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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5. 2019

Sensitive mama 1

엄마에게 요정이 찾아왔었단다.

"지이이이이"


차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너는 한참 동안이나 들어오지 않았다. 네가 미팅을 하고 오느라 저녁 식사가 늦어진 날이었다. 네가 학교에서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을 보고는 시간을 맞춰 된장찌개에 불을 올렸다. 따뜻하게 먹으려고 약불, 중불, 센불 온갖 정성을 들여 불고기를 볶아내고 있었다. 네가 들어와 세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옷을 갈아입고, 씻는 시간까지 감안해 불을 조절하고 식탁 정리를 하고 있었다. 함께 맛있게 먹으려고 꼬르륵 거리는 소리도 참아가며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다.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아이들은 뛰쳐나가 아빠를 외쳐대는데 아빠의 소리가 없다. 그러더니 곧 아이들의 소리도 잠잠해지고 우르르 다시 방으로 몰려들어가 놀이를 시작한다.


"아빠는 뭐 하시느라 안 들어오시니?"


삼 남매가 신나게 노느라 내 소리를 듣지 못한다. 된장찌개와 불고기가 얹어진 불을 제일 작게 줄여 놓고는 차고 안을 들여다본다. 차 안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통화를 하고 있는 너의 모습이 보인다. 순간 목구멍으로 묵직한 것이 치고 올라온다. 된장찌개 불을 획 돌려 끄고는 식탁으로 옮긴다. 불고기가 담겨있던 팬의 불도 확 끄고는 접시에 담아낸다. 그러고는 밥을 한 공기 떠 나 홀로 식탁 앞에 앉았다.


나는 지금 화가 났다.


나 혼자 앉아 우적우적 밥을 쑤셔 넣었다. 된장찌개에서 호박이랑 두부를 건져 밥에 비비고는 열무김치와 불고기를 얹어 입에 넣기를 반복했다. 밥이 반도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네가 들어온다. 밥 한 공기를 떠서는 조용히 내 맞은편에 앉는다. 나도 너도 말이 없다. 식탁 위로 흐르는 정적과 냉랭한 기운이 방 안에서 울려 퍼지는 세 아이의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와 대조적이다. 


"내가 도착해서 바로 안 들어오고 통화하고 있어서 화났어"

"응. 그냥 짜증 났어. 왜 집에 들어오자마자까지 또 일해야 하나. 나는 불을 올렸다 줄였다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출발할 때 톡 했잖아."

"그러니까 시간 맞춰 준비 다 했는데, 배도 고프고."


말을 다 마치지 않고 그만두었다. 그러니까 너는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이 거기에 닿아서였을까.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야 만다.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기세척기 앞에 섰다. 그런데 방에서 놀던 녀석들이 이번에는 거실과 부엌을 빙빙 돌며 자동차를 타고 있었다. 


"얘들아, 엄마 설거지할 거니까 부엌으로는 오지 말고 거실에서 놀아. 다치겠어."


아이들에게서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연신 거실과 부엌을 돌고 도는 자동차가 보일 뿐이다.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듣기는 한 걸까? 


"얘들아, 식기세척기에 걸려 넘어진다고. 위험해. 부엌으로는 오지 말고 거실에서 타라고!"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다. 흥이 나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또다시 부엌으로 큰 아이가 탄 자동차가 들어온다.


"유찬.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말씀하셨지? 거실에 가서 놀아."

"네!"


네가 버럭 호통을 치니 아이가 유쾌하게도 대답을 한다.


"내 말은 듣지를 않아. 아무도 내 말은 듣지를 않아."


식기세척기 안에 그릇을 넣다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다시 눈물이 터져 나온다. 당황스럽게 너무 많이 흐른다. 아이들한테 우는 모습은 보이기 싫다.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는 티슈 한통을 들고 옷방 안으로 들어간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 엉엉 울었다. 소리가 새어나갈까 티슈를 입에 틀어막고는 한참을 울었다. 콧물, 눈물범벅이 된 채로. 식사를 마친 네가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아이들이 방과 거실을 오가며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었다. 잠시 후 네가 나를 찾는 듯 안방과 욕실을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차고 문 열리는 소리도 들린다. 


