼 효과가 좋은 게 없다. 난민, 이민자,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특정 정치세력 등의 특정 집단을 적으로 규정해 대중을 결집하는 것이다. 그러면 파시즘을 지지하는 세력은 자신들을 정의의 수호자로 여기며 반대 세력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해 처단할 수 있다고 스스로 정당화한다.




집단 내에서 폭력이 정당화되면,
그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정당화되고 용납 가능한 것으로 인식돼
‘동조 효과’를 불러올 위험이 크다.

나치에 희생된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 학살도
처음엔 소수의 폭력과 살인으로부터 시작됐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반공주의’라는 매카시즘이 잘 통한다. ‘간첩’ ‘종북좌파’ ‘빨갱이’ 딱지를 누구에게든 갖다 붙여 고문하고 감금하고, 심지어 처단하던 시대가 저물어가는 21세기, 파시즘 세력이 눈을 돌린 다음 공공의 적은 중국이다. 그리고 북한과 내통한다며 수십 년을 괴롭혔던 민주 진보 세력은 이제 중국과 부정선거를 공모하는 간첩이 되었다. 여기에 윤석열 탄핵 찬성 집회를 가득 메운 여성과 민주노총,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문화예술인 등 모두는 그들의 혐오 리스트에 올라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파시즘 세력의 혐오와 억지는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를 능가하는 주술과 광신에 가깝다. 15년 전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곳을 찾지 못했던 이들이 온라인에서 이름과 얼굴을 감추고 타블로의 스탠퍼드 학력이 가짜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MBC가 타블로와 함께 스탠퍼드 대학으로 가 그와 함께 생활했던 교수와 친구들을 취재했는데도 ‘타진요’는 진실이 아니라 우겼다. ‘타진요’에는 무려 30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 혐오와 억지로 타블로의 친형은 직장을 잃었고, 어머니는 미용실을 그만두었고, 아버지는 간암이 재발해 끝내 세상을 떠났다.




결국 법원까지 간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모든 증거와 증인을 토대로 당연히 타블로의 학력을 인정하고 ‘타진요’의 유죄를 판결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끝까지 타블로가 학력을 속인 거라 우기며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결국 대법원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타진요’의 뻔뻔하게 우기는 태도를 보고 ‘정말 뭔가 있는 게 아닐까?’ 하며 타블로의 학력 위조를 의심하게 된 한국인이 30%까지 늘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건 15년이 지난 지금도 ‘타진요’는 여전히 활동 중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애초에 젠더 갈등과 혐오 속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에서 성별과 세대로 갈라 치기를 제일 잘하는 이준석이 당대표로 있던 당시 윤석열 캠프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고, 마치 여성의 인권 신장이 남성의 권리를 빼앗는 제로섬 게임으로 몰아갔다. 여성과 남성이 싸울수록 ‘이대남’의 표가 쏠쏠했던 이준석의 비열한 수법이 마치 유능한 정치인의 선거 전략으로 둔갑했다. 그래 봐야 결국 윤석열은 북한과의 전쟁을 유도해 청년 남성을 총알받이로 쓰려했고, 이태원 참사와 채 해병 순직 사건을 통해서도 2030 남성, 아니 2030 청년, 아니 국민 모두에 관심이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 윤석열에게 2030 남성은 그저 대통령 당선을 위한 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파시즘은 민족주의를 부활시킨다


이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 사막의 억만장자가 무슨 차를 타고 무슨 음식을 먹고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전 세계 누구와도 대화하고 소통 가능한 글로벌리즘과 다문화 시대에 대한 반발로 파시즘은 자국 중심의 민족주의를 강화한다.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는 반이민 정서가 강해지면서 극우 정당의 영향력이 심상치 않게 커지고 있다. 윤석열과 파시즘 세력은 반중 정서를 부추기고, 탈북민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확대해 안 그래도 소멸해 가는 나라의 미래 따윈 안중에도 없이 ‘나와 다른 사람은 모두 함부로 대하고, 쫓아내고, 없애도 좋다’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냉전 시대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유효하며,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부추긴다. 반중 정서를 이용해 중국인 노동자, 화교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는데 이 반중 정서의 근원을 따라가면 결국 일본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전부터 중국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한국이 필요했던 일본은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우월하고, 한국인은 중국인보다 우월하다는 레토릭을 오랜 시간 견고하게 만들어 한국인에게 세뇌했다. 나라를 빼앗은 일본에 대한 혐오 대신 중국을 혐오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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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때 당시 멕시코에 발이 묶인 나는 미국, 호주, 영국, 유럽 전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동양인이라면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묻지 마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현실 공포를 겪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럼프가 수많은 여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TV나 X(구 트위터)에 ‘차이니즈 바이러스’라고 말할 때마다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안전은 점점 더 위협받고 있었다.


