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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5. 2019


Sensitive mama 2

매일이 화양연화이길

"너, 이리 와 봐."


아이들이 모두 등교한 오전. 수업 준비로 집에 있던 너에게 건넨 사적인 첫마디였다. 내가 건넨 '너'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네가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어제 어디에 있었어? 마당에 있었지?"

"아니야. 옷방에 들어가서 펑펑 울었어."


말을 다 끝내지 못했는데 벌써 눈가가 그렁그렁하다. 그리고 닦아낼 틈도 없이 넘쳐흐른다. 앞에 앉아 내 얼굴을 쓰다듬던 너는 올 것이 왔구나 싶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네가 준비되어있음을 알아채자마자 내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아. 그래서 눈물이 왈칵 터졌는데 애들 앞에서 울기는 싫었어. 그래서 옷방에 들어가서 울었어. 펑펑 울었어."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누구도 하나 말을 안 듣지 않아. 어제 유찬이도 하나가 몇 번을 말했으니까 내 말을 들은 거지."

"흐흐흑. 흑. 있지, 자려고 누우면 이런 하루라면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잠이 드는데 아침이 되면 눈이 떠져. 그리고 또 하루가 시작돼. 하.. 악.. 흐흐흑. 여보, 나 너무 힘들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난 아이들이 너무 버거운가 봐. 내 애들인데 예쁜 게 아니라, 해결해야 할 일들이고, 힘들고. 뭐가 시작인지를 모르겠어. 나는. 흐흐흑... 나는 여기 와서 자기한테 짐짝이 된 것 같아. 흐흑... 나는..."


나는 한참을 울었다. 너는 내가 우는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내가 진정되자 너는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였다. 


"이리 와, 안아줄게."

"나는 나쁜 엄마는 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죄책감이 들고. 악순환이야.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흐흑.. 난 요즘 예민해져 있고, 화가 잘 나고. 나도 알아. 내가 요즘 그런 거.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를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자주해. 그래서, 무서워. 내가 요즘 이런 상태라는 거를 당신이 알아줬음 해. 잊지 않고 알고 있었으면 해. 울고 나면 좀 괜찮아질 거야. 어제도 울고 나서 좀 괜찮아졌어"


수업 시간이 거진 다 된 너에게 미안하다고, 자꾸 이런 상태라서 미안하다고 말하다, 흐느끼기를 반복했다. 너는 미안해할 것 없다며 내 등을 쓸어내렸다. 곧 너는 수업을 위해 떠났다. 소파 위에, 내 손등에 아직도 너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뜨겁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내 몸에 새겨진 퀴퀴하고도 축축한 공기들이 씻겨져 가길 바라며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우울증은 마음이 심약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우울은 찾아올 수 없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아니, 누구에게나 어둠의 순간은 찾아오지만 난 그것을 잘, 아주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라 장담했었다. 그러나 난 어느 틈엔가 무기력했고, 슬펐고, 짜증과 화가 가득 차 있었다. 행복하고 싶은데 웃음이 나질 않았고, 날마다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댈 곳이 없었다. 


"나, 애들 때문에 좀 힘든 것 같아.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네 애들인데, 왜 힘들어? 예쁜 네 새끼들인데 왜 우울하니?"

"응...... 그렇지. 내 애들이지. 난 아마 좋은 엄마가 아닌가 봐."


"저는 요즘 좀 우울한 기운이 있나 봐요."

"모든 사람은 다 우울해. 우울하다고 말할 정도면 괜찮은 거야."

"네, 뭐 그렇긴 하지요."


지난 몇 년간 나의 마음이 지쳤다고 말하면 아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용기 내서 몇 번 시도할 때마다 상대가 누구든 난 공감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밝은 사람이었고, 씩씩한 사람이어야 했다. 하다못해 같이 사는 너도 내가 절벽 앞까지 다다라야지만 나를 붙잡아주었다. 머리는 모든 것이 다 마음먹기 달려있다는 것을 아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돌려야 할지 모르겠다. 이 실타래의 처음과 끝은 어디인지 모르겠다. 


어제 보다 한결 기운이 돈다. 축축한 공기 대신 가볍고 말끔한 공기가 나를 에워싼다. 너를 붙잡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서일까? 너의 특별한 보살핌이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단지 울어서일까? 글을 써서 일까, 약간의 쇼핑을 한 탓일까? 아침운동을 해서인가? 마음을 돌리는 일도, 그 처음을 찾는 일도, 너에게 계속 도움을 청하는 일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실타래를 따라 계속 걸어야만 한다.  노래의 한 구절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만나는 풍경, 그것이 '화양연화'이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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