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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8. 2019

그거, 당신 생각이에요.

점심 먹으러 오겠다고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 당신은 나타나질 않았다. 약속한 시간보다 20분 정도가 지나서야 차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12시 전에 올 거라더니 조금 늦었네?"

"응, 막 나오려고 하는데 김 교수가 방에 들어와서 한참 얘기하다 나갔거든. 그래서 출발이 좀 늦어졌어."

"응, 그랬구나. "

"그런데, 내가 그냥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는데, 요즘 김 교수가 나한테 친절해진 것 같아. "

"응?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 뭐, 그냥 나한테 말도 친절하게 하는 것 같고. 딱히 디테일하게 말은 못 하겠는데 느낌이 그래."

"응. 자기 생각에는 왜 친절한 거 같은데? 상대가 나한테 친절하고 나이스 하다 느껴지면 왜 그럴까 이유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보잖아."

"그렇지......"

"자기가 생각하는 김 교수가 당신에게 친절해진 이유는 뭔데?"

"글쎄, 음......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연구가 괜찮은 일이고,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단 말이지? 당신의 그 말을 비추어 보아, 요즘 자기가 하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괜찮게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봐?"

"아니 뭐......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김 교수가 워낙에 노멀한 성향의 사람이 아니니까. 그냥 자기 흥에 그랬나 싶기도 하고......"

"나는 당신이 요즘 하는 연구에 대해 스스로 만족도가 높구나. 라고 생각되는걸?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심리적 ㅅ아태를 타인의 것에 투영하는 법이거든. 내가 어지간히 잘하고 있다 생각해도 왠지 내 입으로 말하기는 낯간지러운 거지.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그렇게 평가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내가 과시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는 거니까. 내 안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보다 바깥세상에서 자신을 보는 방법을 택하는 게 더 객관적이고, 재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연구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을 김 교수의 생각이라고 돌려 버리고 싶은 거지. 아마 자기 연구에 대해 으쓱해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의 본능과 얌전히 있으라는 초자아가 당신 안에서 엄청나게 싸우고 있을걸? 어때 내 설명이. 그럴듯해?"


당신은 엄지 손가락을 일으켜 세웠다. 내 말에 대한 동의의 표현이다. 투사가 심리적 방어기제라지만 부정적인 투영만 있지는 않으니까, 대략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스스로 만족스럽다니 다행인 일이다. 그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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