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암선고받기 전 징후

—- 2018년 암선고받기 30일 전

by 하나비

어느새 소주 한 병 더 주문을 했다.

오늘만은 기필코 반주로 한 병만 먹고 헤어지자 약속하고 가게를 들어간 우리였지만, 오늘도 여김 없이 한 병에 7잔이라는 홀수의 법칙으로 한 명이 빈 잔이 되자 누가 먼 저랄 거 없이 추가 주문을 했다. 그녀와 나의 대화는 사실 대화라고 말하기 애매했다. 어쩌면 저리도 말을 잘 들어주고 집중하려 해 주는지 대부분의 말은 내가 하고 그녀는 지루할 수도 마음 한편 무겁게만 하는 말을 늘어놓아 듣기 힘들 법도 한데 언제나처럼 올곧은 눈빛으로 마주해 주었다. 그렇게 그러한 일상이 여느 날처럼 계속될 줄 알았다. 몸은 계속 신호를 보냈었다는 걸 처참한 검사결과를 듣고 나서야 알아채기 전까지는.


아무리 술을 먹어도 하얀 피부가 빨개지는 일은 거의 없던 나였다. 그런데 유독 요즘 조금만 먹어도 온몸 구석 붉은 반점처럼 올라와 보기 흉 할 정도로 얼룩덜룩한 일이 자주 생겼다. 어떤 날은 온몸 간지럽고 아파서 응급실까지 가보았더니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병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다 든 생각이 혈액검사결과지를 받지 않은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본래 헌혈을 하면 영화티켓을 준다는 것을 시작으로 쭉 헌혈을 해왔었다. 그러다 2016년쯤 헌혈에 대한 안 좋은 기사글을 보고 하지 않았었다. 헌혈을 하게 되면 기본적인 혈액검사지를 우편으로 보내주곤 해서 가끔 술 때문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정상범위라는 결과지로 안심을 받곤 했었다.


결국 그녀와 나는 3병을 마셨다. 그녀에게 아무래도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검사했는 데 정상이라고 나오는 게 더 이상할 것 같다’는 말도 함께. 그래봤자 간이 조금 아프다 이겠거니 생각하면서..


그녀와 헤어진 후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허탈한 것 같기도 하고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집이 가까워질수록 생기 없는 이 암울한 동네가 마치 내 인생도 고작 이것뿐이라는 걸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부산역 앞에서 살 때보다 더 많은 보증금을 주었지만 방의 크기는 그것보다 더 작고 오래되었다. 술을 한잔 하였음에도 잠을 쉬이 잘 수 없었다. 나의 자취방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바로 앞이면서 비상계단 또한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구조라 사람들이 오고 가고 가 잦은 위치에 있어서인지 본인 집인 줄 착각하고 도어록 비번을 자연스럽게 누르기도 하고 두들기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집에 수리를 해야 하니 집 비밀번호를 당연하듯 물어보는 공인중개사 때문인지 연고하나 없이 부산에서 산지 어느덧 6년이 되었음에도 점점 당차게 살아지는 것이 아닌 점점 두려움에 약해졌다. 그럴 때면 부러 더 술을 먹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3병을 나눠먹어 적었던 게 문제였는 지 정신이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것 같다.


모니터 바탕화면 아래의 작업표시줄에 새로 온 쪽지가 왔다는 창이 떴다.


국가건강검진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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