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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8. 2019

무가치하지 않음을 설득하는 시간

코바늘 뜨기에 빠져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자가 있다.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면서도 코바늘을 놓지 못하는 그녀에게 남자가 말한다. 


"애들 없을 때는 이거 하지 말고 좀 쉬어."

"쉬어? 어떻게 쉬어?"


여자에게서 무의식적으로 날카로운 것이 새어 나온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어 봐. 


그 말을 듣던 여자는 가슴이 먹먹해지다 못해 뜨거워져 목구멍 안으로 밀고 올라오는 덩어리들을 간신히 짓누르며 말한다. 


"이거 다, 정신병 안 걸리려고 하는 거야."


여자는 내뱉은 말 후에 오는 자신의 감정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시 코바늘 뜨기에 집중하였다. 그래서 그 말을 듣는 남자의 표정이 어땠는지 알 수 없었다. 충분히 자신에게 집중하던 여자가 말을 이어간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어. 우리 집에 관찰카메라를 달아놓고 내가 하루 종일 어떻게 지내나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면 어떨까. 저 여자는 왜 저렇게 힘들어하지? 애가 셋이나 있지만 아침 먹고 나면 죄다 학교에 가고 아이들 돌아오는 시간까지 혼자 있을 시간이 저렇게 많은데. 왜 힘들지? 팔자 좋네. 혼자 하고 싶은 취미생활도 맘껏 하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런데 말이야, 있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어. 혼자 하는 그 시간들에는 얼마나 많은 가치가 있을까? 저 여자의 시간들은 의미 있는 것일까?"


여자가 뒤엉킨 채 떠도는 생각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말을 마치지 못한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잠자코 기다려준다. 


"저 여자에게 혼자 하는 저 시간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는 저 여자는 그 일들에 어떤 가치를 두는 걸까? 그런 걸 생각해줬으면 해.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고, 운동을 하고,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하루 종일 혼자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 같아.'라는 자의식과 싸우는 중인 거야. 그런데 스스로가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너무도 괴로워지고 힘들어지거든. 스스로 뿐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하는 모든 것들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해. 내 아이들, 내 남편, 내 부모, 형제, 지인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균형이 깨지는 거야. 평온함은 없어지고 불안과 불편함만 남는 거야. 그런 게 너무 싫어. 

그러니까 나는, 모르겠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꽤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진실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그냥 그러니까, 내가 무가치하지 않다고 날마다 나를 설득하기 위해 애를 쓰는 거야. 그러는 거야. 그런데 그런 과정들이 쉽지 않고, 받아들였다가도 제 풀에 쓰러지고......"


여기까지 이야기가 닿자 여자는 울기 시작했다. 남자의 눈동자가 여자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러나 여자는 마치지 못한 말을 울음과 함께 삼켜 버린다. 


'그러니 제발 누구든, 당신만이라도 내가 혼자 하는 시간들을 가치 있게, 귀하게 대해줬음 해요. 그러면 나는 무가치하지 않다고 스스로 설득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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