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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5. 2019

각자 외롭다

마침내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내가 하는 얘기에 관심도 없잖아. 어쩌겠어. 관심이 없는데. 그냥 그렇다고......"


남자가 베개에 머리를 묻고 말한다. 여자는 이내 뭐라 반박하려다가 울컥 눈가가 뜨거워지고 만다. 얼굴을 반대로 돌려 묻는다. 여자는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남자의 친구들이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과 결혼할 때, 남자가 연구에 몰두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내 남자가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의 고뇌와 어려움을 공감할 수 없어서, 언젠가는 사이가 멀어질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러나 한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생각이었다. 불현듯 이렇게 터져 나올지 몰랐다. 무방비 상태로 얻어맞은 여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하였다. 어떻게 이것이 오고야 말았는지 놀랍기만 하였다. 


며칠 전 여자는 남자를 끌어안고는 투덜거렸었다. 품에 안겨 얼굴도 마주 보지 못하고 눈마저 질끈 감은채 한 마디, 한 마디에 머뭇거림을 담았었다. 


"요즘 당신은 참. 다른 사람 같아. 너무 멀리 있는 사람 같아서 힘들어. 당신은 뭔가를 늘 하는데, 난 그게 뭔지를 몰라. 그래서 나는 외롭다."


여자는 남자에게 애걸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하소연한다. 여자는 자신의 외로움에 골몰하느라 남자도 외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너무 좋아 남자의 눈도 바라보지 못하던 때, 그를 생각하고 아끼던 그것들이 차츰 무뎌지고 잔잔해졌다. 물론 남자도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그도 역시 잠잠해지고 둔해졌다. 남자도 여자도 서로에게 날카롭지 않게 되어 버렸다. 뭉뚝해진 그것은 편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프다. 묵찍하게 전해지는 아픔의 순간은 한기가 돌게 외롭다. 


부부는 각자, 그렇게 외롭다. 


길고 어려운 잠을 청하고 난 뒤, 여자는 여전히 어떻게 이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복잡스러운 하루가 지나갔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자의 어깨 위에 매달려있는 그의 지독히도 무거운 외로움을 마주하고 나서야 여자는 용기를 내었다. 


"당신 말을 관심 있게 듣지 않아서 미안해."

"피식. 참 일찍도 이야기한다."

"그냥, 어제는 좀 복잡한 심정이었어.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뭐 이런 기분이었단 말이야. 내가 얼마 전에 당신한테 한 얘기 기억나? 당신이 너무 멀다고, 외롭다고 한 말."

"아빠, 이거 같이해요."

"엄마, 나는 엄마랑 할래."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세 아이의 물음과 웃음과 안김에 의해 멈춰버렸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는 각자 전하지 못한 말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당신을 외롭게 해서 미안해.'

'너의 그 마음을 잘 이해해. 그러니 그쯤 해두어도 돼.'


여자와 남자는 여전히 각자 외롭다. 그리고 앞으로도 각자 외로울 것이다. 

그러나 함께이니까 각자의 외로움은 쉬이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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