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것에 매료된 우리들
보통의 것은 정말 현명한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여주인공 스즈메는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다. 남편은 자신보다 애완용 거북이를 더 챙기고, 화장실에선 쉽게 새치기를 당한다. 기다리던 버스조차 그녀를 지나쳐 가곤 한다. 라멘가게 주인장은 자신이 스파이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저 그런 맛’의 라멘을 만든다. 그래야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보통의 것의 소중함을 (마치 모두가 몰랐던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런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때론 최고의 것으로 추앙한다.
어느 순간부터 A가 아니면 B의 흑백논리는 나쁜 것이 되고, A와 B의 사이의 어딘가에 서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느낌이 든다.
내 의견을 표현할 때조차 ‘-인 것 같다’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으면 목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불편하다. ‘난 A는 싫어. B가 좋아.’ 라고 단호하게 말했을 때 ‘그러다 사람들 눈 밖에 나면 어쩌려고 그래?’ 혹은 ‘넌 애가 왜이렇게 극단적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을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짐작하기 때문이다.
상사와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서도 너무 튀지 않는 적당한 가격의 무난한 메뉴를 고심한다. 지인의 결혼식을 앞두고 우린 ‘그들은 어떤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있는가’보다는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적당한 축의금이란 얼마일까’가 궁금하다. 소개팅에서는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옷차림이 당연히 대세.
하지만 평생을 어중간한 위치에 끼어서 살아가느라 사는 재미를 몰랐던 나같은 사람에겐 A 아니면 B를 선택하는 경험 자체가 엄청난 쾌감이 되곤 한다. 일례로, 나의 식습관에 관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버섯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어서 종종 버섯요리를 도전하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버섯을 굉장히 싫어했다. 하지만 늘 버섯을 싫어한다는 것을 숨기거나 ‘있으면 먹어요.’ 하고 어물쩍 넘기곤 했는데, 그건 줄줄이 소시지처럼 쏟아져 나올 ‘성인이 되어서 버섯이 싫다고 하면 사회생활을 어찌하냐’와 같은 잔소리가 너무나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유난히 신경이 곤두섰던 어느날, 나도 모르게 ‘저 버섯 싫어해요. 안 먹을래요.’라고 단호하게 말해버렸는데 별 것 아닌 이 한 마디가 나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그 말을 한 뒤에 상대방이 어떤 답변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쾌감이 나를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상관 없는 용자의 상태’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살이나 살인같은 끝을 달리는 추악한 선택은 당연히 해선 안 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지는 매우 소소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우선으로 하느라 늘 뒷전이었던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저녁식사 차리기 같은 소소한 극단성이다. 우리는 너무 보통의 것에 매료되어 있어 조금만 선을 넘어도 큰일이 날 것 같은 위협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에겐 완벽히 이기적인 선택을 할 권리가 있다. 또한 그 선택은 우리를 해방시키고, 때론 우리를 치유한다.