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 Jan 05. 2019

우리의 대화가 이상해졌다.

그때는 눈만 마주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넌 아니어도 적어도 난 그랬었다. 24시간 중 적어도 12시간은 네 생각을 하던 때의 이야기다. 그러니 자연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이 고민인지,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찰나 바뀌어진 어투나 얼굴 근육의 움직임에도 너에게 찾아온 심경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다.

예전에 비해 너의 눈빛, 손짓, 몸짓에 귀 기울일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내 안의 것을 들여다볼 새도 없는 날들이다. 지금의 너는 나보다 더 할 게다. 예전에 비해 너에게는 거둬들여야 할 토깽이들이 늘어났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게 많아졌고, 너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는 것은 호사스럽다 여겨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결혼 8년 차, 우리는 적당히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 지나가고 나면 서로에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의 대화가 이상해졌다.

아니 너의 대화 방식이 이상해졌다.

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의 대화 방식이 이상해진 게다.


일단, 네가 언어적으로 특화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그래도 내가 알던 너는 상대의 말을 꽤 경청하는 성질의 사람에 가까웠다. 비록 상대가 네가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하더라도. 넌 절대 비난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고! 몇 번을 얘기해."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그게 아니라는 건 안다고.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그게 아니라는 게 아니라."


요즘 이런 식의 대화가 제법 잦아졌다. 그런 대화가 오가는 중 네가 버럭버럭 화를 내기 일쑤이다. 난 그런 너에게 울컥울컥 치민다. 너의 얼굴 근육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움직임들이 포착되곤 한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상대를 무시하거나 비아냥 거릴 때. 드라마 채널 어디에선가 어떤 특정 캐릭터들에게서 보이곤 하는 입술의 실룩거림, 광대뼈의 움직임 뭐 그런 것들이다. 너에게 어떻게 그런 것들이 찾아왔는지 경악스럽다. 나는 그것들이 싫다. 너에게도 그런 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침착하게 평온하길 기다렸다가, 너에게 진지하게 얘기도 몇 번 했다. 우리의 대화가 이상해졌다고. 당신은 일단 내 얘기를 이해하려는 마음 자체가 없다고. 굉장히 공격적이라고.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생각의 전제에서 대화가 시작되는 느낌이라고. 요즘 당신의 얼굴에서 이상한 표정들이 나오는 걸 당신은 아느냐고. 당신은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고. 당신은 그런 사람 아니었다고. 당신은 변했다고.


한참을 듣던 너는 그래, 참 똑똑하지 못한 학생들이 너의 말을 너무 못 알아먹어 답답하다 그랬다. 아무리 설명해도 멋대로이니 울화통이 터지곤 한다 했다. 어느 날은 학교 직원이 네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유창하지 못한 영어 실력을 가진 유색 인종의 말인 양 계속 무시해서 화가 났다 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열정과 생각의 반짝임 들을 속시원히 다 말할 수 없어 속상하다고도 했다. 너는 요즘 부쩍 '내가 한국어로라면 이 정도쯤이야. 이렇게~'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때문일 게다. 그래서 자꾸 상대의 말에 공격적으로 응대하는 것일 게다. 확률적으로 상대의 말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일 게다. 귀담아 들어봐야 너의 금 같은 시간만 빼앗는 결과가 나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달리 보자면 타인들이 너무 너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혹사당한 것일 게다. 그래서 네가 예전과는 다른 것일 게다.


그래도 나는 말했었다. 나는 너와 함께 사는 사람이지 너의 학생이 아니지 않냐고. 나는 요즘 내가 그렇게 멍청한가, 내가 그렇게 답답한가, 내가 그렇게 모자란가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고. 네가 나를 자꾸 그런 사람 취급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미안하다 했고, 앞으로는 조심한다 했었다. 너의 그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 대답했었다. 그런데 오늘 또 생각과 의견을 전하는 나에게 너는 버럭 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럼 어떻게 하냐고 짜증을 내었다. 그냥 물어보는 거지 않냐고 나도 덩달아 화를 냈다.


요즘 우리의 대화는 이상해졌다. 그리고 그 이상한 대화가 참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난 오늘. 너에게 계속 이 이상한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내가 무덤덤해지고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반면, 우리의 대화가 날마다 이렇게 이상하게 계속된다면. 우리가 이곳에서 이러고 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을 한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능사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변해가는, 달라져 버린 우리의 대화가 참 서글프다. 서글프다 생각도 하지 못하는 너는 더욱 애잔하다.


너의 이상해진 대화법이 밉고 미운데, 맥 빠지는데, 목까지 올라온 서운함과 억울함을 꾹꾹 밀어 누른다. 너에게 내일은 아이들 등교하기 전에 일찍 출근하라는 말을 전한다. 너의 입가에 미소가 돈다. 그리고 고마움의 눈빛도 전해진다.


여자는 친밀감을 잃었을 때 사랑을 거부하고

남자는 자신감을 잃었을 때 사랑을 놓는다.


네가 자존감을 잃어 사랑을 놓아 버릴까 나의 상처 받은 친밀감을 그냥 밀어둔다. 그런데 이러다 언젠가는 내가 거부하고 마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마음이 고달파진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되는 일은 참으로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일의 연속이구나. 그 감당해야 하는 자리의 굴레들이 겹겹이 에워싸는구나. 평생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함께 하겠다 했는데. 몸만 섞어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마음을 섞어 함께 하는 일이 이리 지키기 어려운 일인지 오늘에서야 알게 된다.


그래서 맹세를 하는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봐, 나 궁딩 팡팡 해 줄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