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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5. 2019

상실의 두려움을 만날 때 찾아오는 것들.

"퍽! 우당탕!"

"여보! 왜 이래! 정신 차려봐! 유찬 아빠! 눈 떠, 여보!"


초점 잃은 너의 희멀건 눈이 힘들게 나의 목소리에 반응한다. 그 날 마주하였던 너의 그 눈동자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여보! 정신 차려. 버텨야 해. 알았어? 여보, 정신 차려. 응? 눈 떠! 감지 마! 절대로."


너는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져 잡히지 않는 의식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너의 양 볼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네가 다시 눈을 감아버리면 다시는 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의식의 경계에서 길을 찾고 있는 너에게 연이서 눈을 뜨라고 외쳐댔다. 네가 그렇게 의식을 잃고 말았다면. 나는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모든 것이 지난 후의 고요함이 찾아왔을 때 생각했다. 911에 신고하여 앰블런스가 도착하기까지의 그 시간이 내 33년 생의 가장 긴 기다림이었고, 가장 무서운 공포를 몰고 왔다.


너와 나의 생애 가장 아팠던 기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앰블런스를 타고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너는 계속해서 하혈을 했고, 살기 위해 계속해서 남의 피를 받아들였다. 네 몸속을 온갖 기계들이 위로, 아래로 드나들며 쑤셔대었다. 너는 서너 차례 의식을 잃고 찾기를 반복하며 버티었다. 아무런 원인도 발견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나갔고, 병원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우리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마침내 우리는 병원을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더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너는 계속해서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냈다. 너의 모자란 피를 채우기 위해 수혈을 받고, 그 사이사이로 갖가지 검사들을 받았다. 모든 것이 똑같이 반복되었다. 그런 상황들이 답답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더욱 아팠다. 그저 그 많은 피를 흘림에도 버티고 있는 너에게 참으로 감사했다. 그러한 체력을 갖게 한 너의 지난 축구 사랑이 다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때 너와 나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최고 경지의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다.


"캡슐 내시경을 통해 너의 소장에서 피가 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 하지만 직접 소장 안에 내시경을 넣어 확인해야 해. 아마 소장 앞쪽이라 내시경 기계가 닿을 수 있을 거야."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의사는 말했다. 우리는 곧 이 곳을 나가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다음 날 반나절을 기다려 내시경을 하고 난 뒤 의사는 말했다.


"내시경이 안 닿아서 확인을 못했어. 다른 검사를 더 해보는 게 좋겠어."


여러 차례 반복되는 희망 고문으로 우리는 지쳤고 무력해졌다. 오라 한 적 없는 낯선 땅에 이제 겨우 한 발짝 내디뎠을 뿐인데 그만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 또한 우리의 선택이었다고 체념하였다. 이렇게 아파 누워있는 일상도 적응될 수 있구나 하는 발견도 하였다.


나는 이제 겨우 5살, 3살, 1살이 갓 넘은 세 아이를 지인들에게 맡기고 너의 곁에 있었다. 옆에서 너의 눈을 들여다보고, 너의 목소리와 심장소리를 듣고, 너의 땀내를 맡아야만 나는 덜 불안할 수 있었다. 그 며칠이 아이들에게는 잔혹했을 수 있겠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하여도 나는 또 그런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혹여나 살가운 작별 인사도 못하고 너를 떠나보내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나를 무참히도 흔들어댔다. 현실이 될까 차마 입밖에 내기도 두려운 생각이었다. 너를 홀로 병실에 뉘어 놓고 집에 있는 날은 온갖 상상들이 나의 머리를, 가슴을 비집고 들어와 헤집고 다니는 통에 나는 거의 반 미치광이 지경이었다. 그리고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있기에 미치광이가 되기 전에 울어야 했다. 밤마다 곤히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불에 얼굴을 묻고 통곡했다. 비어있는 너의 침대 자리와 베개를 보고 흐느꼈다. 그 자리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까 봐. 어둠이 깔린 시간마다 너에 대한 상실의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다.