당시 “나는 중국인이 아니에요(I’m not Chinese)”라고 쓰인 티셔츠가 외국에 사는 동양인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렸지만, 나는 인종차별 피해자로서 또 다른 인종차별에 가담하고 싶지 않아 입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대한민국에 관광을 온 대만, 싱가포르 사람들이 극우 세력에게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집단 린치를 당할 위험이 커져, “나는 중국인이 아니에요. 대만인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스티커를 가슴팍과 캐리어에 붙이고 다닌다.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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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다고, 싸다고, 중국 테무, 알리로 쇼핑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람 수많은 집단에만 들어가면 목도리도마뱀처럼 몸집을 키워 “중국 XX 놈들 때려잡아라” 외치며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키고, 공무수행 중인 경찰에 “한국말 해봐. 못하지? 이거 공안이네!” 하며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을 세워 놓고 “이재명 XXX” 하면 지나가게 해 준다는 비겁하고 비열한 폭도들, 부끄러운 줄 알라. 당신은 ‘친일 경찰 노덕술’, 딱 그만큼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위기, 심지어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도 파시즘 세력은 이를 자신들의 담론에 맞게 재구성하여 대중의 분노와 공포를 이용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소문으로 시작된
간토 지진 조선인 대학살의 피해자가 바로 우리였다.

일제강점기, 그 끔찍한 일본의 민족주의와 파시즘에 희생된 피해자였던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해방 후 지난 80년 동안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





파시즘은 정치에 사이비 종교를 결합한다


파시즘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종교에 정치를 결합해 그 영향력을 확대한다. 유럽에서는 난민 반대 운동을 펼치는 종교 집단과 극우 정당이 연대하고, 한국에서는 극우 기독교 단체와 보수 정치 세력이 결합한다.


트럼프 역시 극우 민병대 및 백인우월주의 단체들과 묵시적으로 결탁하며 미국 사회를 더욱 양극화시켰다. 윤석열의 경우에도 극우 유튜브 채널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관리해 왔고, 이들을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데 이용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파시즘이 사용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한국의 극우 정치 세력은 보수 개신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세월호 참사, 버닝썬, 글로벌 팬데믹 등 크고 작은 사건을 비롯해 심지어 대한민국 대선부터 지역 선거까지 사이비 종교 세력의 영향력이 드리워졌지만, 늘 경찰과 검찰은 한발 물러섰다.



사이비 종교와 결합한 정치 세력은 반공사상을 기반으로
전통적 가치관, 즉 반동성애, 반페미니즘을 더해 혐오 정서를 강화한다.
일부 종교 단체는 한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극우 정치인들의 공천과 선거에도 깊숙하게 개입한다.


내란우두머리 윤석열과 변호인들은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보수 기독교 단체와 여러 사이비 종교 집단과 함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없이 맹목적 믿음을 강요하며 대중을 선동하고, 거짓 정보를 흩뿌리며 폭력을 정당화한다.


종교적 정당성이라는 추가적 무게가 실린 종교 지도자의 발언과 잘못된 정보는 공포와 분노를 조장하고, 극단적 행동을 부추긴다. 종교와 폭력의 결합은 세상을 끔찍하게 만든다. 십자군 전쟁도, 이슬람 무장 단체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학살도 모두 신을 내세워 정당화된 끔찍한 살인이었다.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없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종교적인 믿음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린 파시즘 세력은 똑같은 방식으로 끝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에 저항할 것을 신도들에게 촉구했다. 이미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믿기로 결정한 신도들은 ‘신을 위한 성전’이라며 서울서부집원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불을 지르고, 특정 판사를 찾아다녔다.






파시즘은 언론을 통제한다


파시즘 정권은 언론을 장악하거나 무력화함으로써 여론을 통제하고 조작한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중 ‘가짜 뉴스’라는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CNN, 뉴욕타임스 등 비판적인 언론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했다.


윤석열 정부 또한 KBS, MBC 등의 공영방송을 견제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뉴라이트 극우 인사로 채워 자신에 적대적이거나 비판적인 언론과 기자들에게 고소·고발을 남용했다. 윤석열 정권 동안 수많은 언론사와 기자들이 압수수색을 당했고, ‘바이든 날리면’으로 미운털이 박힌 MBC는 대통령 순방 때 전용기 탑승에 배제됐다. 기어코 YTN을 민영화해 윤석열 정권의 노골적인 나팔수로 만들었고, 공영방송 KBS를 회복 불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318328_447973_1136.jpg 대통령이 만든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만찬에 초대된 친정부 언론 기자들.
김건희와 셀카를 찍으며 좋아하는 언론사 기자들.



수많은 언론사가 윤석열의 무릎에 앉아 사랑받는 ‘랩 독’의 길을 택했고, 그가 해주는 김치찌개에 계란말이를 먹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었다.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합리적인 처우와 핍박을 받는 기자와 언론사를 위해 함께 연대하고 저항하는 기자 직업윤리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허구이자 환상이 되었다.



