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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Apr 15. 2020

삶은 요동침으로써 예술이 된다

괴로울 땐 호기롭게 괴로워하기


얼마  봄을 맞아 동네에 가지치기가 한창이었다. 나무는 때를 알고 있었다는  날카로운 전기톱에도 순종적이었으나, 그걸 보는 나는 팔이 잘리는 것처럼 끔찍했다. 나무의 시선은 방황하는 듯했고 새들은 거처를 빼앗긴 부랑자처럼 측은해 보였다. 그러나  완연한 봄이 되면서 나무에는 수많은 잔가지와 새순이 솟아났다. 새들은 거처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지저귀고 먹고 날아다녔다. 섭리였다.

가지치기 장면을 보며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아팠던 일을 떠올렸다. 고난은 경험이 많다고 면역이 생기지는 않는  같다. 괴로움이 짙어지면 죽는   편하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와중에도 종이에 베인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고난은 우리의 부와 명예를 빼앗아갈 수는 있어도 생명력까지 빼앗지는 못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만  되뇔 때조차 본연의 ‘ 살고자 하는 의지를 기억한다. 이는 나무가 인부의 고생이 무색할 만큼 금세 초록빛 새순을 뿜어낸 것처럼 신성한 일이다. 우리는 조금  우리의 생명력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결국 살아낼 것임을 믿는 것이다.

마음의 바다가 요동칠  파도에만 몰두하면 작은 파도도 쓰나미처럼 커 보인다. 내가 파도보다, 아픔보다 언제나 크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파도가 치도록 내버려 둘 넉넉함이 생긴다. 이것은 ‘내가  아픔을 반드시 이겨내 주리라’는 의지의 표명으로 그치지 않는다. 섭리,  잎사귀와 열매를 풍성하게 맺다가도 낙엽을 떨어트리고 추위에 떨기도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음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이 아름다울  없듯 삶은 요동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된다. 고난 속에 거할 , 동시에  어떤 것도 침해할  없는 신성한 생명력이 나를 이끌 것이라는 확신 가질  인생은 더욱 아름다워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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