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이코패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죠. 우리는 때때로 고통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잡다단한 감정의 세계 속에서 행복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죠.
우리는 종종 행복한 삶이란 ‘늘 행복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삶의 지혜는 때로 역설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기꺼이 끌어안을 줄 아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한 연구는 ‘행복학’이라는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죠.
행복학을 연구하는 탈 벤-샤하르 교수의 저서 <일생에 한 번은 행복을 공부하라>의 메시지를 살펴보며, 상처 입은 영혼이 어떻게 더 깊은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 그 ‘행복’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게요.
나심 탈레브가 소개한 ‘안티프래질리티(Antifragility)’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회복탄력성 2.0’이라고 할 수 있죠. 기존의 회복탄력성이 어떤 시스템에 압력을 가했다가 그 압력이 사라지면 시스템이 원래 형태로 돌아가는 스프링 같은 복원력을 의미한다면, ‘안티프래질리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어떤 시스템에 압력을 가했을 때, 그 시스템이 실제로 더 크고 강하게 성장하는 것, 마치 폭풍우를 견뎌낸 나무가 더 깊이 뿌리내리고 더 많은 가지를 뻗어 마침내 울창한 그늘을 드리우듯, 시련은 우리를 부서뜨리거나 혹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로 빚어냅니다.
우리 주변과 우리 안에서 수많은 ‘안티프래질 시스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근육 시스템이 그렇죠. 헬스장에 가서 역기를 들면 근육 섬유에 미세한 상처와 함께 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어떨까요? 우리 근육은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강하게 재건됩니다. 우리의 몸은 본능적으로 ‘안티프래질 시스템’의 지혜를 따르는 것입니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이것이 무엇이라고 불리는지 아시나요? 바로 PTG,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스트레스라는 망치에 맞아 산산조각 나는 유리와 같다면, ‘외상 후 성장’은 스트레스와 압력이라는 불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강철과 같습니다.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디딤돌 삼아 더 높이, 더 넓게 성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안티프래질리티’의 심리적 발현입니다.
‘행복학’의 역할은 우리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조건들을 마련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을 추구하는 데에는 한 가지 역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행복이 그 자체로든, 혹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든 좋은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과도하게 행복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덜 행복해지는 경향도 알고 있죠. 심지어 우울증을 경험할 가능성도 더 높다고 합니다. 행복은 마치 손 안의 나비와 같아서, 꽉 움켜쥐려 할수록 날개가 상하고 달아나 버리지만, 가만히 손을 펼치고 기다리면 어느새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앉기도 합니다.
행복은 분명 좋은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행복을 직접 겨냥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행복을 가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역설을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행복을 ‘간접적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햇빛을 생각해 보세요. 만약 우리가 태양을 직접 바라본다면 눈이 상할 겁니다. 하지만 햇빛을 그 구성 요소들, 즉 무지개의 여러 색깔들로 나누어 본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우리는 간접적으로 햇빛을 바라보며 그것을 즐기고 음미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행복을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득 보다 실이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그 구성 요소들로 나누어 간접적으로 추구한다면, 우리 전반적인 행복 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에 있어서 이 무지개의 은유적인 색깔들은 무엇일까요? 탈 벤-샤하르 교수는 ‘SPIRE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 모델은 우리 안의 ‘안티프래질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는 다섯 가지 핵심 요소입니다. ‘SPIRE’는 영적(Spiritual), 신체적(Physical), 지적(Intellectual), 관계적(Relational),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서적(Emotional) 안녕을 의미하는 약자입니다.
첫째, 영적 안녕은 삶과 일, 그리고 가정에서 의미와 목적의식을 찾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 작은 풀꽃에 눈 맞추는 기쁨을 느껴야지’ 혹은 ‘막막한 문제에 막힌 동료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야지’와 같은, 거창하지 않더라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소박한 목적의식이 있다면, 우리는 일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내면의 힘을 얻게 됩니다.
둘째, 신체적 안녕과 관련해서는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스트레스를 살펴봐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절반 이상의 직장인이 자신의 휴가를 전부 사용하지 않으며, 설령 휴가를 사용한다 해도 그중 거의 절반은 여전히 업무에 얽매여 있습니다. 문제는 스트레스 그 자체가 아니라, ‘회복의 부족’입니다. 짧은 산책으로 맨발로 흙의 감촉을 느끼거나, 좋아하는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겨 긴장을 흘려보내거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녹여내는 의식적인 쉼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우리 몸의 회복 스위치를 켜는 일입니다.
셋째, 지적 안녕입니다. 호기심이 많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더 행복할 뿐만 아니라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탐험하거나, 예술 작품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거나, 혹은 저녁노을의 미묘한 색 변화를 관찰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몰입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생기와 활력으로 빛납니다. 이러한 지적 희열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죠.
넷째, 관계적 안녕은 매우 중요합니다. 행복의 가장 중요한 예측 변수는 우리가 아끼고 또 우리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질 좋은 시간’입니다. 이때 ‘질 좋은 시간’이란 단순히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을 넘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온전히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판단 없이 마음을 나누며,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울어주는 진정한 연결의 순간들입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통해 성장하는 ‘안티프래질리티’, 즉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할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조건 역시 바로 우리 관계의 질입니다. 따뜻한 지지와 공감은 어떤 시련도 견뎌낼 용기를 줍니다.
마지막으로, 정서적 안녕입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즐거운 감정들은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을까요? 그중에서도 특히 ‘감사’라는 감정이 중요합니다. 키케로는 “감사는 모든 미덕의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감사는 우리 삶의 사소한 축복들을 발견하는 눈을 뜨게 합니다. 아침 창가에 스며드는 햇살 한 줌, 건네받은 따뜻한 커피 한 잔, 친구의 진심 어린 격려 한마디에 감사할 때, 우리는 더 많은 좋은 것들을 삶으로 끌어당기게 되며, 어려운 감정들마저 너그러이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처럼 행복은 단순한 즐거움을 훨씬 넘어선 ‘온전한 존재’의 상태입니다. 이 다섯 가지 요소, 즉 ‘SPIRE’가 함께 모여 저 햇빛과 같은 다채로운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어느 특정 지점 이전에는 불행하고, 그 이후에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행복은 연속선상에 있으며, 평생에 걸친 여정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해 현실적인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삶은 때로 예측 불가능한 폭풍우를 몰고 오지만, 중요한 것은 그 폭풍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내면의 나침반을 다시 설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더욱 단단해진 땅과 맑게 갠 하늘을 발견하는 기쁨을 아는 것입니다. 상처는 어쩌면, 우리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겪어야 할 성장통이자, 더 깊은 행복을 이해하기 위한 삶의 지혜로운 초대장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일이 반드시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최선을 만들어 내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