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 나 예뻐 보이지 않아?"
여보, 당신.
어느 저녁 세안을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던 나는 내가 참 예뻐 보였습니다. 최근 들어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20대 때도 외모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을 가지진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하는 생각들은 고착화되어 있었습니다.
'피곤에 절어있구나. 주름이 늘어가고, 피부 탄력도 떨어지고 늙어가는구나. 하, 결정적으로 점점 못생김이 곳곳에 붙어 있구나.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리 못생겨졌지?'
그랬었는데 말입니다. 그 날 저녁은 이상하리만큼 내가 참 예뻐 보이더란 말입니다. 조명 때문인가 싶어 욕실 밖으로 나와서 이쪽저쪽으로 보는데도 예뻐 보였습니다. 지나가던 이들이 들으면 쟤는 무슨 자신감으로 저리 자아도취에 빠져있는지 모르겠다고 속닥거릴지도 모를 이야기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생각해 보았지요. 자신의 외모에 대한 만족도는 두 가지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평정과 건강한 자아. 이 두 가지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외모에 대한 만족도가 상승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실제로 아름다워지는 것이겠지요.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나는 60개의 글을 발행하였고, 나의 마음도 60 레벨 정도 평정을 찾았습니다. 글쓰기는 내 안의 것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의 연속선이었습니다. 당신은 말했지요. 왠지 모르게 차분해진 것 같다고. 나는 내 안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쪼개어 가졌고, 거기에서 얻게 된 생각이나 마음들을 글로 옮겼습니다. 그러고 나니 심리 상담받은 후의 내담자처럼 나의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화는 줄어들고, 참을성과 끈기를 동반한 인내심은 조금씩 뼈대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그 뼈대 위로 더 많은 웃음이 입혀졌습니다. 생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우울과 슬픔들은 잠시 주춤하였습니다. 그 주춤한 사이사이로 글쓰기를 통한 나의 고백과 인정, 내려놓음들이 끼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런 시간들이 내 안의 것을 더욱 단단하고 생기 넘치게 만들었습니다.
화와 피곤, 짜증, 우울과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인해 습관적으로 움직이던 나의 얼굴 근육과 주름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틈틈이, 조금씩 그 근육들을 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인상은 다른 향을 풍기었습니다. 충만감이 넘쳐 발산되는 밝은 에너지가 내 얼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랬더니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솟아났습니다. 그런 자신감은 나를 예뻐지게 하는 얼굴 근육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 미친듯한 자신감은 며칠 만에 또는 몇 시간 만에 사그라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거울에 비친 나 스스로가 한없이 예뻐 보이던 그 날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글을 쓰고 내 안의 것을 쏟아내고, 마음의 평정을 찾습니다.
정말 보고픈 친구가 얼마 전부터 악기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시작한 오케스트라 활동이 자신에게 큰 낙이고, 탈출구이고 그렇다 하였습니다. 내게 글쓰기가 줄곧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바이올린이, 음악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압니다. 음악을 통해 한 템포 쉬어가고 그렇게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겠지요.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머지않아 너 역시 엄청나게 예뻐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멀리서 응원하겠다고. 우리 각자의 예뻐지는 방법으로 풍성하게 아름다워져서 다시 만나자고.
여보, 당신.
나는 건강한 자아를 찾아가며 한껏 아름다워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