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그릇에 담겨있는 게를 바라보았다. 이것을 어찌할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나는 결심을 마치고 게 한 덩어리를 들어 앞에 앉은 당신의 앞접시로 옮겼다.
"왜, 하나 씨. 게 못 먹어?"
"아니요, 게 좋아하죠......."
"척하면 척이죠. 못 먹는 게 아니라 살 발라달라는 말이에요."
주위의 질문에 멋쩍게 눈치만 보던 나 대신 당신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신랑이 먼저 손을 댔길래요, 하는 김에......"
당신은 게의 몸통을 쪼개어 그 안에서 하얗고 부드러운 살을 빼내었다. 그것이 나의 밥그릇 안으로 수북이 들어와 쌓였다. 당신이 이번에는 게 다리를 들고 그 가운데에 가위질을 한다. 양쪽으로 잘 벌어져 그 안의 탱탱하게 들어찬 살들이 보인다. 그것 역시 나의 앞접시 위로 올라온다. 나의 그릇에는 게 살이 쌓여가고, 당신의 그릇에는 껍데기가 쌓여간다. 나와 당신의 국그릇에 담긴 게가 다 사라질 때까지.
결혼하고 아이가 하나 있었을 때였나 보다. 친정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그 날은 상 위로 노릇노릇한 굴비가 올라왔다. 앞에 앉은 친정아빠가 열심히 굴비의 가시를 골라내고 살을 발라내셨다. 이내 그것들은 내 밥그릇 위에 소복이 올라왔다. 옆에 앉은 당신도 열심히 굴비 살을 발라내어 내 수저 위에 올려주었다.
"장인어른이 하나 버릇을 다 버려 놓으셨어요."
당신은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아빠한테 소심하게 툴툴거렸다.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너털웃음으로 흡족해하셨다. 내가 어릴 적부터 시집가기 전까지 아빠는 노상 그러셨다. 상 위에 생선이 올라오면 살만 발라내어 밥 위에 얹어주시곤 하셨다. 가시가 목구멍에라도 걸리면 큰일 난다고. 밖에서든 안에서든 메뉴가 게이면 가위를 들고, 껍질을 자르고, 살만 발라 앞접시에 한가득 올려주시곤 하셨다.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먹으면 고기는 구워본 사람이 구울 줄 안다며 언제나 먼저 집게를 들으셨다. 당신과 연애하던 시절 생선이 나오는 밥집에 가서 식사를 하며 그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먹지는 않고 생선을 바라만 보는 이유에 대해. 살면서 생선 가시를 몇 번 발라본 적 없는 이유에 대해.
그 후로 당신은 항상 내 몫의 그릇에 생선살, 게 살, 고기를 한가득 올려주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그런 호강을 누리며 살았다. 아이들이 생긴 후로 나는 가시 발라내기 선수가 되었다. 굴비는 머리살 맛이 일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갈치는 갈치대로, 굴비는 굴비 나름대로의 가시 발라내는 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게 살을 파내다 보면 생각보다 단단한 껍질에 손이 잘 다칠 수 있다는 것도.
아이가 셋이 되면서는 당신과 내가 열심히 발라내고 파내도 아이들이 먹는 속도를 당해낼 수 없어 종종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이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는 내 입에도, 당신 입에도 들어올 것이 없었다. 그러고 나면 지쳐버려 당신과 나는 더 이상 생선이고 뭐고 입에 대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저 날처럼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을 때면 어리광을 피워 본다. 이제 생선 가시쯤은 눈 감고도 발라낼 수 있으면서. 게를 입에 통째로 넣고 우걱우걱 씹어 살만 삼켜버릴 줄 알면서. 그러면 착한 당신은 군말 없이 정성껏 가시를 발라내고 살을 파내 준다. 내가 아직도 너를 이렇게 아낀다는 약간의 생색을 보태면서. 가끔 민망해지면 "장인어른이 하나 버릇을 다 버려 놓으셨어."를 더해서. 그러면 나는 잠잠하게 손을 바삐 움직여 식사를 한다. 당신이 아직도 나를 이렇게 위해주니 참말로 행복하다는 눈빛을 보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