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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9. 2019

결점의 존재

"엄마, 이것 좀 도와주세요.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이거, 블록을 할 수가 없어요."


여보, 당신.

오늘 우리 아들이 저리 말하는데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를 결점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나의 결점이 아니더라고.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 그것들은 여전히 조금씩 모가 나 있습니다. 한번 박힌 주홍글씨는 쉽게 닳아지질 않네요.


중고등학교 때 노트 필기를 하려면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 공책이 다 젖곤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가방에 손수건이나 두툼한 수건을 몇 개씩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것들이 학창 시절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었습니다. 연필을 든 손 밑에 수건을 두세 번 접어 받치고는 필기를 했습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365일 양말을 신고 있어야 합니다. 산뜻함을 유지하고 싶다면 양말은 여러 켤레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손과 마찬가지로 금방 땀에 젖어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 신어야 하니까요. 만약 땀이 나는데 양말을 신지 않은 채로 돌아다닌다면 온 바닥에 제 발자국이 찍힐 거예요. "여기 웬 물이 이렇게 떨어져 있지?" 누군가가 물을지도 모를 일이죠. 한 여름 아무리 더워도 샌들은 신을 수 없어요. 편리함을 위해 지문인식 기능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일들이 제게는 번거로운 일들일 뿐이지요.


다한증. 체온을 조절하는데 필요한 이상으로, 열이나 감정적인 자극에 반응하여 비정상으로 많은 땀을 흘리는 질환.이라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스스로 느끼는 불편함은 곧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타인으로부터 받는 시선은 또 다른 불편함이 되었고,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것에 필적할 만한 대응책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체육시간에 손을 잡아야 하는 활동이 있으면 친구에게 정중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손에 땀이 많이 나서 네가 손을 잡는데 불쾌할 수 있다고. '불쾌'라는 단어를 선택한 데에는 아마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간의 경험들이 그렇게 알려줬겠지요. 언제나 선공으로 이루어지는 나의 상태에 대한 솔직, 담백한 고백은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패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때마다 나는 나의 자존감이 다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더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 스스로를 토닥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지."의 말과 함께 진짜 감정을 숨겼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양의 땀에 놀랐습니다. 가끔 불쾌함을 거칠게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아무리 단단히 세워 두었던 의지도 무너지곤 했습니다. 나는 피해를 주는 사람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전혀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것은 그저 차이일 뿐이라고 얘기해주지도 않았고요.


수많은 자기 방어로 10대를 보내고 스무 살이 되던 해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나는 당신이 너무 좋은데, 당신이 나의 모든 것을 다 좋아해 줄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처음 손을 잡던 날도 말했습니다. 최대한 건조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커다란 방패 하나를 앞에 세워두고.


"난 다한증이 있어서 손, 발에 땀이 많이 나. 그래서 네가 내 손을 잡으면 느낌이 안 좋을 수도, 그러니까 불쾌"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당신이 내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뭐 괜찮네, 나는."


아마 당신은 괜찮지 않았을 겁니다. 긴장하면 더욱 땀이 많이 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압니다. 아마 그때 나의 손은 축축함의 절정이었겠지요. 그래도 당신은 어쩔 줄 몰라하며 뒤로 감춘 내 손을 빼내 꼭 잡았습니다. 나의 차가운 땀을 느끼고, 더욱 꽉 잡아주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아빠 외의 사람이 그렇게 따뜻한 손으로 차갑게 식은 내 손을 위로해준 것은. 당신과 처음 손을 잡던 그 날로부터 18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당신은 내 손과 발을 따땃히 데워주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주머니 안으로 나의 모든 자격지심과 초라함을 넣어주었습니다. 


여보, 당신.

나는 우리 아들이 나와 같은 신체적 조건을 타고났다는 것을 진즉에 알아챘습니다. 당신에게도 말했었죠. 이제 자신의 신체적 상황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 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요? 나는 아이에게 그런 불편함을 전해주게 되어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과하는 순간 아이는 '잘못된 것'이라는 옷을 입게 될 테니까요. 원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입게 된 그 옷이 얼마나 벗기 힘든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유찬아, 엄마도 손에 땀이 많이 나잖아.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손수건을 가지고 다녔어. 이렇게 손수건을 대고 글씨를 쓰면 공책이 젖지 않았거든. 얼마든지 많이, 빠르게 쓸 수 있었어.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 유찬이가 이불 위에 올라가거나 러그 위에 올라가 있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엄마는 알 것 같아. 유찬이는 방법을 하나 찾은 거야. 아마 앞으로 더 좋은, 많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더 좋은 방법 찾으면 엄마한테도 꼭 알려줘."


우리 아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보물찾기 하는 아이처럼 신나 했습니다. 꼭 엄마한테도 알려주겠다고. 우리 아들은 타인의 시선에 버티기 위해 안감힘쓰지 않길, 방패를 들 필요가 없길 바랍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주는 세상을 만나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되길. 그래서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길. 온 마음을 다해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알게 되겠지요. 수많은 존재는 모두 다르다는 것을요. 존재는 쓸모의 여부로 설명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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