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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5. 2019

결핍 덩어리 부모

"엄마, 주하가 물 쏟았어요."

"뭐? 왜, 왜 쏟아. 그러니까 엄마가 가만히 앉아서 마시라고 했지? 응? 왜 맨날 쏟니, 응?"


이제 만 세 살 된 아이가 물을 쏟았을 뿐인데 아이의 머리 위로 감당하기 힘든 기운의 화가 쏟아진다. 째지고 날카로운 소리가 아이를 얼어붙게 한다. 다른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피한다. 여느 날처럼 그렇게 온 집안에 나의 진정되지 않은 화가 떠돌아다닌다. 


불현듯 나의 어린 시절이 교차된다. 나의 어린 시절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었다. 무엇인가 실수를 하고 굳어있는 아이는 나나 동생이었고, 이기지 못할 화를 뿜어내는 것은 나의 엄마였다. 그것이 내 삶에 이리도 큰 영향을 주게 될지는 정말이지 몰랐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엄마의 씩씩거리던 모습은 어느새 나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동생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 시대의 부모들이 다 그러했겠지만 엄마는 연년생 같은 아이를 둘 낳아 키우면서 홀로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친구 좋아하는 아빠는 신혼 때도, 아이가 하나, 둘 태어나고 나서도 밤마실 다니기가 예사였다. 엄마는 타지에서 정 붙일 데 없이 마음이 고달팠을게다. 힘든 몸, 아픈 마음에 얹혀사는 엄마는 해야 할 일들을 자꾸만 만들어 내는 자식들의 실수가 힘들고 부대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상처 받은 것들이 삐뚤어지게 나왔을 것이다. 아이 셋 키우는 지금에서야 그때의 엄마의 심정을 헤아린다. 그러나 슬프게도 엄마의 그런 화는 나와 동생에게 실수와 완벽에 대한 강박을 심어주고, 공감에 대한 결핍을 남겨주고 그러하였다. 나의 부모를 원망하자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아이를 양육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엄마, 바지에 쉬했어요."

"뭐? 나이가 몇 살인데 또 바지에 싸! 그러니까 참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응? 너는"

"하나, 내가 할게. 방에 들어가 있어. 유찬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실수할 수도 있는 거야. 닦으면 돼. 다음부터는 조금 더 빨리 움직이자."


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 지 5년. 그와 함께 있으면 이제 나는 저런 상황에서 발을 빼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일단 한 차례 화를 쏟아내고 그의 권유에 위해 빠지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언제부터인가는 화를 내기 전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여보. 아, 자기가 가야겠어."


그러면 그는 한 번 거절하는 법 없이 아이를 위로했고, 뒤처리를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원인 모르게 치솟아 오르는 내 안의 화를 가라앉히곤 했다. 집 안을 에워싸던 화의 기운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나의 삶은 결핍에 대한 인지의 전, 후로 나눌 수 있다. 그 전과 후를 나누는 기준점은 아이의 탄생이었다. 내 안의 많은 결핍에 대한 인지 후 나의 삶은 카오스 자체였다. 당황스럽고, 슬펐고, 원망스러웠으며 분노했다. 그것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엄청난 자기 위로와 끊임없는 다독거림이 필요했다. 나와 함께 사는 남자는 그런 나의 시간들을 함께 했고, 이해했고, 토닥거려줬다. 당신은 까도 까도 새로운 게 나오는 양파 같은 여자야.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나의 결핍을 채워줬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 자신의 결핍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가 자라면서 갖게 된 결핍들. 그는 대학생이 되던 해 마주한 새로운 세상에서 그의 결핍을 처음 만났다. 그는 자신의 자아와 싸우느라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노라고 오래전 담담하게 말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만나게 되는 자신의 결핍들을 나보다 더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물론 그런 그도 화가 치솟는 순간들이 있고, 주체할 수 없는 짜증에 둘러싸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그런 그의 감정을 알아채고 아이들을 추슬렀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는 자신의 결핍 덩어리들을 만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내 안에 그렇게 많은 결핍들이 있었는지 인지하지 못했었다. 아이를 하나 낳고 나니 내 안에 봉인되어 있던 수많은 결핍들이 내가 여기 있다며, 나를 알아봐 달라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아이 둘을 낳고 나서는 그 결핍들이 아이에게 전이되는 것을 보고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아이를 셋 키우는 지금. 여전히 내 안의 결핍들이 날뛰고 있고, 때때로 나의 결핍들을 아이에게서 발견하곤 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나와 그의 육아 과정에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부부가 아이를 함께 키우는 일은 서로의 결핍을 보듬는 것, 그래서 아이와 부모 모두의 결핍을 최소화하는 일이라는 것. 너와 내가 치유받고 아이들도 덜 상처 받는 심리적 성장의 과정이랄까. 


우리는 그렇게 아이 셋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나와 그는 이제 보태지도 떼내지도 않을 만큼 우리의 결핍에 대해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보듬기 시작했다. 양육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정이다. 그 대장정에 서로 손 잡고 발맞추어 산도 넘고 물도 건널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전우애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느 정도 가공되고 기름칠해둔 결핍을 갖게 된다.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결핍 하나 남겨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아이들을 키우지 않는다. 그저 엄마와 아빠가 함께 우리 모두를 위한 마음을 품으며 그 시간들을 보냈다는 것이 전해지길 바란다. 내 아이들이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어 자신의 결핍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좌절과 분노와 원망을 집어 들기보다 서로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노력하자.'전하던 화해와 애정의 시간들을 꺼내 들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이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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