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콩이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얼마 전 콩이는 췌장염을 앓았고
온갖 처치로 겨우 살아났는데
며칠 전부터 다시 구토 증상을 보이기에
혹시 재발했나 싶어서 겁이 났다.
다행히 심한 상태가 아니어서
일단 주사와 약물 처치를 이어가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수의사 선생님께서는 노견을 키우고 계셨고
노화로 인해 병이 생겨서 치료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선생님 안색만 살폈다.
전보다 핼쑥해지고 낯빛도 어두워진 게 보인다.
선생님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하고
아픈 반려동물들을 돌보고 계시는 걸까.
나는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두 번 목격했다.
첫 번째는 아버지고 두 번째는 친할머니다.
아버지는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날은 아직 생생하다.
위독하시다는 말에 가족들과 달려갔지만
우리가 도착하기 몇 분 전에 숨을 거두셨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난 고등학생이었지만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턱은
하굣길에 종종 먹었던 설탕 묻힌 핫도그보다도
훨씬 얇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랑 친할머니 모두
나와 깊은 애정이 있던 사이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나와 유대관계가 깊지 못했으며
친할머니는 아마 살면서 두세 번쯤 본 게 전부일 것이다.
두 분에게는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목숨만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한 경험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려견이 죽고 난 이후의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콩이도 이제 노견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와 친할머니보다 개를 더욱 사랑하는 내가
불효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콩이는 나에게 세상 어떤 존재보다 특별하다.
내가 죽음을 생각할 때 번쩍 하고 나타나서
삶으로 건져 올려준 나의 수호천사.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가장 순수한 존재.
나와 연결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인연의 끈 중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될 만큼
가장 끈끈하고 각별하게 연결된 인연.
콩이는 내게 그런 개다.
전에 외가의 먼 친척분께서 돌아가셨을 때
고모할머니께서는 장례식장이 떠나갈 듯 서럽게 우셨다.
평소 두 분 간의 사이가 얼마나 가까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죽은 자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그래서 콩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나도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할 작정이다.
그리고 날 아무도 막을 수 없게 술독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기로 마음먹었고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너를 이 세상의 크기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네가 없는 이 세상엔 사랑은 하나도 없고
오직 슬픈 것들만 잔뜩 남아있다고
마음으로 몸짓으로 말해주고 싶다.
그게 나를 삶으로 건져준 나의 반려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인 것 같다.
콩이는 내가 이런 생각 하는 줄도 모르고
온수매트 위에서 숙면 중이다. 심지어 코도 곤다.
감상에 젖는 건 이 정도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