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어른 벌레가 될 수 있겠지
나는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푹 잤다.
고 말하고 싶지만, 사찰에 온다고 불면증이 하루아침에 해결된다면 불면증이란 괴물은 전 세계에서 멸종됐을 것이다. 잠에는 쉽게 들었지만 깊게 자지는 못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소음 때문이었다. 눈을 떠보니 새벽 3시다. 다시 잠들기는 그른 것 같아서 방에 있던 잡지를 읽다가 새벽 예불에 다녀오기로 했다.
산사(山寺)의 새벽은 매우 춥고 어두웠다. 눈을 감은 것과 뜬 것이 비슷할 정도였다. 실은 밤에 별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전날 저녁 7시쯤 바깥 풍경을 확인했는데, 내가 시간을 착각했나 싶을 정도로 깜깜했다. 도시는 항상 밝기 때문에 내가 떠올리는 세상의 모습은 늘 환하다. 그러나 반야사의 새벽은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문명의 차양 아래 있는 도시살이는 편리하고 화려하지만, 그 대가로 세상의 맨 얼굴을 볼 기회를 반납해야 하는 것이다.
휴대폰으로 조명을 켜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길은 조명이 비추는 곳까지가 전부였다. 전날 갔던 길을 떠올리는 동시에, 멀리 불빛이 새어 나오는 대웅전을 바라보며 조심히 걸었다. 어쩌면 내게 2019년은 이런 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희미한 빛에 의지해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나아간 일 년이었다. 문득 스스로가 참 기특했다.
스님께서는 예불 전에 법당 안팎에서 불경을 외며 목탁과 종을 두드리셨다. 팀장님께 들은 바로는 세상을 깨우기 위한 의식이라고 한다. 나는 예불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전날 배운 불상과 불화(佛畵)의 의미를 떠올렸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미타불과 약사불이다. 아미타불은 전 편에서도 언급했듯 어머니의 마음으로 중생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의 소원 한 가지는 꼭 들어주신다고 한다. 약사불은 이름처럼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해주신다. 만약 아미타불과 약사불께서 단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시면 어떤 것을 말할지 상상해봤다. 당연히 마음 치유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고르려니 다른 소원이 생각났다. 모든 것에 지쳐서 이곳에 오긴 했지만, 초월적인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새 예불이 시작되었다. 스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곧잘 따라 할 수 있었는데, 예불 내내 잡생각이 많아서 힘들었다. 그동안 정돈되지 않은 감정들을 너무 오래 품고 있었던 탓이다. 지저분한 공간에 있으면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처럼 감정도 마찬가지다. 자주 정돈해주어야 마음이 한 곳으로 향한다. 문득 예불이 끝나면 108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불 후 염주를 들고 왔다. 108개의 구슬이 꿰어져 있어서 숫자를 셀 필요 없이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다. 막상 시작하려니 딱히 바라는 것이 없어서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래서 그냥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롭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반 정도 하고 나니까 별안간 당황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마음에 묻어둔 지난 일에 대한 억울함이 몰려왔던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처가 컸던 일이었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을 버리기가 어려웠다. 회초리를 맞은 애처럼 잉잉 울었다.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더 이상 바라면 안 되는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기로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108배는 30분가량 걸렸고 끝날 때쯤엔 약간 심통이 나서 '인생이고 뭐고 될 대로 돼라'는 심정이었다. 스님의 부탁대로 전등과 난로를 끄고 밖에 나오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도록 넋 놓고 보다가 목이 아파서 대웅전 앞 계단에 앉았다. 별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는데 별똥별이 떨어진다. 우주엔 수많은 별이 있고 그 수만큼 많은 별이 동시에 죽는다. 자연의 섭리 속에서는 별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김연수 작가님의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에 나왔던 고독의 감정이겠지. 한참 별을 보고 있으니까 시무룩했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마음이 상한 내게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 이불속에서 몸을 녹이다가 아침 공양을 갔다. 정수기는 공양간과 찻집 두 곳에만 있다. 간밤에 물을 떠 오는 걸 깜빡했고, 108배로 눈물 콧물 다 뺐더니 거의 탈진 상태였다. 밥은 뒷전이고 일단 물부터 한참 마셨다. 언제든 물을 마실 수 있는 환경에서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중요한 걸 알게 되는 것 같다. 밥은 여전히 맛있었다. 공양간 보살님께서 할머니가 손녀를 다독이듯 '많이 먹어라'고 하셔서 평소보다 조금 더 먹었다.
