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첫사랑

by 하나

"발랑 까져가지고 고등학교 때 연애도 했으면서."


한결같은 범생이로 학창 시절을 마무리한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물론, 나만 안 했지 연애하는 고등학생이 지천에 널려있었던 시절이었다. 안다. 그러면서도 저 문장은 무슨 얘기 끝에 항상 등장하는 우리 부부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하, 그 얘기 또 하는 거야? 그게 무슨 연애야. 애들 하는 소꿉 놀이지."


나는 너무 웃긴데 너는 매번 당황한 낯으로 나를 어르고 달래며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한다. 그러면 나 역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매번 같은 대답으로 응수해준다.


"엥? 소꿉놀이? 무슨 소꿉놀이하는 애들이 커플링까지 맞춰꼈냐?"

"아, 진짜. 매번 이럴 거야? 난 기억도 안나."

"큭큭큭. 푸하하하. 당신이 말해준 거거든? 은반지였다며."

"신랑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

"응, 엄청 재미나. 그러니까 인정을 하면 되는데, 왜 인정을 안해?"

"난 하나가 첫사랑이라니까."

"헐....... "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솔직 담백하기로 그만하기 없는 사람인데. 숨겼던 걸 들킨 것도 아니고, 우리 둘이 연애할 때부터 알던 이야기인데. 심지어 그 사람과 내가 오버랩되던 시기도 있었는데. 자기 말처럼 각자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사는데. 왜 꿋꿋이 내가 자기 첫사랑이라는 건지. 물론, 나는 그대가 첫사랑인데. 그걸 너무도 잘 알아서 의리로 그러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들고. 저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방방 뛰는 그대가 귀엽기도 하고. 오늘은 기필코 인정을 하게 하리라. 과감하게 다음 진도를 나가본다.


"분명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그랬을 거면서."

"생각 안나. 너무 오래된 일이라."


어라? 이것 봐라? 이것은 모범 답안에 없던 말인데? 그대가 평소와 다른 대답을 한다. 아마 너는 기억도 못하겠지만 모범 답안은 이렇다. "손 안 잡았어. 뽀뽀도 안 했어. 내가 얼마나 순수하고 순진했다고."


"푸하하하하"


내가 박장대소를 하니 그대가 정말 당황해한다. 나도 살짝 당황스럽다. 정말 의리로 매번 그렇게 말했음을 확인하게 되어서. 그러나 그것을 확인했다 하여 우리 사이에 왜 그랬냐고 따져 물을 일도 아니고, 토라질 일도 아니다.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 네가 쓸데없는 의리를 버리고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무 오래돼서 생각이 안나? 그렇구나. 잘 생각해봐.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그랬을 거야. 그랬는데 그게 어떻게 소꿉장난이니? 연애한 거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기숙사 들어가서 연애질이나 하고 말이야."

"공부했거든?"

"다재다능한데?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아, 진짜!"

"그러니까 인정을 하라고. 왜 연애해 놓고 연애를 안 했다고 자꾸 우겨."

"그래, 하나 말이 다 맞다, 맞아. 그래요. 난 고등학교 때 연애를 했어요. 맞아요. 당신 말이 다 맞아요."


마침내 그대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를 선언한다. 에잇, 인정이 아니고 포기다.


"이제 속이 시원하냐? 듣고 싶은 말 들어서?"

"큭큭큭큭"

"아주 좋아 죽네. 큭큭.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큭"

"당신은 왜 웃냐?"

"나야 하나가 웃으니까. 큭큭큭"


둘 다 배꼽이 빠지게 웃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한참을 웃다 정신을 차리느라 흠, 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여보! 사랑해."

"그래 알아."

"큭큭큭. 진짜로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런데, 진짜 하나가 첫사랑이야."

"큭큭큭. 그래. 내가 당신 첫사랑인걸로 하자. 앞으로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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