비열한 양비론에 잠식된 언론


한국엔 제대로 된 정론지가 없다 보니 언론 지형의 중심을 잡아줄 매체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론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진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는 언론의 수준과 독립성이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다수 언론은 정부의 선전 도구로 전락하거나 극단적인 대립 구도를 조장하며 ‘클릭 장사’를 한다. 또한, 객관적 사실 보도가 아닌 정파적 논리를 앞세우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으며, 특히 극우 세력의 주장과 음모론을 증폭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결국 시민들은 올바른 정보를 얻지 못하고, 언론을 신뢰하지 못한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언론들은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극우 세력의 담론을 양비론이라는 탈을 씌워 확산시킨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일련의 정치·사회적 현상들을 마치 ‘보수 vs 진보’의 상식적인 대결인 듯 똑같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 보도하며 그것이 마치 균형 잡힌 중립성을 갖춘 것처럼 거드름을 떠는 언론이 많다. 이들은 양비론을 끌어들여 물타기 하려는 세력의 공공연한 스피커가 되기도 한다.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고 헌법 수호 세력을 비난하는 <조선일보>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며 헌법을 수호하려는 민주 시민을 비난하고, 윤석열의 내란죄 수사에 흠집을 내며 재판관들을 사상 검증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현재 극우 세력의 광고로 지면이 넘쳐난다.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1972년 10월, 박정희가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조국의 앞날의 걸어가는 길을 내다볼 때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로서 이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사설을 낸 신문 아닌가?

1980년 전두환이 광주를 탱크로 짓밟았을 때는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며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라고 평가한 신문 아닌가?



그들은 파시즘의 DNA가 깊이 박힌 언론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다시 한번 나라를 팔아넘길 준비가 되어 있다. 기자 정신, 보도 윤리, 개인의 양심 따윈 없다.


언론사 뉴스의 양비론은 배우 정우성이 결혼하지 않되 아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다는 뉴스 같은 것에나 적용하는 것이다. 사회 대다수 구성원이 합의한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시키려 했던 세력에게 마이크를 내주고, ‘그들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그 주장은 마치 성폭력 피해자가 “행실을 잘 못해서”, 강도를 당하고 살해될 뻔한 피해자에게 “ 밤에 혼자 길거리를 걸어 다녀서”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12.3 내란 사태를 둘러싼 파시즘 세력의 주장은
반민주주의, 반헌법적이라는 걸
우리 시대의 바른 언론이라면 역사에 똑똑이 기록해야 한다.




파시즘은 가짜 뉴스를 퍼 나른다


21세기 파시즘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이용해
교묘하고 정교하게 정보를 왜곡해 퍼뜨린다.
온라인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의 역할을 간파하고,
사용자의 편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극우적인 메시지가 담긴 콘텐츠를 빠른 속도로 확산한다.
이러한 음모론과 허위 정보가 극우 정치세력의 선전 도구로 활용되며,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기까지 한다.


SNS를 통한 정치적 동원이 쉬워지면서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기존 미디어보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극우 인플루언서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누구보다 가까운 젊은 세대는 이에 따라 더욱더 극우화되어 온오프라인 상의 누구든 조롱하고 혐오하고 괴롭히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다.



ⓒ 동아일보








내란에 동조하고, 내란우두머리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집권여당 국민의힘은 2020년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꿀 때부터 논란이 있었다. 바로 ‘국민의힘’이라는 표현이 일본 극우파의 총본산인 ‘일본회의’의 오랜 구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친일·수구 기득권 세력의 집약체인 국민의힘은 12.3 내란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결의에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며, 극우 사이비 기독교 종교와 결탁해 거짓 뉴스를 퍼뜨리고, 법원이 합법적으로 발부한 체포 및 구속 영장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국회에 ‘백골단’까지 끌어들이며 지지자들을 선동해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일으켰다.




국민의힘은 내란우두머리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여당으로
내란 발발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 누구도 국민 앞에 나서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고,
책임을 통감하고 내란 수습에 협조하기는커녕 사사건건 훼방만 놓고 있다.

그들은 진정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 스스로 왕정제의 귀족이라 여기고, 국민을 개돼지로 보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두머리 윤석열 역시
이 사달을 내놓고도
단 한 번도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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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반헌법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련의 행동으로 극우 정당임을 자인하고 있다. 내란 사태에서 보수의 괴멸을 직감한 그들은 지금, 단지 살아남기 위해 극우 세력과 결탁하고 있을 뿐, 윤석열이 파면되고 조기 대선이 시작되면 그들과 재빨리 손절할 거라 말하지만, 이미 국민의힘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극우 세력에 잠식당했다.




역사는 느리고 더디지만, 결국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역사는 그들이 대한민국 민주사회에 저지른 만행을 명명백백 기록하고,
그들을 파시스트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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