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메뉴는 '남이 차려 주는 식사'이다.
전업 주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아닐까 싶다. 남이 해주는 밥은 뭐든 맛있어요. 언젠가 초대받은 집에 가서 별생각 없이 말했다가 옆에 있는 언니에게 꾸지람 비슷한 핀잔을 들었다. 무슨 말이 그래, 음식이 맛있다고 해야지. 그 순간 어찌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나도 매번 음식 만드는 사람이면서, 음식 만들어내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을 담지 못하고 나 편한 대로 툭 던져버린 그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작은 성찰의 시간을 갖고 만나는 남이 차려준 감자탕이다. 물론 그것은 너무나 맛있었다. 날씨가 추워졌으니 감자탕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감자탕을 위해 날씨가 적당히 추워진 것 같았다. 신랑이 열흘 간 긴 출장을 떠났다. 사실상 아이 셋 홀로 육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독박 육아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 어감이 지구 한 바퀴를 돌며 일하는 신랑의 수고를 너무도 폄하하는 것 같아서. 내 사정을 뻔히 아는 이웃집 언니는 저녁 식사에 초대해줬다. 귀찮음에 그냥 집에 있겠다고 하였다. 언니는 와서 밥만 먹고 가라고 재차 말했다. 일은 하나도 안 시킬 테니 걱정 말라는 우스갯소리도 보태었다. 언니의 그 마음을 거절하는 내가 너무 모자라 보여 잠시 숙연해졌었다. 그리고 마침내 감자탕을 맞이하였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감자탕은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마른 시래기를 하루 전쯤 물에 담가 놓는 것이다. 다음 순서는 요리하기 몇 시간 전에 돼지 등갈비를 물에 담가 핏물을 제거하는 일이다. 과정을 거친 시래기와 등갈비가 준비되어야 비로소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 핏물 뺀 등갈비를 월계수 잎, 통후추와 함께 데쳐낸다. 그러면 대부분의 잡내가 잡힌다. 등갈비를 데치는 동안 양념을 맛깔스럽게 만들어 놓는다. 양념에는 대부분 된장, 고춧가루, 마늘, 후춧가루, 국간장이나 액젓 등이 들어간다. 데쳐낸 등갈비를 다시 찬물로 구석구석 닦아 불순물이 없게 한다. 다시 냄비에 담아 물을 부어 끓이고 만들어 놓은 양념을 풀어준다. 감자도 넣고 시래기도 넣고 해서 한 시간 이상을 푹 끓여준다. 막바지로 대파와 들깨가루를 많다 싶게 넣어 한 번 더 끓여내면 얼큰하고도 뜨끈한 감자탕을 만날 수 있다.
감자탕 안에 들은 여러 가지 재료들 중에서 으뜸은 시래기이다. 특별히 오늘의 감자탕에는 직접 농사지어 말린 시래기가 들어가 있었다. 귀한 시래기를 젓가락 가득 들어 숟가락에 올려 국물을 적셔 먹으면 그리도 행복할 수 없다. 등갈비 살도 뚝 떼어 시래기를 감아 입안 가득 넣으면 함께 씹히는 맛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밥 한 숟가락, 국물 두 숟가락을 무한 반복한다. 중간중간 숟가락으로 감자를 크게 잘라내어 먹으면 포만감이 찾아온다.
이 식탁을 차려낸 언니의 노고에 감사하고, 차려줘야겠다고 생각한 언니의 마음에게도 감사하다. 나는 참 인복도 많지. 먹는 내내 감사함이 얹어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