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요.

by 하나

친한 친구의 시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멀리 나와 사느라 뜸하게 소식을 묻고 전해 듣는 나 자신이 좀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에는 친한 친구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잘 맞는 친구의 고모가 유방암 수술을 하셨다는 소식을 단체 카톡방에서 전해 들었다. 그 친구에게 고모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나에게 또한 특별한 분이시기에 내 무심함에 대한 자책은 더욱 컸다. 사실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은 나에게 핑계가 되어주기 딱 좋은 환경적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 자체가 그저 무심한 것인지라.


동생의 시아버지는 암수술을 받으시고 7차례의 항암 치료를 이겨내시고 계시며, 또 주위의 많은 친구의 부모님들이 암 또는 그 밖의 이유로 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시부모님은 워낙에 나의 또래 부모님들보다 연세가 많으시다. 그래도 평소 잔병치례 없으시고 연세에 비해 정정하신 덕에 걱정 없이 지냈다. 그러던 시부모님들도 한평생 무거운 농사일에 어깨를 내어주고 온몸을 내어주어 말썽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뒤늦게 수술을 하셨다.


원체 약골이던 엄마는 그래도 가진 깡으로 평생을 사셨던 분이시건만 자잘하게 몸에 이상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갑상선도 적신호, 폐도 적신호, 유방도 적신호.

평소 자기 한 몸 끔찍이 챙긴다고 놀렸던 아빠는 의학적 진단 상으로는 깔끔하시다. 그러나 화면 너머로 가끔 들여다보는 아빠의 얼굴은 너무도 말라 계시고 흰머리와 주름도 많아지셨다. 아빠 얼굴 위로 검버섯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아, 아빠가 늙고 계시는구나.' 자연히 한탄이 새어 나왔다.



어릴 적에는 하지 않던 걱정들이 자꾸 늘어가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나의 위치와 처우만을 걱정하면 그만 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보살피고 걱정해야 할 가족이 늘었고

아이들을 낳고 나니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한 바구니 추가되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진실로 '내가 나이를 먹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에게, 지인에게 '부모님은 건강하시지?'라고 안부를 묻기 시작해야 하는 때.

자꾸만 주변에서 사람들이 곁을 떠나는 아픔을 전해 들어야 하는 때.

그리고 곧, 그런 아픔을 직접 겪어야 할 것이라는 묵직한 응어리가 생겨나는 때.

그런 요즘, 나는 자꾸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를 되뇐다.




친구에게 부고를 전해 듣던 그 날 아침은 추억에 젖어 글 한편을 썼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스무 살 언저리 그때의 나인 것 같아 행복했었다. 그러나 마음뿐이었던 것이다. 주변의 상황들이 나에게 너는 예전의 그 아이가 아니라고, 그 아가씨가 아니라고 상기시켜준다. 너는 나이 먹어가고 있다고 반복해서 알림음을 울려댄다.

예전 어른들이 '그래도 마음만은 청춘이라오. '라고 했던 그 마음이 무엇인지 심히 공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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