"얘들아, 엄마 어디에 있어?"

"엄마요? 몰라요. 차고에 있나?"

"엄마 차고에 없던데......"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던 네가 아이들에게 산책을 하러 나가자 제안한다. 아마도 내가 밖에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너와 아이들이 나간 뒤에도 한참을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울고 나니 좀 후련했다. 왜 눈물이 났는지 따위에 대한 자문자답은 없었다. 그냥 울었고, 더 울어야 했고, 들키지 않아야 했고, 그만 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너와 아이들이 어느새 들어와 이번에는 지하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밖으로 나와 부엌을 정리했다. 아이들이 부엌에서 나는 소리를 단번에 알아차리고 뛰어 올라온다. 


"엄마!!"

"엄마, 어디 갔었어?"

"엄마, 보고시퍼쩡. 어디 있었어?"

"엄마는 여기 있었는데, 못 봤어?"

"엄마 여기 없었잖아요. 우리가 막 찾았는데?"

"엄마 여기서 다 보고 있었어. 유찬이랑 주하랑 주원이가 아빠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는 거도 보고, 산책하러 밖에 나가는 것도 보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어디 있었길래 그걸 다 알고 있냐는 너의 눈빛도 따라온다.


"너희 책에서 본 거 기억나지? 쓰면 투명 인간 되는 모자. 엄마 그 투명 모자 쓰고 있었어. 요정이 찾아와서 엄마한테 주고 가더라?"

"에이, 엄마. 그런 거 없거든요."

"엄마, 정말? 정말? 이빨 요정이 와서 투명 모자 주고 갔어?"


큰 아이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나무라는 동안 둘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라본다. 


"아니야, 진짜 있어. 엄마 그 모자 쓰고 투명 인간 돼서 다 보고 있었던 거야. 주하야 이빨 요정은 아니고, 투명 모자를 갖다 주는 다른 요정이 있어."

"엄마, 진짜야? 나도 그 모자 쓰고 싶어. 그 모자 어디 있어? 응? 나도 보고 싶어."

"없다니까 투명 모자. 엄마, 없잖아요."


둘째가 투명 모자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리고 여전히 믿지 않는 첫째가 볼멘소리를 한다.


"요정이 엄마한테 잠시 필요한 것 같다며 모자를 갖다 줬어. 그런데 좀 쓰고 있으니까 요정이 다시 찾아와서 이제 모자를 벗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며 가져가더라. 다른 사람도 필요하대. 유찬이도 나중에 크면 요정이 투명 모자 가지고 찾아올지도 몰라. 가끔 어른한테는 투명 모자가 필요할 때가 있거든."

"그래? 아, 투명 모자 보고 싶은데......"

"나또 투영 모짜 보고 시펐는뎅......"


첫째는 반신반의하며 대답을 하지 않는데, 둘째와 셋째가 철석같이 믿으며 아쉬워한다.


'얘들아, 엄마한테 투명 모자를 들고 요정이 찾아왔었단다. 가끔 엄마에게 투명 모자가 필요할 때가 있거든. 언젠가는 너희에게도 그 모자가 필요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때쯤이 되면 요정을 만났다고 말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씻기며 하는 실랑이는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반복된다. 자기 전 갖는 책 읽기 시간도, 굿나잇 키스도 여전히 그 자리다. 다만 마음과 몸이 전혀 정리되지 않은 채 나의 공기만 달라져있다. 퀴퀴하고도 축축한 나의 공기가 아이들이 풍기는 향긋하고도 달달한 내음과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돈다. 그 냄새에 그만 얼굴을 찡그리고 코를 찡긋거리다 그런 얼굴로 잠이 들었다. 이런 하루라면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꿈같은 생각이 머물렀던 것 같다.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오고 나는 다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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