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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민 Feb 09. 2024

본격, 부캐 만들기 프로젝트


최종 면접 합격 발표 문자를 기다리는 취준생 마냥 커뮤니티 매니저로부터 온 메시지를 오픈하기 직전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를테면 '죄송하지만 저희는 청. 춘. 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 귀하는 입구 컷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망상을 하며 들뜨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오픈했다.


생각보다 심플한 메시지였다. 짤막한 자기소개와 더불어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며 간단한 인터뷰를 통해 들어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냐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창작물에 대한 그 어떠한 포트폴리오도 없는 회사원인지라 뭔가 그럴싸하게 말이라도 잘해야겠다 싶어 나름 자기 어필 가능한 부분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한 뒤 커뮤니티 매니저와의 미팅을 준비했다.






최장년생이지만 98년생입니다만  


SNS 프로필 사진 속의 커뮤니티 매니저 TY는 매우 개성적인 패션을 한 인물이었기에 군중 속에서 그를 알아보기는 매우 쉬웠다. 베레모에 동그란 은테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른 필름 카메라를 목에 건 사람을 찾으면 되는 터였다.   


첫 만남의 어색한 기류 속, 일본에서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통과의례로 거치게 되는 왜 일본에 오게 되었냐부터 시작해서 커뮤니티에 들어오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본인만의 특기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내 머릿속의 물음은 오직 단 하나 - 그래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뭐야였기에 지체 없이 물었다.


나: 저기.. 근데 제가 30대인데 저도 들어갈 수 있나요?

TY: 그럼요, 저희도 지금 사회인 멤버를 늘리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나: 실례일 수도 있지만 혹시 다른 멤버들은 연령대가 어떻게 되나요?

TY: 음..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은데 저는 98년생이고, 다른 멤버들은 대부분 저보다 4-5살 어려요!


티는 안 냈지만 나랑 띠 동갑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뭔가 아찔해졌다. 설마 그냥 놀자판인 커뮤티니는 아니겠지라는 걱정과 더불어 진정성에 약간의 의심이 들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애써 숨기며 나는 TY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TY: 아니 근데 대체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사실 저희는 지인 소개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 아 그래요? 제 주변은 이런 일들과는 거리가 멀어서.. 정말 원한다면 제가 그 세계로 가야 할 것 같아서 움직이다 보니..!


알고 보니 해당 커뮤니티는 삿포로에서 친구들끼리 시작하여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키워나간 모임이었다. 그리고 커뮤니티 매니저인 TY가 도쿄로 취업을 하게 되며 함께 상경한 몇몇 지인들과 더불어 이제 막 도쿄 활동을 넓혀나가려고 하던 타이밍에 생뚱맞게 웬 한국인 여자가 지원 신청을 한 것이다.  


TY의 입장에서 보면 이 당돌한 외국인은 도대체 어디서 우리를 알아내서 갑자기 들어오겠다고 하는 건지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


나의 걱정과는 달리 이곳은 대학생 사진작가, 간호사를 병행하는 모델 지망생, 댄서 지망생, 준프로 모델, 카피 라이터, 플로리스트, 공간 디자이너와 같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20대 청춘들이 모여 서로의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가는 곳이었다.


완전한 아마추어와 프로 그 어딘가의 경계선에 있는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


그 점이 나는 오히려 좋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완성해 나갈 수 있다니! 내 인생에 밥벌이로 하는 일 이외에 무언가 재밌는 프로젝트가 생긴 것만 같아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에 흥분되었다.


TY: 들어오시게 되면 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나: 음.. 사진작가에도 도전해보고 싶긴 한데 일단 제가 마케팅 경력이 길다 보니 전시회를 기획하는 일부터 하고 싶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시작하고 싶거든요.

TY: 안 그래도 첫 전시회 열자는 말이 나오고 있었는데 너무 좋은 타이밍이네요!


그렇다. 용기 내어 새로운 세계로 한 발자국 다가선 덕분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회사원인 내가 인생에서 전시회를 여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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