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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5. 2019

봐, 나 궁딩 팡팡 해 줄 거야?

며칠 째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날씨 때문에 아침 스케줄이 취소되었고, 나는 한가로이 앉아 좋아하는 글들을 읽고 있었어. 막 글들이 펼쳐놓은 세계 안으로 발을 내딛으려고 하고 있었지. 가지가지 내가 좋아하는 색들이 열린 문틈으로 보였고, 손 내밀면 잡힐 것 같은 아련함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 사이로 낯선 소리가 끼어들었어. 잡고 있던 문의 손잡이를 '툭'하고 놓치게 만드는 소리였지. 이내 문이 닫혔고 난 그 앞에서 약간은 참담한 기분이 든 채로 잠시 서 있었어.


"어떤 노래를 들어야 할까?"


내 앞에 앉아 일을 하던 너는 음악을 하나 플레이했어.


Look down, look down

Don't look'em in the eye

Look down, look down

You're here until you die


이렇게 시작하는 웅장하고도 거친 소리들이었어. 유명한 음악이었지. 음산하고 암울한 공기 위로 희망을 잃은 퀭한 눈들과 커다란 밧줄이 떠오르는. '레미제라블'의 시작을 알리는 그 음악 말이야. 너는 그때 그런 음악이 필요했나 봐. 사실 그때 나에게 그런 음악은 뭐랄까. 이제 빠져들기 시작한 나의 감성에 삐그덕 대는 것이었거든.


나는 민감한 여자야. 너도 알고, 나도 알지. 

몸도 민감하고, 말에도 민감하지.

감성적이다 못해 쉽게 감상적이고.

그러면서도 동글 둥글하려 애쓰고.

이성적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더 힘이 들고, 더 감수성 넘쳐흐르는 뭐 그런.

어쨌든 나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여자야.

나를 구성하고 있는 예민 인자들이 소리치기 시작했어.


'이건 아니야. 자꾸만 내 것을 거슬리게...... 건드리잖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앞에서 네가 한쪽 손으로 머리와 눈을 쥐어짠 채 있었어. 넌 심난하고 괴롭기 시작한 거야. 네가 그럴 때 하는 전매특허 제스처지. 아니나 다를까. 너의 입에서 너의 마음을 담은 것들이 흘러나왔어.


"아, 할 일은 많은데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영 하기 싫네."


여전히 온 집안에 그 어둡고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음악이 울리고 있었어. 그때 네가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고 어깨를 앞,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네가 막 플레이 한 음악이 듣기에 좋았나 봐. 육중한 비트가 너의 답답함을 위로해줬을지도 모르겠어. 음악에 맞춰 너의 헤매는 마음들이 약간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지. 그래서 난 나의 예민한 것들에게 신신당부해뒀어.


'오늘은 그만 불평해. 봤지? 그가 즐기고 있잖아. 그가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나의 예민한 것들이 안으로,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 시작했어. 나는 그것들을 마구잡이로 쑤셔 넣진 않았어. 그건 너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으니까. 살살 달래줬지. 나도 내 것들을 그 정도로 컨트롤할 수는 있어. 물론 종종 그럴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잘 컨트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나를 사랑해. 그리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너를 사랑해.


봐. 내가 오늘 너를 위해 나의 것을 얼마나 잘 컨트롤했는지. 나 잘했다고 궁뎅이 팡팡 해달라는 말도 잠시 뒤로 미뤄둘게. 나중에 너의 것들이 가라앉고 나면 나를 자랑스러워해 줘. 그럼 나도 내가 더욱 자랑스러울 거야. 그럼 난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될 테고, 아마도 그보다 더 많이 너를 사랑하게 될 거야. 


내 식대로 너를 많이 사랑해주고 나서는 기분이 좋아져서, 난 네가 좋아하는 멸치국수를 끓이러 가.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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