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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8. 2019

내 말이 우습지?

그녀는 참. 쉽지 않은 여자이다. 


"당신, 하와이 출장 화요일에 가는 거지?"

"응."

"화요일 몇 시 비행기라고?"

"확인해봐야 하는데......"

"비행기 스케줄 내 메일로 보냈어?"

"어? 아니 아직."


그녀가 도끼눈을 뜨고 바라본다. 얼른 엉덩이를 떼야하는 타이밍이다. 지금 당장 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본능의 움직임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빨랐다. 그녀가 이마에 주름을 깊게 만든 채 욱 내뱉었다. 


"내 말이 우습지?"

"아니, 당신 말이 우습다니...... 지금 보낼게."


나는 메일을 보내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 그 날은 피곤한 하루였고, 늦게까지 수업 준비를 하다 막 들어온 참이었고,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러나 일어나야만 했다. 지금은 알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내 말이 우습지?'라는 그녀의 말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어차 있는지. 그녀의 자아가 날마다 힘겨루기 하는 것. 끊임없이 그녀의 못생긴 것들을 반성하는 것. 그러면서 또 두 발 딛고 당당히 서 있으려 노력하는 것. 그래서 지금 분명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하고 있을 거라는 것. 그녀의 그런 말에 화나거나 빈정 상하기보다 토닥여줘야 한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삐릭."


그가 거실로 나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폰에 메일이 들어왔다는 알람이 뜬다. 막 들어와 누운 그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설 때 아차 싶었다.  통제되지 않은 날것이 뾰족하게 새어 나와 그를 겨누고 말았다. 그가 돌아와 다시 옆에 눕자 눈치가 보였다. 화가 났을까? 기분 상했을까? 그가 나에게 그런 식으로 감정을 쏟아냈다면 난 틀림없이 화가 나고, 서러웠을 것이다. 


"메일 보냈어."

"응, 보고 있어."


그의 표정도, 목소리 톤도 어느 상태인지 알아차리기 아리송하다. 이럴 땐 정공법이 최선이다. 


"화났어?"

"아니야."

"빈정 상했어?"

"아니라니까."


최악은 아니다. 알 수 있다. 그는 나의 말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이내 그런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나가 저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지. 그런데 내가 안 했지. 그녀는 내면에 있는 열등감과 싸우느라 스스로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견디기 힘들어하지. 그런 걸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상대가 나밖에 없지. 내가 일주일 간 출장을 가면 혼자 육아를 해야 하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엄청나겠지. 이런저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터져 나왔을 거야.'


뭐 이런 식의 생각을 했을까? 사실은 나의 변명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가 어떤 식의 생각을 했든, 그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또는 지금 당장은 완전무결한 청정의 마음 상태가 아닐지라도, 최소한 나쁜 감정을 유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추궁으로 느낄만한 질문을 그쯤에서 멈추어야 한다. 그를 분노나 슬픔, 불안 따위의 분리적 감정으로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


그의 오른팔을 잡아 빼내어 내 목에 두른다. 그리고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들어 얼굴을 묻는다. 내가 청하는 미안함의 표현이다. 그는 재빨리 알아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는 찡긋하며 내 볼을 쓰다듬는다. 


"안아줘."


나의 미안함이 전해졌다는, 이해받았다는 안도감이 한 마디로 흘러나온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따뜻한 잠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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