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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08. 2019

부부의 신상 '사랑해'

일을 하고 있는 네 옆에 앉아 뭐라 뭐라 쫑알대었다. 뭐라고 그렇게 주절거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요한 일은 아니었을게다. 그저 나의 폭풍 쫑알거림 뒤의 너의 표정만 기억난다. 네가 웃었다. 사람의 웃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웃었다'라고 일관되게 표현되지만 사실은 매 웃음마다 눈의 움직임, 입술의 실룩거림, 안면근육의 실그러짐 등이 너무도 다양하다. 


'아, 저거 무슨 표정이더라. 알고 있던 표정인데, 봤던 표정인데......'

"왜 웃었어?"


네가 말없이 또 알듯 말듯한 그 표정으로 웃는다. 


"왜 웃냐니까?"

"귀여워서."

"헉. 나이 40이 가까워지는데 귀엽다는 표현은 쫌......"


그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헬렐레 웃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자제를 못하고 웃었으니 그 말이 듣기에 좋았다는 뜻일 것이다. 정말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아직도 저런 표현이 좋은 나도 참 모자라다.


"하나가 무슨 마흔이냐. 그리고 마흔이면 어떠냐. 귀여워서 귀엽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나 이렇게 귀여워해 줄 건데?"

"나는 하나가 여든이 되어도 귀엽다고 하지."


여든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여자 노인네에게 귀엽다고 말하는 여든의 너를 그려본다. 아마 난 여든이 되어서도 저 말을 듣고 배시시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참 주책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지 않게 된다. 내게는 '이 타이밍에는 사랑한다 말해야지'의 결심이 필요한 말이 되었다. 너에게는 내가 꾹꾹 찔러야 토해내듯 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그 '사랑해'라는 말 없이도 제법 달달하다. 이상하리만큼 낯간지러워진 '사랑해'대신 우리 만의 신상 '사랑해'가 생겨났다. 


나 언제까지 이렇게 좋아해 줄 건데?

나 언제까지 이렇게 예뻐해 줄 건데?


네가, 내가 서로에게 저 말을 물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대답을 바라고 하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해'는 주체로부터 타자에게 전하는 감정의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종어는 상대로부터 나에게 전해진 마음에 대한 행복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그 마음을 느꼈어.

네가 나를 예뻐하고 있다는 그 마음을 받았어.

그래서 행복해.


뭐 이런 말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어린 날 '난 널 사랑해. 난 감정을 쏟아낼 테니 받아라, 받으란 말이다.'라고 외치던 말들이 지금에 와서는 '네가 나를 사랑해줘서 행복해.'로 바뀌었다. 거침없고 직접적이며,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이었던, 오로지 내가 중심이었던 예전의 말들. 그보다 무르익고 배려있으며 약간의 위트가 섞인 지금의 표현이 훨씬 마음에 든다. 


우리는 여든이 되는 동안 몇 개의 새로운 '사랑해'를 발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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