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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5. 2019

고장 난 입

여보, 당신.

요 며칠. 입이 아주 못되게 굽니다. 아마도 마음 안이 못쓰게 되었나 봅니다. 또 마음 안 어딘가가 곪기 시작한 신호입니다. 그런데 곪은 곳이 어디인지 찾을 생각은 않고, 더 덧나지 않게 반창고라도 붙일 생각은 않고, 나의 입이 또 못되게 굽니다. 


하루 종일 수업에, 미팅에, 도통 입에 붙지 않는 꼬부랑 영어로 고군분투했을 당신에게.

아침잠을 더 자고 싶어 징징대는 큰 아이에게.

마냥, 늘 엄마 품이 그리운 것뿐인 둘째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함에 심통 부리는 막둥이에게.


모나고 큰 소리들이 날카롭게 새어나갑니다.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그것들이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생채기를 내고, 그 생채기는 배가 되어 다시 내게로 돌아옵니다. 내가 밖으로 낸 암으로 뾰족한 것들이 그대로 와 박혀 옴짝 달짝 못하게 합니다. 많이 아픕니다. 다급해졌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에 곪은 것들이 더욱 큰 생채기를 내어 나의 입뿐만 아니라 의식까지 뒤덮으려 할 거예요.


일단, 집 밖으로 나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나를 잘 모르는 타인과 간단한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리고는 그 간 들여다보지 못한 이를 찾아가 안부를 전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맑고 밝은 에너지를 빨아들여 봅니다. 마지막으로 햇빛 따뜻이 내리쬐는 창가에 자리 잡고 주저앉아 등짝을 들이밉니다. 따뜻합니다. 뜨거운 열기가 등을, 머리를, 가슴을 달굽니다. 그렇게 나만의 방법으로 빨간 약을 발라둡니다. 저 아래에서부터 목구멍까지 타고 올라온 어두운 기운이 더는 힘을 쓰지 못하게, 그렇게 고장 난 입을 치료 중입니다.


"참, 조오타."


태양 볕이 온몸을 감싸다 못해 지배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혼잣말을 뱉어봅니다. 행복이 별거더냐. 순간 좋으면 그만이지. 행복하다 느끼는 찰나의 순간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 같던 검은 덩어리들을 아래로, 저기 아래로 밀어 보냅니다.


여보, 당신.

노력하여 행복하다 느끼는 찰나를 만들어야 하는 처지와 나이가 된 것이 서글퍼집니다. 그래도 행복하다 느낄 수 있는 것이 어디더냐. 노력하는 찰나를 만들다 보면 날마다 행복해지겠지. 그런 마음으로 다시 올라오려는 것을 꾹꾹 눌러 밑으로, 밑으로 내려 보냅니다. 


오늘은 빨간 약 발라둔, 점잖은 입으로 당신을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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