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사랑받는다는 것
최근 친구의 추천으로 섹스 앤 더 시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우리 나이랑 비슷하니까 공감을 더 많이 하게 되더라고.”
친구의 말처럼 등장인물과 내 나이가 비슷하니 고민도 비슷했고 공통된 관심사가 많았다.
2000년대 감성 Y2K가 유행이라 그런지
예전에는 촌스럽다고 느꼈던 옷차림도 세련되어 보였다.
무엇보다 30대가 되어서 드라마를 보니
여주와 남자의 관계가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극 중 여자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와 남자주인공 미스터 빅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형적인 불안형 애착과 회피형 애착의 만남이다.
캐리는 결혼과 관계의 확신을 원했지만
미스터 빅은 이혼 경험 이후
사랑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늘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 발 물러섰다.
캐리는 집착하고 빅은 도망치는 관계가 반복되었다.
그 둘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일을 반복했다.
캐리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깊은 관계를 원하는데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가장 단순한 해결책이다.
그런데 캐리는 안정적인 관계에서는
권태로움을 느끼며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감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전형적인 불안형이었다.
학생 시절 친구에게 집착에 가까운 애착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좀 더 가까워지고 싶고 자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늘 한 발짝거리를 두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회피형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는 나랑 가까워지고 싶지 않을 수 있구나.
그리고 그 관계가 끊어질 수 있구나.’
소설을 쓰다 보니
불안형, 회피형으로 캐릭터로 설정하게 되면
그 패턴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불안형이 어느 날 갑자기 안정형이 되면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는다.
그래서인지
불안형과 회피형의 이야기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그만큼 오래 마음에 남는다.
20대 초 나는 사랑을 잘 믿지 못했다.
나는 나조차 나를 싫어했기 때문에
이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서 알고 나면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게 내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아무 이유 없이
남자친구가 떠날까 봐 두려웠다.
”어째서 네가 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잘난 데 하나 없어.”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이었다.
”나는 네가 뭐를 잘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야.
네가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너를 사랑해.”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바로 믿지 못했다.
그래도 그 품에 안겨 있는 동안만큼은
숨이 쉬어졌다.
그는 내가 불안해할 때마다
나를 안심시켜 줬고
꾸준한 사랑을 보여줬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구나.’
내가 알고 있던 사랑에는
항상 조건이 붙어 있었다.
잘해야 했고
실망시키면 안 됐고
버려지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그에게 처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