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봉~ 우리 오랜만에 염소 커피 한 잔 할까?"
"알았어."
한 3초 정도 되었을까. 그 말이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또. 내가 싫어하는 그 말.
"난 자기 그 알았어라는 말. 좀 그래."
너는 얘가 또 이렇게 말 한마디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다는 표정을 하고는 나를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한 질문과 너의 대답 사이, 그 짧은 여백의 의미를.
"알았어를"
네가 늘 하던 얘기를 또 꺼내려한다. 아마도 너는 '알았어'를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 이외의 어떤 말이 필요하냐고 물을 참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라고 대답하는 거하고 <알았어>라고 대답하는 거가 차이가 있단 말이야. <알았어>는 왠지 좀, 생각해보고는 뭐 내가 딱히 꼭 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를 위해 해 주지. 이런 느낌이란 말이야. '하자'가 아니라 '해주지'인 것 같단 말이야."
'들켰다. 꼭 그런 의도만 있는 것은 아닌데.'
뭐 그런 복잡 미묘한 심정이 너의 얼굴가에 맴돈다. 네가 나와 한두 해 살을 부빈 것도 아닌데, 너는 나를 잘 안다. 그러면서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너를 이해하면서도 서운하다.
"그~래~. 우뤼 오랜만에 염소 커피 마시러 가자~~앙."
네가 입가를 크게 찢고 내게 말한다. 잔주름 자글자글한 눈을 보태서. 피식. 그래. 그런 너여서 나는 또 웃는다. 너는 너의 심리상태나 감정을 그렇게 자세히 관찰하여, 세세히 읽어내고, 구체적으로 잔소리하는 나에게 프로파일러냐고 했다. 그런 너의 얼굴을 부여잡고 눈을 흘기며 구체적인 잔소리가 싫으냐 묻는 나에게 너는 또 과장 섞인 웃음으로 "너~무 좋아."라고 말한다.
'그래'와 '알았어'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너처럼 되묻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다. 나는 아마도 언어가 가지는 감정에 민감한 기질 인가보다. 사실 단어 자체가 문제 될 건 없을 수도 있다. 네가 말하는 패턴에서 풍기는 고정적인 느낌과 속내를 내가 쉽게 간파하는 것뿐일 수도 있겠다. 나는 단지 너의 생색내듯 말하는 '알았어'가 싫은 것일 수 있다. 무조건적인 '그래'가 무조건 좋은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저런 말을 하는 내게 네가 이렇게 되물은 적도 있다.
"난 왜 항상 하나가 하는 말에는 무조건 예스해야 하는 건데. 나는 생각도 해볼 수 없는 거야?"
너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안다.
그러나 가끔 내가 내뱉는 말들이 전하는 나의 가슴 것들도 알아주었음 하는 바람이 있다. 넌 남자에게 너무 과한 것을 바란다고. 남자는 그리 섬세한 동물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진정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또 너에게 청한다. 내 말을 둘러싸고 있는 기운들을 좀 알아채 주면 좋겠다. 무조건 예스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이번만은 이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금처럼 귀한 너의 시간들을 쪼개 나와 함께 커피 한 잔 하자고 권하기 전의 내 주저함과 조심스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만의 외출에 신나 바깥에서 기분 내고 싶었던 간절함. 내 말의 소곤거림을, 네가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네가 나에게로 향하는 말 중에 '그래'가 많아질수록 나는 더 많이 사랑받는 기분이다. 그런 나를 너의 머리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너의 가슴은 기꺼이 나에게 '알았어'대신 '그래'를 건네준다. 이해가 가미된 '그래'를 건네 달라하면 너무 어려울까? 어려운 청에 머리를 긁적이는 네가 있고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내가 있다. 그래서 나는 또 웃는다. 내가 웃으면 네가 웃는다. 그 웃음은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결국 나는 '그래'이든 '알았어'이든 매일 웃을 수 있는 날이길 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부 대화 사전.
<염소 커피 마시러 가자: 동네에 있는 Giddy Goat Coffee Shop에 가서 커피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