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에 살며 새로 그은 경계선
결혼식을 세 달 앞두고
우리는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같이 살기 시작했다.
이전에 살던 집을 떠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연애는 오래 했지만
함께 사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주 싸우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간섭하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유년기에는
누가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늘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내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 입장에서 꽤 답답했을 것이다.
엄마는 가끔 말한다.
”너는 잔소리가 없어서 신기해.”
사촌언니가 이모집에 다녀간 뒤
집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허락도 없이 물건을 버렸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엄마는 왜 나와는 그런 문제가 왜 없었는지
생각해보셨다고 했다.
나는 정리를 좋아한다.
불필요한 물건을 자주 버리지만
한 번도 다른 가족의
물건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네가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것 만큼
다른 사람에게 간섭하지 않지 않는 것 같아.”
나도 엄마의 말에 동의했다.
나에게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일에 크게 관여 하지 않는다는 것.
더 나은 방법을 권할 수는 있어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한 집에 같이 살면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일이 자주 생겼다.
나는 어느새 내가 가장 싫어하던
잔소리꾼이 되어있었다.
연애할 때 싸우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연애 초반에는 종종 다투기도 했다.
오래 사귀게 되면서
서로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 만큼 싸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함께 살게 되자
생활 습관이 부딪혔고
경제 공동체가 되면서
소비 습관도 부딪히게 되었다.
연애할 때는
우리 둘만 신경쓰면 됐지만
결혼을 하니 가족까지 신경써야 했다.
더 이상 둘 만의 관계가 아니게 되었다.
나는 자취를 오래해서
집안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한 명 늘었지만
집이 넓어지고
식사를 직접 챙기기 시작하면서
집안일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나는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자다.
집안일을 꼼꼼히 하는 편이다.
반면 남편은 집안일에 서툴렀고
집안의 물건을 많이 고장냈다.
또 고장 날까 봐
나는 남편을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했다.
남편은 피곤해했다.
”잔소리 좀 그만해.
네 기준이 너무 높아.
마음에 안들면 네가 직접 해.”
남편이 집안일을 잘 못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지나치게 잔소리한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집 식구들은
엄청 깔끔한 편이다.
집이 항상 깨끗해서
갑자기 집에 손님이 오더라도
당황할 일이 없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하는 잔소리는
우리 엄마가 나한테 하던 잔소리와 너무 닮아 있다는 것을.
혼자 자취하면서 살아온 동안
이미 내 생활 기준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아무리 깨끗이 설거지해도
엄마는 불만족스러워 했고
나 역시 기준에 맞추기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기준에 맞추기를 요구 하고 있었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약속했다.
나는 잔소리를 줄이기로 했고
남편은 조금 더 신경쓰기로 했다.
여전히 우리는 때때로
서로에게 간섭하고 부딪힌다.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중간을 찾아 타협하기로 했다.
연애 할 때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선을
결혼 후에 다시 긋고 있다.
각자의 기준을 내려놓고
서로 맞춰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