공양 후 바로 관음상과 편백나무 숲을 보러 갔다. 돌다리를 건너 길을 따라 가니 대나무 숲이 나왔다. 대나무 숲 입구는 마법의 통로처럼 신비로워 보였지만 동시에 음산해 보이기도 했다. 숲으로 들어가니 얇은 대나무들이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산짐승들이 숨어 살기 좋은 곳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간혹 숲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무서웠다. 나는 왜 이렇게 무서운 게 많은 걸까? 어둠도 무섭고 거미도 무섭고 수상한 소리도 무섭다. 전엔 이렇게 무서울 때마다 누군가가 늘 내 옆에 있었다. 그래서 타인의 등 뒤로 숨는 것, 아니 두려움을 벗어나지 않는 것에 익숙했다. 이제 난 혼자이기 때문에 별 수 없이 스스로 맞서야만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과 거미와 수상한 소리지, 내가 혼자라는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 사람이 둘이 되는 것보다 어떤 것을 무서워하지 않을 용기를 내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대나무 숲을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니 숲이 아래쪽에서 바라봤을 때보다 덜 무섭고 더 신비로워 보였다. 시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눈 앞에 닥쳤을 땐 겁이 나고 험난해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기억이 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시기도 언젠가는 정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관음상은 대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 사이에 있었다.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물병을 들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관음상 주변엔 작은 연못이 둘러져 있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물이 꽁꽁 얼어있었다. 그런데 물병에 있는 물은 얼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다. 흐르지 않는 것은 결국 멈추고 마는구나. 나도 흘러야지. 어떻게든 계속 흘러가야지 싶었다.
관음상 뒤로 펼쳐진 산등성이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산의 몸통은 부드럽고 입체적이어서 옷가지를 걸치지 않은 사람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새벽에 템플스테이 잡지에서 본 중국 불교 전설이 기억났다. 큰 거인이 힘껏 하늘과 땅을 분리하고는 지쳐서 쓰러졌는데, 그 거인의 온몸이 산과 바다, 풀, 나무 등이 되어 지금의 세상을 이루었다고 한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내가 앉았던 바위는 거인의 코딱지일지도 모른다. 거인이 날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몰래 웃었다.
한참 경치 구경을 하다가 편백나무 숲으로 갔다. 하늘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나무가 빽빽해서 걷는 내내 상쾌했다. 흙이 표면은 얼어있고 안쪽은 부드러워서 발에 느껴지는 감촉도 좋았다. 숲길 코스는 더 있었지만 추위가 느껴져서 중간에 입구로 돌아갔는데, 조금 걷다 보니 주변 경관이 훤히 보이는 전망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반야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 자신이 대웅전 불화(佛畵)에 그려진 한 명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눈코 입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 나는 그렇게 보잘것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맹구우목'의 확률로 탄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존재여도 저마다 중대한 역할과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전망대에 있던 앙상한 나뭇가지에 유난히 연둣빛이 도는 잎사귀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번데기다. 애벌레가 어른 벌레가 되려고 추위를 견디고 있다. 난 그게 부처님이 내게 내려주신 메시지 같았다. 네가 지금 힘든 이유는 어른 벌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버리면 번데기로 끝나지만, 계속 희망하면 너도 어른벌레가 될 수 있다. 고.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내려오는데 문득 본 산등성이가 아침 햇살에 빨갛게 물들어있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편백나무에 가려서 잘 안보였다. 그래서 관음상이 있는 곳까지 뛰어갔다. 아침에 108배를 해놓고 내리막길을 뛰어가다니 제정신일까… 중간에 넘어질 뻔했지만 그럴 가치가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자연은 시시각각 모습이 달라져서 모든 순간을 기적처럼 만드는 것 같다. 붉게 물든 산을 보고 있으니 기적을 목격한 사람처럼 웃게 됐다.
