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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9. 2019

통깨철학

여보, 당신.

오늘은 마침내 볶은 통깨가 다 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나의 최애 식재료 중 하나인데 말입니다. 오늘 저녁 반찬으로 애호박 건새우 볶음을 하려고 했는데. 갓 볶아낸 반찬의 피날레는 통깨란 말입니다. 하는 수 없이 지하에 내려가 김치 냉장고 냉동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통깨 뭉텅이를 들고 올라왔습니다. 바라보고 있자니 일단 한숨이 나왔습니다. '아, 이거 진짜 하기 싫은데......' 구시렁거려 봅니다.


미국 나오고 일 년쯤 지나 어머님이 보내주신 통깨입니다. 실수로 형님들 댁에 갈 것까지 오는 바람에 그 양이 너무 많아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던 그것입니다. 그래도 이제 이 지퍼백 한 봉지가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는 욕심을 내어 봅니다. 널따란 쟁반 위에 통깨를 솨르르 쏟아냅니다. 평소에 하던 것보다 2배는 덜어낸 것 같습니다. 


"자, 마음을 비우고 시작해봅시다."


텅 빈 집안에 울려 퍼지는 혼잣말이 제법 비장하게 들렸습니다. 당신의 어머님, 아버님이 씨를 뿌리고, 틈틈이 거름도 주시고, 물도 주시고 하셨을 겁니다. 다 자란 깨를 낫으로 베고, 뒤집어 말리어 털으셨을 겁니다. 그리고는 체질을 하여 크고 작은 먼지 부스러기들을 걸러내셨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자식들 나눠주신다고 봉지봉지 묶어 놓으셨겠지요. 그렇게 보내진 통깨 안에는 작은 돌멩이도 있고, 티끌들도 있습니다. 싱크대 앞에 서서 고개를 박은채 열심히 골라내었습니다. 무념무상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왜 내가 이것을 식탁에 앉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몰려옵니다. 뒷목이 뻐근하게 저려옵니다. 중간중간 한 번씩 목을 뒤로 젖힐 때마다 '윽'소리가 절로 나는군요.


요즘은 마트에 가면 얼마든지 깔끔하게 털어 티끌 하나 없이 골라낸 통깨들을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데. 돈을 주고 그것들을 사 오는데 고작 몇 분 안 걸릴 텐데 나는 꼬박 한 시간을 서서 그것들을 골라내었습니다. 그러고 있자니 목도 목이지만 눈도 침침해져 오더군요. 나는 이제 겨우 30대 중반인데 말이에요. 신혼 초에 어머님이 보내주시던 통깨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어머님이 깨끗하게 티끌도 다 골라내어 보내주셨었죠. 그 칠십 노인네가 아들, 며느리 먹이신다고 얼마나 눈이고 허리고 목이 아프셨을까요? 사뭇 더 감사하다고 표현할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손은 쉼 없이 움직이는데 우리 연애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적이 있던가요? 꽤 오랜 시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결심하고 하면서 했던 생각들이요. 내가 이렇게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니, 이 사람의 부모님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그랬었는데, 살다 보니 다 처음 마음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잘 사는 게 참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오늘 통깨를 골라내며 어릴 적 풍만하던 마음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반성도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절반 조금 넘게 골라냈었는데 그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남은 건 버리고 골라낸 것만 볶고 말까? 그러나 그 순간 또 시골 두 노인네가 떠오르니 안될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아버님이 뉴스를 보시고는 저한테 말씀하셨어요.


"요즘 TV보니 시댁에서 주는 음식 받아다가 쓰레기통에 죄다 버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너도 그러냐?"


우리 아버님의 직설 화법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시지요. 그래서 제가 당돌 화법으로 말씀드렸지요.


"아버님, 저는 안 먹을 거면 아예 안 받아가지 받아다 버리는 건 안 해요. 이거 사 먹으려면 다 돈인데 이걸 왜 버린대요? 걱정 마셔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지금까지 살면서 어머님, 아버님이 가져가라는 음식은 한번 거절하는 법 없이 다 받아왔습니다. 쌀, 고추장, 된장, 마늘, 동치미, 배추김치, 섞박지, 갈치, 조기 등등...... 부모님은 그렇게 자식들에게 들려 보낼 수 있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받아먹은 것이 많군요. 또 그때는 식비가 이렇게 많이 들지도 않았었군요. 이제는 아들이 너무 멀리 나와 살아서 바리바리 싸주시지 못하는 노인네 마음이 휑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이 생각, 저 생각이 오가는 와중에도 난 덜어놓은 통깨를 모두 골라내었습니다.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 나중에는 나무 수저를 들고 골라내었습니다. 참 뿌듯하기 그지없습니다. 새삼 나에게 이런 인내심이 남아 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골라낸 티끌들을 보니, 멀쩡한 통깨도 종종 섞여 있군요. 그래도 이 정도는 어머님, 아버님이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실 거라 생각해 봅니다. 골라낸 깨를 정성껏 저어가며 볶았습니다. 깨 볶는 냄새가 정말 좋습니다. 


여보, 당신. 

오늘 나는 통깨를 골라내며 '인의예지'에서 우러나오는 마음들에 대해, 사람의 본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지내다가 또 칠정에 사로잡혀 보잘것없이 작아지면 그때 남은 통깨를 마저 꺼내겠습니다. 오늘 볶은 통깨가 다 사라지기 전에 그것들을 꺼내는 일은 없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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