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심우정의 비화폰이 터진 날, 김건희가 입원했다

내란은 현재 진행 중.

by 조하나




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한다. 보리밥을 먹고, 개 산책을 하고, 부정선거 영화를 보고, 대선 후보 유세에 편지를 대독 시키며, 투표를 하고, 피부관리를 받으러 다닌다.


여전히 국민에게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내란수괴는 재판에 출두하는 길,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백 명 남짓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잘 보여줄 수 없다고, 질문하는 기자에게 비키라고 윽박지른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 한 버스 기사는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회사 측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2025년 6월 16일, 이상한 하루였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비화폰을 갖고 있었고, 그 비화폰으로 대통령실 민정수석 김주현과 통화 후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무혐의로 결정되었다는 단독 보도가 세상에 나왔다.


검찰총장에게 공식 전화기 말고, 비화폰이 있다고 한다. 공개된 시스템 바깥에서, 기록되지 않는 대화가 오갔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전화기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모두가 규칙을 지킬 거라는 믿음, 중요한 일은 투명하게 처리될 거라는 약속. 심우정 검찰총장의 비화폰은 그 모든 것을 비웃는다. 중요한 결정은 저 너머, 들리지 않는 통화 속 밀실과 비선의 개입으로 이뤄진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사회를 지탱하는 건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뢰다. 파면당한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의 물리적 시스템뿐 아니라 그 보이지 않는 신뢰마저 산산이 무너뜨렸다.







같은 날 오후, 김건희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는 속보가 타전됐다. 병명은 우울증이란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고강도의 수사를 앞둔 범죄 혐의자들 중 권력자와 재벌 회장은 늘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아픈 사람’ 앞에서는 날 선 질문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어느새 보호받아야 할 약자가 된다.


윤석열이 '통일 대통령' 김건희를 만들겠다는 '힐건희(힐러리-김건희) 프로젝트'를 위해 벌인 12.3 내란으로 지난 수개월간 불면증과 스트레스, 불안 장애, 우울증에 시달려온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디서 어떻게 치료받고 보상받아야 하나.


윤석열 정부가 초래한 의료대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울증으로, 그것도 3차 병원에 당일 입원이 즉시 가능한지, 나는 몰랐다. 뇌졸중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떤 환자는 오늘도 입원할 병상을 찾지 못하고 사투를 벌인다. 김건희는 여전히 민간인,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같은 날, 내란주요 종사자 혐의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 온 전 국방부장관 김용현과 내란 세력 피의자들이 곧 구속 기한 만료로 하나둘 풀려날 거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앞으로 내란수괴 윤석열과 내란주요 종사자 김용현이 함께 맛집 탐방을 다니는 모습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내란’은 나라의 근간을 뒤엎으려 했다는, 사전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 중 하나다. 하지만 추가 기소를 하지 않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은 그 단어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한 나라의 공직으로 누리는 특권과 혜택만 있을 뿐 책임은 없다.


내란은 국회로 날아든 헬리콥터 소리와 군홧발 소리로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 수뇌부의 책상 서랍 속에서 조용히 울리는 두 번째 전화기에서, ‘아픈 사람’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 비선 실세 권력자의 병실에서, ‘국민의 칼’이라는 가면을 쓴 검찰과 법복을 입은 재판관의 무책임한 침묵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별거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 사회의 신뢰라는 공기가 조금 더 희박해졌고, 상식이라는 땅이 살짝 흔들렸을 뿐이다. 하지만 공기가 부족하면 숨쉬기 어렵고, 땅이 흔들리면 제대로 서 있기 힘들다. 12.3 내란 그날 이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 그걸 우리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모든 게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그림으로 포개진다. 대한민국의 내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