반야사에 가까워졌을 때 자연은 내게 또 다른 기적을 보여주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딱따구리를 만난 것이다. 스물여덟 살 먹은 도시 아가씨 중에 딱따구리를 실제로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로써 나는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또 하나 찾은 셈이다.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너무 멀리 있어서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아쉽지만 마음속에 딱따구리와의 조우를 곱게 개어두고 길을 떠났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노곤해서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일어났더니 곧 점심 공양 시간이다. 옷을 챙겨 입고 찻집에 들러 차를 마시기로 했다. 보살님께서 차를 내려주시는 동안 고양이와 놀았는데, 내가 장난감으로 놀아주면 좋아하면서도 하악질을 했다. 나는 고양이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기로 했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도 이렇게 기꺼이 거리를 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겐 소중한 사람이어도 상대가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물러나야 한다. 때론 멀리 있는 것이 상대를 진정으로 아끼는 방법이라는 걸 찻집 고양이를 통해 깊이 깨닫게 됐다.
점심 공양은 11시 반이다. 친구가 청주터미널까지 차로 데려다준다고 해서 12시까지 채비를 해야 했다. 서둘러서 공양을 마치고 숙소로 빠르게 돌아가는데, 내가 절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방문객들이 사찰 직원인 줄 알고 자꾸 뭔가를 물었다. 화장실 위치 같은 쉬운 질문에는 성심껏 대답했지만, 모르는 것을 여쭤보시면 정체를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여자분은 장황하게 질문을 늘어놓다가 내가 '전 템플스테이 온 사람인데요…' 하니까 화들짝 놀랐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나의 신자 코스프레가 이리도 완벽했단 말인가…? 뭐 어쨌든 반야사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 이렇게라도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질문 세례를 받느라 공양간에서 숙소까지 1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1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이미 지각이다. 친구에게 조금 더 기다려줄 것을 부탁한 뒤 방을 정리하고 대웅전에 들렀다. 부처님께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괴롭겠지만 이겨낼 수 있는 프라즈나(PRAJNA, 산스크리트어로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대웅전 한편에 감사하는 마음을 두고 반야사를 떠났다.
버스를 타기 전에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이른 저녁으로 빠네도 먹었다. 이로써 속세 패치(?)가 완료된 느낌이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애초에 템플스테이 한 번 다녀온다고 모든 게 해결될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사찰로 다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약 부처님이 나를 보셨다면 칭찬 한 마디 해주셨으면 좋겠다. 저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아이가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지낸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젠 절밥을 먹는다. 무신론을 외치던 애가 부처님께 기도도 드린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못할 것이 없다. 다행인 건 내가 지금 궁지의 끝의 끝, 마지막의 마지막에 있다는 것이다.
반야사에서는 그동안 외부의 것으로만 향하던 마음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게 참선(參禪)이지 싶었다. 참선은 불교 신자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 같다. 서울이든 반야사든 내가 참선하기로 선택하면 일상이 참선으로 채워진다. 그러므로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반야사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땔감으로 삼아 부지런히 나를 돌보는 것이다. '맹구우목'과 '일체유심조'를 잊지 않고, 언젠가 어른 벌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게' 되는 때도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비 내리는 날에 휘파람도 불게 됐다.
다가올 봄엔 반야사에서 만개한 꽃들을 보고 싶다. 제법 몸집도 커지고 너그러워진 찻집 고양이도. 여전히 마음은 아프지만 그때쯤엔 좀 덜 아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