그렇게 너에 대한 상실의 두려움을 만났을, 때 내게 찾아왔던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의지의 무너짐. 그러나 이것은 다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 좋지 않은 끝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왜 하칠 내게라는 신을 향한 원망. 별안간 생기던 신앙심. 제발 이번 만이라는 애원과 기도 따위를. 이 사람을 내게 온전히 돌려준다면 당신에게 내 마음을 드리리라 했던 맹세. 그리고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흔들림. 맹세를 지키지 못한 뒤에 찾아올지도 모를 신의 벌함에 대한 또 다른 두려움. 문을 두드리던 그것들이 나를 갉아먹기도 하고 나에게 매달리기도 하여 다시 찾아온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과 통증.

너의 상태를 빨리 알아채지 못했다는 자책. 너와 아이들 앞에서 약해지면 안 된다는 책임감. 슬픔과 공포를 내색하지 않는 인내와 거짓 웃음.  너에 대한 애절함. 너를 향한 나의 미운 것들에 대한 반성. 일상에 대한 그리움. 그것의 소중함. 그리고 주변의 사람. 그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 그리고 또 덧붙여진 마음. 철면피 같은 얼굴 등.


그런 것들이 날마다 내게 찾아오고 떠나기를 반복할 때, 너의 몸은 제자리를 찾았다. 여전히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지 못하는데 너의 몸은 더 이상 밖으로 피를 내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여 그렇게 시한폭탄을 안았다. 돌아온 일상에는 많은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중요한 인터뷰를 치렀고, 나는 그동안 신세 진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이들은 그 간의 부족했던 살 냄새를 파고드느라 연신 강한 킥을 날려댔다. 우리는 다시 돌아온 일상에 참으로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너는 큰 아이가 초대받은 생일파티에 함께 참석하였다.


"하나, 나 다시 피가 나는 것 같아."


너의 짧은 문자메시지가 나의 심장을 엄습했다. 불과 한 달 전에 찾아온 일상이 다시 흔들린다. 그러나 정작 흔들리는 것 안의 중심인 너와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빠르게 대처하였다. 아이 셋이 모두 집에 있는 주말 오후였다. 서둘러 친구 내외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청했다. 이번에는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미국에서 순위권 안에 든다는 더 큰 병원 응급실 수속을 밟았다. 지난번처럼 쓰러져서 병원에 간 것도 아니었고, 그때처럼 피를 철철 흘리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100마일이 떨어진 곳에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차분하고 침착하게 해내었다.


네가 응급실에 도착한 그 날. 지난 입원 기록을 확인한 의사들은 CT촬영을 하였다. 그들의 너의 윗 소장 바깥쪽에 붙어있는 혹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들은 그 날로 수술 날짜를 잡았고, 우리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모든 것은 간단명료하였다.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가능성과 그것들이 가져오는 불안감이 곳곳에 산재하였다. 그러나 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그 전의 경험에서 얻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통해 재구성되었다. 그러고 나니 나에게 찾아왔던 어떤 것들은 떠나고, 어떤 것들은 남아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이 찾아오기도 하였다.


수술 후 퇴원, 재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또 한 차례의 산을 만났지만 그 산은 그 전의 것보다 낮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그 산을 넘었다. 사실 그 산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았는지, 절대적으로 낮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높고 낮은 산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여전히 너의 튜머는 재발 가능성이 있고, 우리는 6개월 내지 1년에 한 번씩 너의 소장을 확인해야만 한다. 또한 여전히 그것이 왜 너의 몸에 생겨났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인생이나 다들 시한폭탄 하나쯤 안고 살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언제 터질지 몰라 벌벌 떨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너에 대한 상실의 두려움을 만나고 난 뒤 내게 찾아온 것이다.


너를 잃게 될까 두려웠던 그 시간들 동안 내게 찾아와 문 두드린 그것들을 어느 것 하나 홀대할 수 없었다. 어느 것 하나에게 문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문 밖의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공포와 동시에 그것이 나를, 너를 그 고통에서 구언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나는 그 시간의 것들을 괴롭지만 겸허히 받아들였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우리에게 찾아왔던 시련의 시간은 무뎌지고 닳아져 빠르게 희미해져 간다. 언제 그랬나 싶게 너의 상처는 아물어가고, 우리가 안고 있는 폭탄이 까마득할 만큼 일상은 또 제자리이다. 그러나 그때 내게 찾아왔던 것들이 내 안에 새겨 놓은 흔적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노랫말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남겨진 대로 또 그런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전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편안한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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